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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지 않은 것과 불행한 건 동일어가 결코 아냐. 그 사인 생각보다 멀어. 정말 멀었다.
나에게 온 그들은 행복하지 않았지만, 불행하다고 느끼진 않았던 것 같다. 행복하지 않은 공허한 느낌을 채우고 싶었던 것 같다.
뼈속까지 불행했기에 나에게 호감이 가는 누구에게도 안길 준비가 되어 있을 때,
그들은 행복하지 않은 느낌을 지우기 위해 나를 안았던 것 같다. (내가 안기도록 허락했던지)
공허함이 채워지자 행복한 것처럼 느껴질 때가 그들에게도 찾아왔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자 그 채워짐도 또 다른 공허가 되고 말았다-그러고보니 지금이 처음이 아니다-늘 이러한 식으로 공허가 채워지고 눌러지고 다시 생성되어왔던 것이다 그들의 평생.
사랑은 다짐하는 게 아니야
사랑은 마음을 다해 다가가는 거야.
사랑은 내게 온 사람을 안아주는 게 아니야. 사랑은 먼저 다가가서 말을 건네주는거야. 귀찮아해도 매일 안아주는거야.
사랑이 헌신이라고, 개념적으로 만들어진 걸 맹신했지만, 지금 부딪혀보니 내겐 변치않는 애정과 애착... 그런게 사랑에 가장 가까운 일인 것 같다.
불행한 사람은, 불행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행복하지 못해 공허한 사람을 찾고, 공허한 사람은 불행함에도 불구하고 행복하려고 애쓰는 사람을 찾는다.
그들은 서로 노력했고, 그래서 행복을 느꼈지만,
공허한 이는 또다른 공허를 만들어내는데 익숙했고
불행한 이는 또다른 불행을 만들어내는데 익숙했다.
다시 같은 공허와 같은 불행은 만나지 못한다.
처음엔, 공허를 채워주고, 그들이 또다른 공허를 만들기 전 떠날 생각이었다.
나는 그들을 차지할 생각이 없었다. 나는 책임감이 없었다. 그들에게 책임감이란게 생길 때면 나로부터 멀어져가는 수순이 분명하기에 애초부터 나조차 없앴다. 그들의 말 가운데는 일말의 책임이 존재했으나, 그건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때에도 믿어야만 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실제로 그것은 일어나지 않았다. 누가 먼저였을까. 그들은 서로 우습게 여기기 시작했다. 마치 타락하고 형편없는 경로를 밟아왔던 것과 상관없다지만, 실은 그것이야 말로 은근히, 절대적으로 내심 믿고 있는 근거로서,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예측하던 때 였을 것이다. 내가 그렇게 되던 때는 그들의 예측과 늘 맞물렸다. 무엇이 먼저였을까. 예측과 타락의 시간차.
그렇게 그들은 과거의 이미지를 씌워 마치 경멸하듯했다. 무의식 속에서 자신의 행위에 최소한의 정당함을 부여하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상대를 경멸하게 된다. 내가 괜찮아지려면, 너가 못나고, 형편없는 행동을 해야만 해. 아니 어떤 행동도 내가 그렇게 해석되면 돼. 해석하는 주체에게 모든 권위가 있지. 대상의 본질을 누가 관찰하지. 내가 왜 그걸 알아야 하지?
"믿음은 실제가 돼. 그게 자신의 종교이니까. 종교는 실제야."
모두가 자신을 믿는 종교에 빠졌다.
그래서 나는 불행에 대해 더 이상 가면쓰지 않기로 했다.
공허한 이들을 불행의 구렁텅이로 같이 끌고 내려가려고 했다.
하지만 이들은 나와 같이 손을 잡고 내려오려하지 않았다. 그들은 예상대로 결코 꿈적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내려오는 법을 모른다. 비우고 떠나는 법만 알뿐.
그들은 공간적인 것이 차고, 비워지는 것에 대한 느낌만 느끼려할뿐, 결코 내려오려 하지 않는다.(물론 올라가려고 하지도 않을것이다)
아무도 타락하려고 하지 않는다.
아무도 타락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누군가는 기웃거릴 수 있다. 하지만
불행한 자와 손을 잡으면, 불행해진다고 생각한다.
모두가 그런 생각으로 살고 있고, 그래서 한쪽은 더욱 강팍해지고, 불행한 쪽은 더 악마가 되어간다.
