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이렇게 빨리 떨어질까?
하이힐도 샌달도 이상하게 빨리 닳고
옷도 빨리 닳고
바디비누도 너무 빨리 닳고
세탁비누도 너무 빨리 사라지고
세제도 자꾸 없어지고
치약도 금새 홀쭉해지고
샴푸도 산지 얼마 되지도 않은 듯 한데 바닥을 드러내고
방향제도 어느새 날아가버리고
향수도 푹푹 줄고
미스트도 자꾸 비어가고
와인도 너무 빨리 줄고
머리도 너무 빨리 자라고
손톱도 자꾸 지저분해지고
얼굴도 너무 빨리 달아오르고
마음도 너무 빨리 닳고
살아가는 건 지지부진하기만 한데
재료는 자꾸 닳아버려
공급만을 기다리고 있다
나는 돈을 벌자마자 채워넣어야하는
내 인생의 채무자
아끼고 아끼는데
그것들은 왜이리 빨리 증발해버리는 것일까
몸에 닿기가 무섭게 어느새 비어가는 통들을 보며
다 없어 사라질 것들을 위해 돈을 버는건
밑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 같단 생각이든다
자고 일어나는 꿈같은 공간에 꿈의 값을 지불하고
인간의 온도를 유지하기 위해 가스비와 전기세를 내고
세상과의 텔레파시를 위해 핸드폰요금을 내고, 인터넷요금을 내면
겨우 한달이 마련된다
입금이 된 날은 떨어진 재료를 채우는 날이다
겨우 채워넣고 안도를 하면
통장엔 최소생계비만 남아 있다
이제 30일을 어떻게 쪼개쓸까만 생각한다
사라지는 것들에 저당잡힌 인생이었다
지금 오늘날까지
내가 정말 그것을 몰랐을까
몰랐기에 이렇게 살았을까
아니 난 어쩌면 그걸 외면했는지도 모르겠다
자유로움은 외면이 아니었던 것을
내 처지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아는 것이
진짜 내 인생의 시작이었던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