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황당한 일이 있었다. 무개념+무대가리식 BMW 운전자가 되느니 평생 뚜벅이족으로 남에게 피해안주며 살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이사온 앞집 다세대 주택 사람인데 문앞에 차를 세워놓고는 비켜주는 일에 거드름을 피웠다. 이사차량이 들어오는데도 막무가내였다. 이 건물 지을때 시끄러워서 자기가 얼마나 피해를 봤는지 아냐면서 내차 얼마짜린지 알아? 이런느낌으로 나를 꼴아보았다. 그리고는 이사차 운전아저씨한테 못비키니까 후진해서 나가라고 했다. 그러나 그 차 유리창에는 자그맣게 용산대리점이라고 적혀있었던 걸 나는 본터라, 일부러 무시하는투로 이 건물 당신꺼 아니면 무단주차로 경찰에 신고하기전에 꺼져. 라고 버럭 소리를 쳤다. 그 사람은 '정신나간 여자아니야 이거?' 하더니 나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고, 어느샌가 그 남자 아버지뻘로 보이는 노인네가 옆에 나와 뒷짐지고 안경너머로 이 사태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 고함에 못이겨 그가 집으로 돌아갔으나 계단 창문에서 혹시나 자기 차를 어떻게 하는가 아닌 의심의 눈초리로 계속해서 (아비와 아들이 교대로) 감시했다. 아들의 눈에는 나같은 여자에 대한 분노가 이글이글 타는듯이 느껴졌고, 나는 저 사람이 칼만 들었으면 나를 죽일수도 있겠구나 하는 공포가 찰나 들었다. 하지만 나 역시 내 편에 칼이 있었으면 저 사람을 위협했을수도 있다. 나는 빚쟁이 와인쟁이니까 저런 어울리지도 않는 정신상태로 거만을 떨어대는 꼴이 얼마나 우스운지 잘 안다. 내가 욕을 할수만은 없다는 것도 잘 안다. 그래서 그 사람이 더 미웠는지도 모르겠다.
#2
대치동 원룸에 잠시 살았던 20대의 어느 날 하루에 선택한 미용실 때문에, 늘 머리를 자르러 십년넘게 대치동을 가고 있다. 처음 만난 미용사 언니는 잡지를 잔뜩 오려 온 나를 호기심있게 바라보며 스타일에 자극을 받았고, 나를 시험대삼아 다양한 머리-장진영 마틸다 머리, 엄정화머리, 장만옥머리, 헐리우드 50년대 여배우 머리 등을 연출해주었다. 지금은 머리에 대해 어떤 요구를 하지 않아도 나를 알아서 매만져준다. 그 선생님이 얼마전 교통사고를 당했다. 나는 청천벽력이 내린 듯 했다. '아 머리를 어디서해야하지' 머리는 내생명과도 같은데... ....
지난 주엔 다른 곳을 예약해놓았다가 취소했다. 아무래도 안되겠다 싶어서였던 것 같다. 의외로 너무 친절하게 받아주어서-살짝 조선동포말이 섞인 어눌한 말투로- 취소하는 일이 미안하게 느껴졌다.
다행이 선생님이 회복되어 새치머리가 잔뜩 난 내 머리를 예쁘게 염색해주었다. 귀를 이러저리 닦아주고 머리를 타올로 말려주는 20대 초반의 언니의 손길에서 마치 내가 그의 애완견이 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미용실에 오면 강아지가 된 것 같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계산하는 일밖엔 없다. 계산하는 강아지. 멋진 강아지가 아닐까!
