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 이야기

김포생활 1년째

misfortune4 2021. 6. 20. 23:03

여기 구래동에서 내 취향에 맞는 곳은,

내가 좋아하는 블랑 드 누아 샴페인 중 3만원대의 저렴한 와인을 파는 이마트

쫄깃한 치아바타, 버터소금빵, 결이 살아있는 크루아상 따위을 파는 작은 빵집

그리고 나머지 한 곳은 아직 가보지 못한 곳이다-언제 없어질지 모르는.

 

신도시 특성상 뜨내기 가게들이 많이 생기고, 우후죽순 상가들이 들어서기 때문에 그만큼 

폐업률도 높다. 1년 사이에도 많은 가게들이 바뀌었으니까.

 

이 못가본 카페는 정말 좋은 스피커를 장착한 곳이고,

길을 가다 들으면 한번쯤은 발길을 멈추게 할만한 선곡 리스트를 가지고 있다.

김포에서 샹송이 나온다니. 90년대 가요나 요즘의 보이그룹 걸그룹들 노래가 시끄럽게 울려펴지는 곳에서 말이다.

 

나는 저 카페에 들어가고 싶다.

하지만 일단 너무 작고

손님이 많지 않고

손님이 있을 때도 잘꾸민 젊은 아이들이 있다.

 

과거의 나 같으면 일단 들어가고 보았을 곳이지만

지금 40대가 훌쩍 넘은 내 모습은 나도 너무 잘 알기에

화장은 커녕 몸매도 형펀없고 옷도 형편없는 동네 아줌마의 모습임을 잘 알기에

그저 기웃거리다 음악을 듣다 발길을 옮기곤 한지 벌써 몇달이 지나고 계절도 지나버렸다.

 

카페는 별곳은 아니다. 그저 돈을 주고 커피를 사먹으면 그만인 곳이다.

하지만 그곳의 선곡리스트를 매일 퇴근길 듣는 나로선 그렇지 않은 것이다.

 

내 스스로가 저곳에 어울리는 모습이 되었을 때까지 저 가게가 문을 열어주었으면 하고 바래본다.

이런 내가 바보같고 한심한 것을 잘 안다. 돈을 내고 커피를 마시면 된다. 지금이라도.

 

하지만 나는 지금의 모습으로 들어가고 싶지가 않았다.

왜 그럴까.

그냥 잠옷입고 부시시한 머리를 하고 와인에 취한채 집에서 듣는 음악일 뿐인데

왜 그러지 못했을까.

 

지금 나는 심각하게 아니 근래 몇달의 나는 심각하게 우울하고 외롭다-하지만 그래서 더욱 아무문제가 없다.

나는 업될때가 오히려 문제이다-돈을 막 쓰고, 아무데곤 전화를 하고, 울고, 웃고, 연락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욕망을 표출한다. 나는 그런 나를 이제 감당할 자신이 없다. 

나는 어쩌면 우울증이 아니라 조울증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냥 생각이란 걸 안하고 살고 싶다.

내가 가장 위험할 때는 생각이란걸 시작할 때이다.

나는 생각에 걸맞는 행동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며 실행능력도 없도 조건도 갖춰지지 않았다.

헌데 나는 그 생각을 상황에 맞게 바꾸지 못한다. 나에게 그런 능력이 너무나 턱없이 부족하다. 

나는 왜 조율과 타협을 못하는 융통성 없는 인간인걸까.

 

그래서 나는 생각을 하지 않기로 어느순간 내 자아를 포기한 것 같다.

나는 서서히 바보가 되가고 있다.

예전엔 바보가 되는 나를 견딜 수 없어서 약을 몰래 끊어버렸다면

이젠 스스로 바보가 되는 나를 그냥 한걸음 떨여져서 쓸쓸히 바라보는 법을 택하였다.

 

책도 모두 가져다버리고 시집몇권과 그림 몇점을 남겨두고 가끔 들척이며 숨이란걸 가끔은 쉬고

그러다 금새 덮고는 술을 마시면 그보다 더 몇배는 행복 아니 그저 아무 감정을 안느끼니까 편하다.

 

감정이 없다는 것이 이렇게 편리할줄은 예전엔 미쳐 몰랐다.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어떤 말에도 화가 나지 않고

누구도 무엇도 간절히 원하지 않고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나를 침입할 수 없는 느낌.

 

내가 아닌

내가 만든 곳에 나를 가두고 사는 느낌만이

 

내가 현실에서 살아갈만한 유일한 방법이라고 아직은 그렇게 밖에 발견하지 못하겠다.

 

내 인생이 죽지 않는다고 하였을 때 나는 어떤 답을 찾을 수가 없다. 

 

나는 영원히 행복할 수 없다.

고양이는 귀엽고 사랑스럽다.

그리고 나는 행복하지 않다.

고양이는 내가 행복해야 행복할까?

놀아주고 밥을 주면 행복하다. 내가 돈이 많아 넓은 공간에서 좋은 캣타워에서 안락한 쇼파에서 살면 행복할까?

아니다 고양이는 내가 놀아주고 밥을 주는 행위 자체를 좋아한다. 고양이는 다른 욕심은 없다. 

내가 행복하지 않아도 나는 놀아주고 밥을 줄수 있다. 그래 그거면 됐다. 

 

 

 

 

고구려가 완간되었다고 알라딘에 장바구니에 넣어 오빠에게 보내려는데 주소를 모른다는 생각에 서글펐다.

 

이젠 아무것도 해서는 안된다. 설레고 행복한 일들은 모두 서른 말 무렵에 내 곁을 떠나갔다. 

나는 이대로 갇힌 채 살거나 더 불행해지거나 더 타락할 일만 남은 것이다.

게중에 갇힌게 제일 낫다고 판단하여, 약을 먹고 모든 남자들을 차단하고 외모 가꾸기를 포기한 것 뿐이다. 

 

내가 눈물나게 사랑했던 것들은 모두 허상이었을까.

 

 

사랑하는 방법을 잘 몰랐던 것 같다. 

 

 

생명은 모두 소중하다.

 

하지만 강순희라는 여자는 김인철이란 남자와 결혼을 하면 안되었다고 생각한다.

 

집에 다녀왔다 아직도 귓청을 때리듯 그녀의 목소리가 윙윙댄다.

 

내가 견딜 수 없는 엄마의 목소리. 더이상 아무 감정도 미움도 없는 그들을 견디고 돌아오면

 

나는 눈물이 나 고양이들을 껴안지만 모두 내가 우는건 싫어하니까 도망간다.

 

사람들이 삼삼오오 떠들면서 돌아다니는 주말의 저녁을 견딜 수가 없다.

특히 슬리퍼끌고 돌아다니는 가족들의 시끄러운 소리들은 나를 소스라치게 만든다.

 

집에 얼른 들어가 이불을 쓰고 울고 싶다 하지만 그들의 발소리는 우리집 현관앞까지를 내 뒤를 쫒아온다.

뒤에서 들리는 사람소리는 여전히 견딜 수 없다.

사람들은 너무 무례하다.

혼자가는 사람을 아무도 배려하지 않는다.

 

누군가 인생에선 혼자일 수 있다고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다.

 

 

나는 아직도 서럽고 외롭다.

 

내일부턴 다시 나를 가두는 연습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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