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 이야기 460

금요일

고양이는 오래되도 너무 예쁘다특별히 이상해질일이 없다죄를 질 일이 없기 때문이다 아침에도 여전히 예쁜 단비에게 감탄하였다 나는 나를 유지할 동력을 서서히 잃어가고 있다.특히 금요일은 더 그렇다 침대에 강력하게 붙어있고 싶은 그런 날이었다 기지개를 쭉 펴고는 다시 누울 수 있다면아침밥을 느긋하게 먹고 다시 누울 수 있다면파란 하늘을 보며 누울 수 있다면점심 햇살을 보며 눈을 지그시 감을 수 있다면 고양이처럼 그렇게 살아도 계속 먹을게 나오고화장실도 누군가 치워주고모래도 흔적도 누군가 치워주고계속 누군가 쓰다듬어 주고 예쁘다고 하고재밌는 놀이도 제공해주고늘 신선한 물도 떠다주고뽀뽀도 해주고 안아주면 나도 저들처럼 이뻐질까

그녀 이야기 2025.04.25

늙은이, 내 미래

상도역에서 자주보는 할아버지 노동자몸집만한 메낭을 뒤로 끌리듯이 메고 작은 키에 까슬한 흰머리 퇴근길 밤 상도역 gs25 바테이블에 앉아 혼자 컵라면을 먹는걸 종종 본다약간 경쾌한 느낌이 있다심플하달까 씩씩하달까 어딘가에 매일 일자리가 있어서 나가는 모양이다다행이다자꾸 눈길이 가는 사람들이 거의 할머니 할아버지인데썬글라스 끼고 남들 치면서 다니는 늙은이들에겐 눈을 흘기지만 베낭을 매고 열심히 일하는 늙은이들에겐자꾸 눈길이간다늙어서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늙어서도 열심히 일하면서 살고 싶다 가끔 광명 공사판에 비닐장막을 쳐놓은 파라솔 자리에 들어앉아 늦은밤 짐덩이를 끌고와 잠을 청하는 노숙자 할아버지가 있다슬리퍼에 굳어져버린 까만 발고락이 보인다짐덩이 끌개에는 어디서 주워왔는지 모르는 맥락없는 물품들이 엉겨..

그녀 이야기 2025.04.17

기도

오빠 사랑해요 아직도 너무 많이 힘들때 오빠를 생각해요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더는 어떤 방안이 없을 때고립되었을 때꼼짝할 수 없을 때이대로 죽겠구나 싶을 때 그 한 걸음을 더 걸을 수 없을 때 기도를 하게 되는데 더는 신을 믿지 않아 오빠를 기억합니다  나를 사랑해주었던 존재에게 기도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입니다 나를 사랑해 주었던 존재는오빠가 유일합니다  아무것도 바라는것이 없어요 다만 살아만 있어서 내 기도가 닿을 수 있기를 나에게 주었던 사랑이 아직은 괜찮다고 해주기를우리가 살아있는 동안에 어서 죽어서내가 더 이상 사랑을 갈구하는 일이 없기를 어서죽기를자살하지 않고ㄱ저 죽기를 오빠가 나로부터 자유로워지도록

그녀 이야기 2025.02.07

사랑

누군가를 사랑했던 건내가 느끼는 일방적인 감정일 경우가 많은 것 같다사실 상대가 나를 완전히 부정하지 않고 있구나 정도의 옅은 인삭만으로도내 사랑스러운 감정은 꽃을 피운다 어떤 대상에게 고백을 받는 것은 언제나 부담스러운 일이다하지만 내가 사랑을 느끼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그것이 쌍방간에 서로 확인되어야하는 과정은 그렇게 유쾌한 일은 아니다때론 안하고 싶다 내가 나에게서 보지 못했던도무지 나를 아무리 갈구어도 나오지 않는내 성장배경과 유전자와 삶의 풍파에서 도무지 만들어지지 못한 어떤 것을타인이 가지고 지키고 살고 있다는 감탄같은 것 그것이 사랑을 느끼는 순간이 아닐까 싶었다그래서 시인이 꼭 그렇게 살지 않는다고 해도 그 순간을 빚어낸 시가 아름다운 거고예술가가 꼭 그렇게 살지 않는다고 하더라고그 순간..

그녀 이야기 2024.12.03

가을오빠 안녕

사랑하는 오빠아직도 천장을 보면오빠 사랑해를 쓴다빼곡히구석구석그단어들 말고는 나의 천장을 메울길이 없어 빚을 진 것을 갚을께 그리고 오빠의 가족가정 안에서 늘 행복하기를 바랄께 나를 사랑해준유일한사람나를 끝까지보듬어준유일한인간 부모에게 정자난자받아태어났지만그전에도없었고그이후에도없었던내가 사랑하고 나를 사랑해준유일한 한 인간인간당신은 인간이었어 가을이되면오빠와함께가던 산행길이생각나낙옆길 바스락소리 낙옆냄새 오빠냄새 우리의땀냄새함께마시던술 같이나눠먹던음식우리가이야기한많은가치들 당신에게 가정이있어서참다행이야나같은문제많은인간에게서떠나가서 참 다행이야당신에게 당신만의 가족이 있어서 나는 안심이었어혹여나 나에게 그런기회가오면 나는다망쳐버릴테니까그럼에도불구하고오빠랑 같이 살아보고싶었던바램결코행복하지않았을그길그길을 가..

