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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sfortune4 2022. 5. 8. 07:59

생각해보면 그 사람은 내 이름도 몰랐다.  
유일하게 종로에서 이뤄진 한 연말 모임에서 그는 술을 마시다말고 갑자기 
돌아가면서 자기소개를 해보자고 했었다. 
술자리가 무르익을무렵 그는 이미 20대 젊은 아이들에게 애정공세를 받고 있었고 
아이들의 도를 넘는 무례한 행동에도 어색하면서 정색할줄 모르던 그는
그저 아무 제스쳐도 없이 참고 있었다. 
한예종에서 있었던 사건은 정말 우스웠다.  
내가 10여년간 본 그 사람은 그런 종류의 사람이 아니었다.  
 
  
요즘 그 사람이 내 꿈에 많이 나온다. 
커다랬던 머리, 약간의 장발, 트랜치코트, 구부정한 걸음. 어두운 기운, 나른한 표정, 날카로운 눈매. 
무엇보다 사람을 대놓고 관찰한다는 점이 특이했다. 
그 사람은 유일 무이한 사람이었다. 
내가 영화에 빠지게 된 것은 그 사람이 운영하는 곳을 통해서였다.  
사실 그 옆에 있는 영화관에 온건데, 자석처럼 그곳을 들어가게되었다. 
프리츠랑의 회고전 중이었다.  
그리고는 어둡고 드문드문한 곳에서 나는 흑백 필름과 사랑에 빠졌다. 
영화가 먼저였고, 그 다음이 그였다. 
영화가 끝나고 가는건줄 알았는데, 그 사람이 어디선가 나타나 중얼대었다. 
영화가 끝나고 뭔가를 늘 얘기했다. 
신선한 경험이었다 당시엔. 
  
 
 
자크타티 회고전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사건이 있었다. 
우린 그때 즐거워해도 되는지에 대해 혼란스러웠다. 
광화문 시위에 나가면서도 
나는 광화문에 있었던 투썸플레이즈에 놓인 유일한 1개의 노트북 앞에가 
글을 써댔다.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이었기도 했지만 있었어도 자판은 필요했다.
그러고도 성에 안차 
시위가 끝나면 
인천으로 가는 신촌역 삼화고속 버스정류장앞에 있는 pc방에서 
또다시 글을 쓰며 밤을 지새웠다. 
흡연에 게임하는소리에 온몸이 온 감각이 방해를받는 와중에서 
난 견뎌냈다 아니 영화가 견뎌냈다.  
 
 
그에게 메일이 왔다. 
나의 글을 그가 운영하는 곳에서 달마다 발행하던 소식지에 처음으로 실을 수 있는 기회가 왔고 
몇번의 퇴고를 거쳐 실렸다. 
지금읽어보면 한심하고 부끄러운 글인데 
당시에는 자랑스럽기만 했다 
그가 읽기엔 성에 안찼겠지만 나의 열정을 그저 받아준것 같았다 
 
  
나는 허접했지만 열정이 있었고 
소수가 방문하는 곳이었지만 
글을 쓸수있었다 
한낱 n사 블로거였기에 나는 만족했다 
글을 쓰기 전에는 
항상 이미지와 텍스트들이 마구 충돌했다 
나는 쓰고 싶어서 쓴게아니었다 
영화를 보고 나면 그 벅찬 기분을 말할 사람이 필요했는데, 영화친구도 없었고, 내안에 들어온 이 부담스러운 것들을 해결해야만 했을 뿐이다. 
 
집단예술인 영화 
 많은 이들의 노동과 땀이 들어간 창작품
그것을 개인이 골방에 틀어박혀 감당하기란 실로 버거웠다 
난 항상 그 이미지들에 시달렸던 것 같다 
그래서 그것을 표현할 단어들을 찾기 위해 책을 읽기 시작했다 
문학 말고는 책을 읽지 않았던 나였다 
 
  
 
그러다 본격적으로 글을 쓸 공간을 제공받은 곳에서 
사기꾼에 걸려들었고 
영화와 별개로 개인적인 욕망을 이겨내지 못했다 
영화를 사랑했지만 내 인생이 달라질 것 같았지만
그건 다른 노력이 필요했던 것임을 깨달았다
 
영화계에 이런 인물이 게다가 소수들이 모여 고독하지만 진정성있다고 느낀 곳에 이런 인물이 발을 걸치고 있을 거라고는 
조금도 상상하지 못했다 
내 얼마 되지도 않던 돈과 애정을 바쳤다 
나를 죽일 수 있다면 그 후회스러운 순간을 건너뛸수만 있다면 
하고 늘 가슴을 치며 긴 시간 살았다 
 
 
나는 오랜 가정폭력과 외로움을부터 벗어난 20대 후반 드디어 내 길을 찾았다고 생각했었다. 
역시 어릴적 기반이 중요하다 
교육이 중요하고 무엇보다 정서가 중요하다 
나는 너무나 그걸 느낀다 
나같은 사람이 결혼을 한다면 그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아이를 또 생산하는 일이 된다는 걸
어려서부터 늘 생각해왔는데
역시나 진리였다
 
 
 
 
나는 그 이후로  
 
 
  
막 살았다 
그랬던 것 같지만 
그곳에도 인정은 있었다 
어떤 바닥도 다 사람사는 곳이더라 
 
 
  
그곳에서 울고 웃다 
   
 
다시 첫 직장의 악몽이 떠오르는 돈에 눈이먼 거지같은 인간이 운영하지만
돈벌기위해 어쩔 수 없는 곳에 발을 붙이고 있다 
  
 
그에게 고마워해야하는 건지 그를 미워해야하는건지 
전혀 모르겠다  
 
이제는 모든 것에 복합적인 감정이 든다 
 
나를 위안하기 어려우면서도 내가 불쌍하고
나에게 화가나면서도 나를 완전히 미워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 누구에 대해서도 한 가지 감정이 들지 못하게 된 것 같다. 
 
 
 
 
나는 운이 없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내가 나고 자라난 환경에서 딱 그만큼 살았다고도 느낀다 
그저 널을 심하게 뛰었을 뿐이다 
그리고 중독적인 과거의 유령이 남아 나를 괴롭힐 뿐이다. 
 
 
 
요즘은 다시 사는게 너무 힘둘어졌다 
 
뭐든 할수있을것같았던 30대가 그립다 
 
열정을 품는 순간 괴로워진다는 사실을 깨달은 지금이 고통스럽다 
 
모든걸 포기하는게 안전한것일까?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게 나은걸까? 
 
나는 그런 인간들을 보면서 안심하는가? 한심해하지 않는가.  
 
내 기준에서 한심한 인간이었던 사람들을 부러워라도 하는 순간  
 
무슨 말인지도 모르겠는 글을 그러나 매우 아카데믹하게 쓰는 글을 보며
부러움이라도 느끼는 순간
 
나를 견딜수없는순간 
 
  
다들 잘 살기를 바랄 뿐이다 
 
 
그래야 내가 이렇게 사는게 조금이나마 인정될것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