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왜벗어나는게어려울까 나는 왜 멈추는게 두려울까 나는 왜 제어를 못할까. 안하면 되잖아. 라는 아주 간단한 답이 있다. 안하니까 못하는거 아니야라는 문법의 오류도 있다. 복합적인 문제들은 모두 자신에게만 있다고 생각하는 안일한 방식이 있다. 타인에 대해서는 간명하고, 자신에 대해서는 백가지도 넘는 변명을 안고 사는 우리들.
그것을 해야할때가 왔다는 것을 안다. 오늘같은, 지금 이곳 사무실의 느낌은, 마치 이런 생각을 위무할정도로 적막하다. 모든 극단성의 생각은 개인에게서 나온다. 그러나 그 생각을 홀로 빈 공간에서 하게 될 때 사람은 무서워진다. 이 공간이 그 생각으로 가득차면, 어떤 판단도 없고 고요하고 평화롭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래 바로 지금이어도 괜찮다. 아무도 나의 그것때문에 삶이 흔들리지는 않을 때. 과거를 추억하고 현재를 안타까워할 정도에 그칠 때, 모든 사람들과 그런 정도의 느슨한 관계가 되었을 때, 그럴 때가 적기인 것이다. 그런데 사실 오래전부터 그런 관계는 내가 만들어온듯하다. 나는 누군가와 특별한 관계를 맺고 싶지 않았다. 나는 고립되는 일을 심리적으로 원하고 있었던 것 같다. 병을 일부러 원하듯이, 나의 나빠짐을 방치하는 것이다. 심리적인 것에 질색을 하면서도, 나는 사실 심리적인 싸움에 조종당하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새디즘의 경향. 애정에 대한 강박. 애착대상과의 분리됨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이런 문제가 생겼을수도있다.
하지만 정신분석학이란 사후의 일이거나,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불안감이거나, 사람에 대한 컨트롤욕망 때문에 생겨난 것이 아닐까.
사랑에 쉽게 빠지는 경향, 사랑에 집착하는 경향.
인간의 사랑을 본능의 영역에서, 심리와 성향의 문제로, 유아기 시절부터 고착화된 문제로 보기 시작한다면
그것에는 어떤 가치의 문제가 접근할 틈이 사라져버린다.
'그는 사랑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성향을 지녔다'
라고 말한다면. 정말 우스운 학문이 아닐까.
나에게 그런 문제가 없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에 지배당했다고 말할수는 없다. 나는 가치를 더 믿고, 그것에 의거에서 삶을 살아왔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기로는 나의 가치의 문제를, 우선수위의 문제를 이해받고 공감할 수 없었기 때문에 잘 제어해서 정상적으로 살 의지를 서서히 버렸던 것 같다. 살면서 지켜야할 것이 없는데, 제대로 살 수 있다는 것이 오히려 미친 사람이 아닌가?
되돌아보면 내 인생은 반발감(에 따른 열정)과 공허함과 예민한 감각에 따른 분노와 피곤함. 그런것이 지배한 삶이었다.
사랑받는다는 건 뭘까. 내 태도에 따라서 얼마든지 쳐낼수있는게 사랑이란걸까. 나에게 다가온 사람을 내보내는 모든 방법을 나는 알고 있다. 또한 강력한 끌림의 대상에 대해 어떻게 다가가야 하는지도 어쩌면 속속들이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나에게 다가온 사람을 받아들이는 일은 여전히 하지 못한다. 나에게 왜 다가왔는지. 무엇을 보고 기대했는지, 차갑게 굴면 금새 상처받고 돌아설지. 모든 것이 의문스럽기만 하고, 무엇보다 너의 눈에 씌인 나에 대한 그 무엇을 나는 모르기 때문에 부응할 자신이 없고, 그럴 의무도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의 무엇을 보았건, 그건 너의 문제이자 너의 이미지(환상)이다. 나의 무엇을 느꼈던, 그건 너를 위한 감각이다. 내가 본래 소유하고 있는 감각이 아니라, 너에게 필요한 감각이다. 나에게 너의 그것을 채워줄 마음이 과연 있을지, 아예 노골적으로 물어보는 편이 나을 것이다. 하지만 누구도 그렇게 솔직하지 않다. 그냥 지금 너를 벗겨내고, 다 속속들이 알기 전이니까, 호기심만 가득할 뿐인것이다. 호기심을 깨주면 된다. 호기심과 열망을 식게 하는 일. 내가 고립되는 한가지 방법이었다. 어짜피 나를 속속들이 알면 떠날 이들에게 미리 옷을 벗어보이는 것이다. 내 벗은 옷을 입혀주는 이는 없었다.
죽음과 공간.
죽음을 생각하게 만드는 공간이 있다. 내 옆에 속속들이 스며들어오는 그 음산함들이 따뜻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알콜중독이 있다. 약간이라도 취하지 않았을 때 가끔씩 치고 들어오는 건강한 의지들이 낯설게 느껴진다. 나 괜찮네. 옆에서 막 사람들이 웃으며 지나간다. 기분이 나쁘지 않다. 나 괜찮은거네. 아주가끔은 내가 이대로 주욱 살아도 괜찮을것만 같은 의식이 존재한다는 걸 확인할 때가 있다.
술을 지금때문에 마시는 것은 아니다. 앞으로를 위해서 마시는 것이다. 앞으로 몇분후, 몇시간 후 나는 밀려오는 불안감, 잠못이룸에 시달릴거고, 또 울꺼고, 재키를 적실꺼고, 오빠를 부르다가 전화를 또 걸수도 있고, 소리를 지를수도 있고. 아니면 자학을 할수도 있고. 이것을 하지 않기 위해서 마시는 것이다. 사람들은 알콜중독이 개인적인 습관적인 문제인것처럼 말한다. 나약함의 표상인것처럼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생존에 대한 문제와 술이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을 보지 못한다. 죽고싶지 않아서 마시는 것이다. 삶을 통째로 감각하기가 두려워서, 그러면 질식할것같아서, 아니면 그런 내 모습을 그대로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 사람들을 죽이고 싶지 않아서, 세상을 미워하고 원망하지 않기 위해서. 타인을 멸시하지 않기 위해서. 모두가 그렇고 그렇다고. 서로 미워하지 말자고 다독이기 위해서... 나의 삐죽삐죽하고 예민하고 틀어지고 높아지고 낮아지고 한 의식들을 죽이기 위해서. 마시는거다. 그래서 대한민국은 지금 통채로 알콜중독이다. 아니 무엇에든 중독증세를 보이는 건 그때문이다. 잘살고싶어서. 죽고싶지 않아서. 숨쉬고 싶어서. 그런데 성숙할자신이 없어서. 그리고 나만 사랑받고 싶어서. 아니 나도 사랑받고 싶어서. 아니 그 둘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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