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와 먼로처럼
나도 오빠하고 핥아주고 안아주고 서로의 품안에서 잠들고 싶다
고양이들은 서로 재지 않고 잘 만나는데
나는 돈도 없고
오빠를 나에게로 부를 어떤 계기도 가지고 있지 않다
서럽고 슬프다
사람들의 세계에서 살기에 나는 너무 버겁다
내가 너무 버겁다
누구에게도 더이상 매력적일 자신이 없다
껀수를 가지고 유혹을 할 수도 없다
나에게 오라고 할 어떠한 근거도 없다
나는 누군가를 끌어들이기 위해 살지 않았다
그걸 위해 노력해본적이 없다
나 자신의 울타리를 든든히 만들어 놓으면 누군가 나와 함께 해줄꺼라고 생각해본적도 없다.
그렇다고 내가 누군가의 울타리에 들어가고 싶은 적 역시 없다
정말이지... 단 한번도 그런 숨막히는 상상을 해본적은 없다
하지만 내 옆에
누군가가 있었으면 좋겠다.
만질 수 있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아니 숨쉬는 온기를 가진 인간이 착한 인간이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나는 그를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을것만 같다
하지만 무언가를 선택한다는건
선택하지 않은 것을 책임진다는 뜻이라고 했다
이제 내 인생은 선택하지 않은 것을 책임지는 일만이 남았고
나는 그것을 끊임없이 미뤄온 댓가를 치루고 있다
그 전에 내가 이토록 미뤄온 이유를 따져볼 수 있다
나의 선택은
불행이었고
불행한 조건이었고 그 한가운데의 처연함이었고
나는 그것을 적극적으로 느끼고 알고 겪고 싶었던
이상한 사람이었다.
나의 선택이 나를 행복하게 하기 위한 것에 몰두해있었다면
나는 기꺼이 그 책임을 지려 했을 것이다
나는 불행해지고 싶었다
물론 그것은 나의 오랜 무의식이었다
나는 버림받고 싶었다
그러나 좀더 처연하게 그러고 싶었다
나는 그 느낌에 빠지고 싶었다
사랑받아서는 안되는, 아니 사랑받기는 이미 불가능한 미운오리새끼로 자란 나는
어설프게 주어진 삶의 조건들이 경멸스러웠다.
부모는 다 있고, 아파트에 살고, 차도 있고, 학교도 간다.
부모는 그거면 됐지 라고 생각하며 자식을 학대한다.
나는 가난하고 착한 부모
돈이 없어서 굶어도 나를 안아주고 따뜻하게 느끼게 해주는 부모
두명이 아니어도, 아니 내 핏줄이 아니어도.
그냥 어떤 한명의 어른이어도 족했다.
유치원때부터 엄마한테 방에 가둬 맞으면서
나는 이런생각을 했다.
기억이 또렷이 난다.
고아들이 나오는 만화영화를 보며 울었다.
나도 고아이고 싶다.
저들은 고아인데도 저리 맑고 꿋꿋한데
나는 고아도 아니고, 매일 슬프니,
너무 괴리감이 느껴졌다.
웃어라 캔디야 들장미 소녀야....
나는 고아가 되고 싶었다.
내 꿈은 고아였다 아주어려서부터...
사춘기에는 부모를 죽이는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그들을 죽여야 내가 살 수 있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내가 행복한 삶을 위해 선택한 것이 없었기 때문에
그 선택의 뒤에 남은 지금 나의 책임만이 남은 것들이
내게 버겁고 불합리하다고 느끼고, 외면하고 있다.
내 인생은 실패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무도 나 따위를 기억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내가 사준 물건들을 보며
내가 해준 것들을 기억하며
추억은 할 것이다
추억을 할 것이다
그래 시원이는 그랬었지
나한테 잘 했었지
라고.
아무도 내 인생에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타인의 옷깃만 스쳐도 몸서리칠정도로 싫어서
쭈뼛서버린다.
날이 갈수록
사람들이
모두
밉다.
아니 그들은 평범하다
나는
그들로부터 도망치고 싶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 살고 싶다.
아무도 없는 곳에 혼자 있고 싶다.
아무도, 내 옆에 아무도 없었으면 좋겠다.
오빠만이 올수있지만
그는 오지 않는다
그러니까 아무도 와서는 안된다.
나를 건들이면 모두 죽일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사실 아무도 죽일 수 없다.
나를 죽여야한다.
하지만 그럴수없어서
타인을 공격하고싶어지는것이다.
언제쯤 나를 죽일 수있을까
고양이들에게
나의 이런 마음을 조금도 들키지 않고 살 수 있다.
나는 직장의 누구에게도 늘 밝기 때문에 이런 티를 내지 않는다.
나는 누구에게도 이런 티를 조금도 내지 않는다.
나는 고양이들에게 잘 해준다.
사람들에게도 잘 해준다.
그들에게 내 애기를 하면 모두 ?? 갑작 왜그래 할 것이고
나는 더 외로워 질것을 알고 있다.
나는 더 외로워지고 싶지 않아서
아무말도 하지 않는 법을 택했다.
심지어 의사선생에게도
좀더 세련되게 나의 우울을 늘어놓는 법을 선택했다
그의 1년 넘은 치료를 물거품시키고 싶지 않다
나는 결코 아무것도 좋아지지 않았다 다만
약의 금단증상-미칠것같은 전기감전과 땅이 꺼지는 느낌-을 얻었고
뒤에서 나는 소리를 보고 도망가는 것이 아니라 참는 법을 익혔다
대신 내 옆을 지나갈때 작게 욕하는 법까지.
그게 나의 달라진 점이라면 그렇다.
자신의 눈치를 보게 만드는 의사는 좋은 의사일까?
젠척하고 세련되고 신사임을 강조하는 사람은 좋은 사람일까?
나는
이 사회에서 그럴듯하게 잘 살수있다
그것이 내가 입원하지 않아도 되는 경미한 환자임을 증명한다.
그러나 사람과 사회에 대해
털끝하나 손상받고 싶지 않은
더 이상 다치고 아프고 상처받고 싶지 않은
너무나 걸레처럼 되버린 내 마음을
더는 어찌할 수 없이 방치하고
더 병이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은
그 무엇으로도 치유될수가 없다
그것엔 우리 부모의 폭력과,
사랑에 대해 알지 못했던 자들이 종교를 믿을때 벌어지는 무지막지한 일들과
사랑을 받아본적이 없는 자들이 너도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고 만들어버리는 무지막지한 냉정함과
지성이 없는 상태에서 사회적 위치만 거머쥔 많은 사람들에게 길들여진 우리 윗세대들에게
끊임없이 눌림당하고 미움당하고 판단당하고 상처받은 내면의 자아들이
나는 그것들을 어떻게 승화시키고 발전적으로 노력해야할지
조금도 고민하지 못했다
나에게는 정말이지 긍정적인 에너지가 너무나 부족했다.
나의 내면은 지금 거의 폐인에 가깝다.
하지만 거울 속의 나는 너무 멀쩡하다.
죽고싶다.
고양이들을 먼저 좋은 주인을 찾아주고 나서 생각해야할 일이겠지만
오빠가 미국에서 돌아온 걸 확인하고
좀 좋아진 상태인것을 확인하고
생각할 일이겠지만
오빠가 좀더 좋아지고 사업마무리도 잘 하고 노후일도 잘 찾고 나서
생각할 일이겠지만
내가 소중하다고 느끼는 모두가(그래봤자 고양이와 오빠이지만) 안정되고 나서 생각할일이겟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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