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 이야기

미움받은 많은 일들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지만. 그래도

misfortune4 2022. 11. 27. 06:55
수없이 떠돌아 다니면서 사람들로부터 미움을 받았던 것을 기억하면
너무 많아 셀수조차 없다. 
태어나면서부터 집, 학교, 교회, 수많은 일터들. 
집단에 속한 여자들은 대부분 나를 싫어하였고 구체적으로 멸시하거나 괴롭혔다.
집단에 속한 남자들은 대부분 무관심하거나 침묵하거나 성적으로 대하였다.
그나마 멀쩡했던 사람들도 내가 이상해졌다고 판단하면 피하였다. 
미움과 괴롭힘을 당하는 일은 구체적이고 인과관계가 있다.
명백한 행위가 있고 기억나는 고통의 말이 있고, 통증의 각인이 있다. 
 
하지만 반대로 아름답게 기억되는 장면을 기억하자면
그것엔 특정인도 없고, 있다해도 어떤 무드나 이미지로만 기억된다 
 
중국 청해성으로 가던 침대 열차의 아침
20대 초중반의 우리들
햇살 논밭 기차 냄새 우리들 각자가 무엇에 열중한 모습
중국 사람들 속에 섞인 우리의 낯설지만은 않았던 모습
그곳에서 들었던 중국어는 한국에서 수도없이 듣는 시끄러운 중국어가 아니었다
부드럽고 차분했다. 우리는 그곳에 자연스럽게 섞여도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장족의 아이들은 해맑았고 그들 중에 흥분되있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다.
목격하고 경험한 유목의 삶은 편안했다
그곳에서 두려움을 느낀 적이 전혀 없다.
청결함을 느끼지도 않았지만 더러움도 느끼지 않았다.
그냥 자연스러웠다.
그 사람들에게서 나는 냄새가 아직도 기억이 난다
붉게 터진 뺨. 땋은 머리, 새까만 손. 우리를 보던 까만 눈. 만들어먹던 요거트, 삶아서 손으로 뚝뚝떼주던 양고기의 맛. 오래된 모든 냄새들. 씻지 않아도 괜찮았던 것들.
손을 담가주던 국수도, 오래되어 낡은 옷가지도, 모두가 생생히 기억난다 
 
 
 
산과 하늘. 오직 그 두가지만 존재하던 풍경.
오빠의 땀 얼굴 웃음 바스락소리 산냄새 나무 흙 숨소리 하늘 무거운 다리
하지만 목표가(완성이) 정해진 싸움
잡아주는 손 이끌어주는 존재들
힘들지만 단단하고 안정된 느낌
 오르고 내리면 너무나 가벼운 느낌
날아갈것같아 늘 술을 마시고 꼭 안아주었다 
 
 
 
영화관. 어둡고 눈이 움직이고
모두가 같은 것을 본다는 안심 
개인적이지만 공공적이던 장소
불이 켜지면 떠나야하는 곳
불이 꺼지면 따뜻해지던 곳 
 
 
 
뭔가에 늘 맞서야 했던 기억이 많지만
가치관에 어긋나는 것에는 반항적이고 눈에 거슬렸지만
좋아하는 것에는 맥을 못추는 병신이었다.
극단적인 것보다도 두루뭉실한 회색분자같은 느낌을 경멸하였던 것 같다
그 무엇보다
이기적이고 팔이 안으로 굽고, 단체의 논리, 서로의 봐주기,
안에 들어오지 못하면 배격하는 논리
혼자 싸우는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해 서로 눈감아주며 뭉치는 사람들을
경멸하였다
극단적인 것을 사회가 싫어하는 것을 잘 알지 못하였다
지금도 내면은 비슷하지만
하도 술을 마셔대서인지 노화를 거쳐서인지
판단력이 흐려지거나 잘 드러내지 않게 되었다  
 
 
 
이런 생각까지 도달하다보니
너무 나이가 들었고
주변엔 사람은 없고 고양이만 있게 되었다. 
 
고양이는 내게 남은 것이 아니라
내가 적극적으로 혹은 어쩔수없이 데려온 것이니
내가 선택한 것이나 다름 없다. 
 
 
아직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생길까봐 두렵다.
누구도 좋아하지 말아야겠다고
매일 매일 결심한다.  
 
누군가 좋아지면 내가 바보같이 당한 모든 기억을 총동원하고
누군가가 미워지면 내가 미움을 견디지 못해 행한 어리석은 날들을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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