나는 언젠가부터 늘 악마와 대화한다. 성현경목사님의 사탄에대한 설교에서 공감한 건, 인간이 신이 아닌 뱀과 대화하면서부터 죄를 지었다는 것이다. 나는 악마와 협상을 한다. 내가 신을 기억할 때는 오빠가 아플 때이다. 오빠가 아프지 않게 해달라고, 사탄에게 기도할 수는 없다. 그 순간, 사탄은 너를 그토록 괴롭게 울며 잠들게 한 밤이 이천밤인데, 너 아니어도 그사람 걱정해주고 약사다줄사람 가족들, 많은데, 너가 뭐하러 그런 헤픈 마음을 품어.. 라고 속삭인다. 모든 일에 나는 사탄을 말을 들으며 산지 오래되었지만, 오빠가 힘든일이 생겼다는 말을 들었을 때만큼은, 사탄의 목소리를 떠밀어낼 힘이 생긴다.
하나님 오빠가 아프지 않게 해주세요. 오빠 일이 잘 되게 해 주세요.
하나님이 날 이상하고 아프게 쳐다본다.
내 불행을 지켜보는 신이, 사탄의 속삭임과 그에게 이성을 뺏겨버린 나를 내버려두고 있다.
모든 것을 허하되,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
은혜도 벌도, 축복도 저주도, 내겐 없다.
떨어진다해도, 내게 어떤 손도 내밀지 않도록, 모든 상황을 허하되, 내 상황에 아무손도 쓰지 않고 있다.
하나님도, 행복하지 않고, 공허하리라.
그래서 도와주면 감사해하고, 자신의 사람이 되어줄,
'원래 착하지만 지금 잠깐 불행의 늪에 빠진' 타락한 천사를 찾고 있다.
하나님의 사람. 그리고 사탄의 사람.
애틋한 마음 하나가 울음보라는 뇌하수체 하나를 관장해, 막힌 숨을 쉬게 한다.
나는, 친구가 없어 뱀을 친구 삼아 두런두런 말을 나누었다. 그는 내게 더 불행해질 방법을 제안했고, 나는 놓치지 않았다.
나는 지금보다 더 불행해질수 있는 방안을 붙잡아야만 살 수 있었으니까.
친구가 없고, 사랑하는 사람이 없는 현실이 어느 순간 나를 끊임없이 공격하고.
울다가 지쳐도 살아야한다고 자꾸 말했다.
너무 폭력적이고 매서운 현실.
그 공격을 견디려면, 악마와 친구를 해야만 했다.
악마는 그 공격에 대해 맞수를 두는 법을 제시한다.
그 쪽이 규칙을 어겼다면, 너는 더 세게 규칙을 어겨야만 해.
그래야 너가 그 현실을 이기는거야.
라고.
매번 나를 뼈만남기고 다 앗아가는 휘몰아침 속으로 내 던지면서까지 그는 계속 속삭인다.
'아직도 너의 외로움을 알아주는 이가 없어. 더 세게 해야만 해. 너덜너덜해져도 이겨내. 그게 너야. 넌 할 수 있어. 보기보다 강해"
변명이란 것이 가장 진심어린 내 방어막이다.
글로 나를 방어하는 것도 여기까지 일테지. 더는 나를 방어할수도 없다.
거의 다 벗었다. 1퍼센트의 거짓부렁이가 내게 걸쳐져 있을까. 무겁고 버거운 1퍼센트. 나를 짓누르는 이것들.
오빠가 날 만져주었었을 땐, 알몸도 사랑스러웠지만
이젠 가장 추해져가고 있다.
하나가 날 덮고 있다. 곱슬대는 머리칼을 쓸어넘길때마다, 그 머리칼들이 나를 덮고 있어 아직 내게 부드러움이란게 붙어 있네.
누가 만져도 이건 부드럽다고 해줄꺼야. 우리 오빠 몸처럼 부드럽진 않지만 말이야. 우리 오빠의 아기같았던 몸. 멋진 근육. 귀여운 배. 뺨의 느낌. 그의 목소리가 듣고 싶어, 마지막으로 연기를 했다. 젖먹던 힘을 다해 나는 노력을 했다. 지하철에서 그대로 쓰러질만큼의 뜨거운 무언가가 막 쏟아져나왔다. 아직 내게 살아있었던 간절함을 끝까지 다 토해내리라. 살아있다고 했던 것들을 다 우겨넣어버렸던 내 일상이 다 뜯어져도 좋았다. 다 토하고 싶었다. 내 안에 있던, 살아있었던 그 모든 것을. 소화되지 못했던 내 사랑들을. 가닿지 못했던 내 마음 속 어떤 희망들을. 행복에 대한 막연한 기대들을. 상념들을. 미련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