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 이야기 443

연말

kbs 동행이라는 프로그램을 처음 봤는데 남매와 쌀통 쌀이 떨어져가는 걸 늘 걱정하는 남매 베트남 엄마는 서울로 돈벌러 가서 연락이 뜸하고 일용직 아빠(라기엔 할아버지)는 동절기라 일이 없고 중학생 남매를 키워낸 82살 할머니는 안아픈데가 없다 여자아이는 자꾸 할머니를 안아주고 뽀뽀한다 할머니 밥도 차려주고 연탄도 갈아주고 할머니 팬티도 빨아준다 할머니 죽도 쒀서 약과 함께 주고 매일 할머니를 꼭 안고 뽀뽀해준다 아이는 아직 어린데 엄마와 아빠가 꼭 안고 늘 뽀뽀해주어야할 나이인데 아이는 자신이 받고 싶은 걸 자신을 키워준 할머니에게 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할머니 아프지 마 할머니가 건강해졌으면 좋겠어 할머니 사랑해 매일 만져주고 안아주고 뽀뽀해주는 남매 쌀이 없어져가는데도 할머니가 제일 좋아하는 식혜를 ..

그녀 이야기 2022.12.31

축하

이중적인 마음 대체 누구의 축하를 원했던 것인지 어떤 종류의 축하를 받고 싶었던 건지 나에게 있는 몇 안되는 소중한 인연들 그들의 축하와 선물들 너무 감사한 일인데 마음이 하나도 괜찮아지질 않았다 타인부정 자기부정 불안정애착 겨우 그런거 때문에 나는 이런 마음인걸까 내 불편한 마음의 정체는 무얼까 구자가 고양이 생각해서라도 살라고 했는데 그 말에 1단계가 열렸던 것 같다 본능적으로 그것이 있다 내가 만들었지만 또 내가 살아갈 이유이기도 한 특별함 오직 나만을 위한 것 사람들은 그것을 갈구한다 아니 그것에 가치를 부여한다 그냥 70년대 중매로 서로의 필요에 의해 조건에 맞추어 결혼해서 아기를 낳았고 그게 나일 뿐인데 그게 뭐 그리 축하받을 일이라고. 주구장창 존재를 거부당한 일 뿐인데 이제야 조금 숨통을 ..

그녀 이야기 2022.12.30

커튼콜, 매만짐, 늙음

백지영이 부른 커튼콜 ost를 거의 매일 듣는다 백지영 예전목소리보다 지금 목소리가 더 듣기 편안하다 감싸주는 느낌. 드라마와 너무 잘 어울린다 커튼콜 드라마 따뜻하고 좋다 하지원과 강하늘도 너무 좋다 표정이 따뜻하고 강직하며 왠지 한발짝 멀리 있는 듯한 하지원 모든 근육을 다 써서 웃는 웃상에 스스로를 던지듯 연기하는 진심의 강하늘 둘다 맑고 건강하게 느껴져서 참 좋다 고두심의 연기도 너무 좋았다. 그녀가 손자를 만나 얼굴을 매만지며 울먹일때 나도 모르게 오빠 생각이 나 따라 울었다 내가 만지고 싶은 사람을 떠오르게 하는 매만짐 내가 지하철에서 몸이 닿을까 기피하지만 노인들이 하는 일을 가장 먼저 본다 출근길 새벽마다 보는 각종 건물의 관리인들 쓰레기 정리를 하고 길거리에서 박스를 줍고 건물 앞을 쓸고..

그녀 이야기 2022.12.16

미움받은 많은 일들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지만. 그래도

수없이 떠돌아 다니면서 사람들로부터 미움을 받았던 것을 기억하면 너무 많아 셀수조차 없다. 태어나면서부터 집, 학교, 교회, 수많은 일터들. 집단에 속한 여자들은 대부분 나를 싫어하였고 구체적으로 멸시하거나 괴롭혔다. 집단에 속한 남자들은 대부분 무관심하거나 침묵하거나 성적으로 대하였다. 그나마 멀쩡했던 사람들도 내가 이상해졌다고 판단하면 피하였다. 미움과 괴롭힘을 당하는 일은 구체적이고 인과관계가 있다. 명백한 행위가 있고 기억나는 고통의 말이 있고, 통증의 각인이 있다. 하지만 반대로 아름답게 기억되는 장면을 기억하자면 그것엔 특정인도 없고, 있다해도 어떤 무드나 이미지로만 기억된다 중국 청해성으로 가던 침대 열차의 아침 20대 초중반의 우리들 햇살 논밭 기차 냄새 우리들 각자가 무엇에 열중한 모습 ..