그녀 이야기 2024.11.12

10/18

죽이고싶은사람이 너무 많다하지만 죽이지 못한다죽인 이후의 삶이 지금보다 훨씬 더 불행할것을 알기 때문이다  내가 죽이고 싶은 사람들의 목록을 꿈에서 작성하였고,정확이 그들을 어떤 방식으로 절단하여 괴롭게 조합할 것인지를 생각했다생각만으로도 어느정도 무언가 조금은 해소가 된다  나의 오랜 불안과 분노는뇌를 정지시키는 약물로는 근본적 해결을 보지 못했다  무엇보다 내 주변엔 나를 제어해줄 보듬어줄 사람존재가 아예 없다  나는 폭주할 수 있을것같은, 게이지가 수십년 쌓여왔다  하지만 실행하지 못하고, 삶속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조금씩 방출할 뿐이다이런 글이라던가보다 본격적으로 술에 몰두하거나보드랍고 개구진 고양이들과 놀거나유머가득한 컨텐츠를 보며 히히덕 거리거나반신욕을 한다거나미용실을 간다거나손톱을 하러 간다거..

그녀 이야기 2024.10.18

2주

40대 후반까지 오래도록 겪는 배란기증후군은 한달의 2주, 인생의 절반을 미칠거같은 호르몬의 영향으로  시끄러운 소리, 특히 암컷의 정제되지않은 시끄러운 난잡한 소리들우리집 유일한 암컷고양이 먼로가 밤마다 울부짖는 소리중고딩, 그와 다를것도없는 대딩들의 자지러지는 목소리들그 본능적인 소리들이 진짜 미칠것같아서칼로 찢어죽이는 상상을 매일 해야겨우 생리를 시작하고그때서야 그 악한 욕망들이 사그라든다 나는 이걸 20여년 넘게 겪고 있다    난 군대가서 총질하고 화생방훈련하고 좇같이 뺑이치고남자로 살고 싶다  내가 이토록 오래도록 쌓은 분노들이생리혈이 터짐과 동시에 눈녹듯이 사리지고 갑자기 암컷 수컷 상관없이모든 존재들이 괜찮아지고나면 나는 나라는 동물이 진심으로 혐오스럽고 스스로 죽고 싶은 것이다

그녀 이야기 2024.10.17

깊은 우울

자살하고싶어죽고싶어오빠가 어떻게 생겼는지 이제 정말 어렴풋해둥근얼굴 둥근코길고 예뻣던 손가락곱슬머리거친뺨부드러운 몸큰 품다정한 낮은 목소리안짱 걸음걸이 눈을 감으면 천장에다가죽고싶어라고 빼곡하게 쓴다 강렬하게 원하면서도 하지 못하는 죽음시행스스로를 죽일수가 없다그냥 고양이들과 한날한시에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다 내가 자아가 존재하지 않았던 그 암흑의 시간으로 사라지고 싶다나에게 특별한 사람은 이제, 단 한사람도 내곁에 없고만날 수 없고특별한 고양이는 단비 한마리 뿐인데나머지는 그냥 죽어도 그런가보다 할것같은 마음의 상태 거의 단비 한마리 때문에나를 살려주었던나의 우울함과 파괴적인 마음에 1퍼센트도 영향을 받지 않고 똥꼬발랄한내가 울면 도망가고 눈물을 뱃살에 떨어뜨리면 때리며 도망가는너의 독립적 기질, 강력..

그녀 이야기 2024.10.15

오빠 많이 힘들었겠구나

오빠는 얼마나 힘들었을까?50대 초반에 날 만났는데한참을 방황하던 삶에서이제 그 무엇으로도 흔들리고싶지 않은 나이였을텐데 나는 40대 후반만 됐을 뿐인데도, 이제 더 이상 내 삶을 조금이라도 침범하는 그 어떤 존재도 허용하기 어려운마음의 상태가 되었는데 오빠는 나같은 쓰레기를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나는 오빠에게 큰 죄를 지었고 내가 만난 그 수많은 인간쓰레기들에게내가 당했다고 여긴만큼 오빠에게 희생을 강요했던건 아닐까 로또가 되거나사망보험금을 받거나 둘중 하나로서 오빠에게 갚고싶은데 둘다 요원하다 오빠가 얼마나 나때문에 힘들었을까 생각해보면숨이막힐지경이다나는 지금 그 누구의 존재도 다 역겨울 뿐인데

그녀 이야기 2024.1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