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 이야기

익숙한 상태

misfortune4 2019. 10. 25. 12:39




이젠 모든 것이 익숙하다.


아무것도 안읽고 안써도 삶이 돌아가는 것도,


오빠에게 전화가 오지 않는 것과,


내가 걸지 못하는 것도, 


답장도 오지 않는 문자를 보내기를 조금씩 포기하는 것도,


늘 돈이 없고 궁색한 것도,


동정을 요구하며 힘들어하는 것도,


냉장고를 열어 술을 마시며 하루를 시작하는 것도,


새벽 4시부터 고양이들이 물어대는 것도,


안으면 할퀴고 도망가는 것도,


키움이 한국시리즈에서 무너진 것도,


더 이상 내 부모도 언니도 없다는 것도,


아무도 나를 그리워하지 않는 것도,


아무도 나에게 고맙다고 하지 않는 것도,


아무도 내 의견에 동조하지 않는 것도,


내가 더듬는 말에 당황하는 눈을 쳐다보는 일도,


나를 아래 위로 훑어보는 늙은이들의 더러운 눈깔도,


임산부석에 떡하니 앉는 고기덩어리들도,


누군가를 씹기만 하는 것도


누구도 칭찬하지 않는 문화도


누군가에게 불합리하게 불어닥친 불행에도 나는 피했다는 안도감을 느끼는 인간들 집단도


언론이 지껄이는대로 믿어버리는 게으른 인간들도


나같이 한심한 여자도 살아간다는 사실도


모두가 다 이제 익숙하다

아프지 않다

아무것도 나를 아프게 할 수 없다

나는 아무것도 아프지 않다

나는 이제 아프지가 않아

감기도 걸리지 않아

다치지도 않아

넘어지지도 않아

울지도 않아

외롭다고 안아달라고 하지도 않아

사람이 보고싶지도 않아

고프지 않아

사랑도 밥도

고프지가 않아


와인하고 고양이만 있으면 돼

월급하고 단칸방만 있으면 돼


나는 그거면 돼

아무것도 

아무도


필요하지가 않아

원하지 않아



한번의 정의가 있었으면 좋겠어


딱 한번


정의가 구현되었으면 좋겠어


착하고 좋은 사람들이 구원받는 날이 왔으면 좋겠어


뼈속까지 경박하고 저속하고 악하게 살아서 성공한 사람들이 모두 망가져버렸으면 좋겠어


착한 사람들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처단받았으면 좋겠어


안일한 사람들의 의식에 칼을 꼽고 싶어


두려운 겁쟁이들의 옷을 벗기고 싶어



양심을 팔아

행복을 사려는 사람들에게

양심을 못팔아

불행을 행복으로 쇠뇌시키는 사람에게


양심을 팔아

불행을 사는 사람이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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