그녀 이야기 2022.11.27

경직된 사람이 세상에서 젤 싫어

경직된 사람이 세상에서 젤 싫어 부러뜨리고 싶어 나는 부드러운 사람을 원해. 나는 그런 사람이고 싶고 그런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어 고양이와 새처럼 어디로 사라질지 모르는 동선이 좋아 직선의 길 앞만보고 가는거 사회에선 필요할텐데 목표를 위해 매진하는 모든 길을 모든 사람이 같은 보폭으로 같은 동선으로 가면 그곳은 군대지. 너는 군인같아 그런데 아들은 군대안보내고 싶어해 숨막혀 그 표정까지 전부다. 그저 무시하고 살면 그만인데 온종일 가장 오래 붙어있어야하는 사람 나를 요즘들어 대놓고 개무시하는 중 일부러 틱틱거리고 지 성질에 안맞으면 다 째려보고 투덜대고 나는 괜찮고 너는 안되고 정말 유치해서 못봐주겠음 아줌마들이란 왜들 저럴까

그녀 이야기 2022.11.18

재주

사람을 맥빠지게 하는 것 열띈 마음에 찬물을 붓는 것 남의 페이스에 전혀 동요되지 않겠다는 듯 구는 저 태도 365일 단 하루도 바뀌지 않겠다는 저 태도 강박성과 일관성 언제나 경직된 저 태도와 걸음걸이 사고방식 저런것도 재주겠지? 견디기 힘든. 너를 내 옆에 두는 건 그저 일을 묵묵히 해서이지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어 숨이 막혀 조금이라도 느긋하고 여유가 있었으면

그녀 이야기 2022.11.15

꼭 해보고 싶은 것, 주말의 계획

아직도 내게 하고 싶은게 남았나? 즐거운 건 있나? '번개탄'이라고 검색했는데 자살하면 지옥에도 못가고 이생을 떠돌며 외로운 귀신이 된다고 누가 써놓았다 (자신이 신기가 좀 있다고 했다) 문득 두려워졌다 지금 삶도 이토록 외로운데 귀신이 되서까지 흐느끼며 홀로 살아야 한다니 죽는 것도 쉽지 않겠다 삶이 다한다는게 어떤 기분일까 하나씩 망가져서 손가락 하나 까닥하지 못할 때 죽는걸까 그게 최상의 죽음일까 그냥 멀쩡하다 싶은데도 죽을수 있을건데 왠지 삶이 고통스러운 사람들에겐 삶이 숙제로 계속 주어질 것만 같다 꼭 해보고 싶다기보다 죽기 전에 문득 생각날 거 같은 일 왜냐면 못해볼거니까 아마도. 강아지 줄매고 아무도 없는 숲속길 함께 산책하기 가끔씩 강아지가 뒤돌아 나와 눈이 마주쳤으면 좋겠다 숲과 나무가 ..

그녀 이야기 2022.10.21

힘든 목요일, 졸리다. 영원히 잠들었으면

내주변뿐 아니라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모든 인간들이 싫은데 그들은 내가 그들을 싫어하는지 모르니까 전혀 신경 안쓰고 행동하는데 그게 더 꼴보기가 싫다 내 반경 10미터 안에는 누구의 인기척도 싫고 어떤 인간의 생도 느끼고 싶지가 않다 살아있는걸 느끼고 싶은 건 동물밖에 없다 이렇게 사람을 혐오하고 역겨워하고 미워하고 살의를 느낄바엔 차라리 내가 죽는게 나을거라고 생각한다 태어난것도 죽는것도 의미가 없는 인생이어서 큰 충격도 없을테다 깔끔하게 살다 죽고 싶었는데 이미 너저분하게 살아버려서 못죽는건가 아무도 슬퍼할거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불쌍하다고 여길 인간들 몇이 떠올라 괘씸하다 나를 불쌍하게 느낄 자들은 살아있는동안 나에게 죄를 진 사람들이다

그녀 이야기 2022.10.06

강아지

9월 내내, 한 파양보호소 강아지를 생각했다. 나는 조건이 터무니없다. 원룸에 4마리 고양이. 거기에 파양된 채 보호소에 젤 길게남은 암컷 진돗개라니. 모두가 말렸고, 내가 요청한다한들, 구조단체가 나에게 맡길리도 없었다. 그런데 많이 힘들었다. 너무 마음이 쓰였던 뭉실이. 지금은 임보를 갔다. 다행이다. 그런데 뭉실이가 80여마리 강아지중 가장 마지막에 남을때까지 나는 뭉실이를 매일 인스타그램을 통해 보았다. 그 아이만이 보였는데, 그 아이만이 남았다.. 하지만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나의 무력하고 한심한 삶의 상태가 미웠다. 보고싶은 뭉시리...임보기간동안 행복하고 너의 미소처럼 좋은 주인 만나길 바랄께 - 최현우(시인) 가장 쉬운 이름을 골라주었지 다른 이름을 가졌던 네가 같은 상처를 생각할까..

그녀 이야기 2022.1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