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비나 앤 드론즈는 더 노래를 하지 않는 걸까. 두 장의 음반이 모자라기도 하고, 벅차기도 하다. moon light같은 노래를 부르고서, 새로운 삶을 살아낼수있을까. 월드뮤직은 광장에서 대중을 향해 한을 토해내는 카타르시스가 있는데, 그녀는 방구석에서 혼자 작업하는 근래의 편집증적이고 자의식의 동기로 움직이는 듯한 태도를 가지고 있다. 언밸런스하다. 태도와 장르가 맞질 않아. 아무것도 터트려지지 못하고, 그러한 기운이 자신안에서 맴돌거나 자신안에서 침체되는 이상하고 우울한 잔여감을 노래한다. 노래를 공급한다기보다, 어떤 식으로 음악을 해결해가는지를 보여주는 받아들이는 입장같은 것에 서있다. 결코 해소될 수 없는 음악이다.
2. 19층이라는 높이가 반지하에서 느끼던 감정하고는 분명히 다르긴하다. 고가도로위로 새벽까지 달리던 차가 새벽부터 다시 달린다. 누군가는 계속해서 깨어있다. TV도 등도 촛불도 가로등도 계속 깨어서 새벽을 향한다. 아침까지 흔적을 지우지 못하는 모든 새벽의 온고잉의 흔적. 사실 아침의 풍경으로부터 우리는 계속되고 있었던 그 무언가를 찾는다. 낯선 어떤 장면처럼 대하는 것이 아니라, 문득 깨어서도 새벽과의 연관성을 찾고, 내가 살았던 곳과의 연관성으로 사고하려 하고 있다. 그를 오랫만에 매만져보아도, 예전의 그 뜨거울때의 느낌을 찾는 것이다. 흔적을 더듬는 것이지, 현재의 생생함에 대해 완전히 사고 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늙어가는 건지, 인간이란 원래 원초적인 감각을 찾는 존재인건지. 아니면 그저 내가 지금 새로운 감각에 대한 욕망이 없는 것인지.
3. 김소연 시인. 문지문화원의 불친절한 답변. 새벽 1시 40분에 날아온 두줄자리 답변, 할수있으면 하든가.라는 식의. 참으로 황당한 일이긴 했다. 듣고 싶지만 참여할 일이 두렵다. 아무것도 제대로 써본적이 없고, 제대로 배운적도 없이, 뭔 문학을.... 하지만 이 아무렇게라도 사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는 무가치한 삶에서 의미하나를 잡고 싶다. 사랑도, 감촉도, 내 삶의 직접적 동기와는 자꾸만 멀어질 것을 종용하고 있기에 나는 그 대체적인 무언가, 아니면 그것의 원본이었을수도 있을 것을 찾아야만 할것같다는 생각을 한다. 누구도 무엇도, 기다린다기보다 불가능한 모양새로서 매우 기분나쁘게 실용적인 존재들로 흩어져있는 기분이 든다. 내가 원하는 것을 가능성의 세계로 옮겨놓는 작업을 하게 된 것이 이 시대에서 눈먼 돈을 벌기 위해 감내해야하는 굴욕적인 기분들의 해소를 위해 시작된 것이다. 가능한 것이란 즉각적인 것이다. 당장 내 눈앞에 나타나야만 하는것, 안나타나면 불러오기라도 해야하는 것. 내 시야에 대한 그 모든 것. 그것에 분명히 오래된 지속의 감정들이 희생당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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