암튼 그곳에 들리면 꼭 나폴레옹 제과점엘 간다. 내가 서울에서 제일 좋아하는 나의 제과점!이라는 기분에 들떠 미용실을 갈날만 손꼽아 기다리지만, 가보면 이곳만이 나의 아지트라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김이 새곤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거의 다방수준으로 할아버지/할머니들이 많다. 대치동이라는 동네가 학군때문에 젊은 엄마아빠들도 많지만 오래된 동네라 그런지 노인들도 꽤 많은 것 같다. 노인치곤 잘 차려입은 분들이 삼삼오오 앉아서 커피와 빵을 드신다. 그 모습을 보고나면 사실 더 많이 김이 새버린다. 그들 틈에 앉아서 혼자 빵을 뜯어먹어봐서 잘 안다. 노인들의 냄새와 쓸데없는 눈총/이상한 관심에 찬 눈빛들을 힐끔힐끔 받다가 그들의 아무의미없는 본능적 행동이 누적될 시 혼자 화를 벌컥 내며 나가겠지. 오해받는 노인들도 화내는 나도 별로다. 앉지 않고 나온다. 종일 굶어서 손에 든 빵봉지에서 나는 빵냄새에 나도 모르게 자꾸 손이 가려고 하지만 차마 도로 한복판에서 뜯어먹을 순 없다는 확고한 신념으로 버틴다. 집에 가서 렌지에 대워서 핸드드립으로 커피를 내려 혼자 향긋하고 우아하게 마셔야지. 상상해본다. 사진도 찍어야지. sns에 음식사진을 올리곤 하는 여자들이 나는 그렇게 꼴불견이진 않다. 음식 하나를 먹어도 괜찮게 먹고 싶은 게 허세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음식은 소중한건데 왜 예쁘게 먹으면 우아떤다고 욕을 할까. 참 이중적 잣대가 아닐수없다. 와구와구 인생뭐있어? 이래가면서 퍼먹고, 비벼먹고, 빙둘러앉아 쪽쪽빨며 먹는것 보다는 음식에 대한 태도에서 훨씬 낫다. 맛있을수록 천천히 아껴먹어야 한다. 맛없는 것인데 배를 채워야한다면 나도 누구보다 와구와구 먹을 자신이 있단 말이다. 이래뵈도 혼자 밥먹은지 19년인데, 우악스럽게 혼자 아무거나 대충 먹은 시간이 나보다 많은 사람이 또 있을까?
#3
지난 금요일 마지막으로 노량진행 열차를 탔을 때, 열심히 VOD로 케이팝스타 5를 보고 있는데 열차가 덜컹 흔들렸다. 그 바람에 나는 본의 아니게 이상한 댄스를 추다가 겨우 제자리로 돌아와 앞에 앉은 남자를 내려다보니, 그는 내 눈길을 의식한듯 약간-아주미세하게- 표정을 꿈틀댔다. 그는 무슨 도표가 잔뜩 그려진 경제도서같은 걸 각잡힌 포즈로 읽고 있었는데, 동인천에서 출발한 노량진행 열차에서 이런 남자를 만나는 것은 거의 처음 있는 일임으로-대다수가 떡진 머리와 겨울내내입는 냄새나는 파카차림으로 아침부터 알피지게임을 해대니까- 일단 기분이 그냥 좋았다. 마지막날 이런 행운도 있군. 그러나 분명히 그는 영등포쯤에서 내리겠지-가끔 깔끔한 남녀들을 보지만 거의 영등포에서 내린다. 여의도로 출퇴근하는 인력들이려니 생각하곤 한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왠걸 그는 내가 내리는 노량진역 방송이 나올때까지 미동도 않은 채 책을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흰 얼굴에 깔끔한 외투. 잘 빗어넘긴 머리. 어울리는 시계와 가방.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건 잘 닦인 구두. .. 거기까지 훑다가, 갑자기 내가 남자. 라는 대상에 대해 이렇게 열심히 관찰한게 도대체 얼마만이지.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눈을 번쩍 뜨고는, 흠. 나보다 열살은 어려보이는 어린내를 두고 내가 이런짓씩이나. 하는 자각과 함께 문쪽으로 몸을 돌렸다. 빨리 포기해서 다행이야. 더 훑어봤으면 난 정말 진상이 되었을꺼야. 잘했어 김시원. 하고 있는찰나, 노량진역에 도착했는데 거짓말처럼 그가 벌떡 일어나 내 뒤에섰다.! 나는 내렸다. 그도 내렸다.내 뒤에 바짝 붙어서 오고있다. 발소리도 안나게 어찌나 사뿐사뿐걷는지-그러나 기운으로는 그가 나를 따라오고 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여기서 내가 멈춰서 먼저 가게 비켜주면 쳐다도 안보고 자기의 길을 갈 사람이라는 걸. 그럼으로서 지금까지의 약 몇초간 나의 기대를 흐트러트리는 것이다. 역시 나는 비켜서고야 말았다. 그 긴장감을 유지할 자신이 없었고, 그날 나는 너무 몸이 안좋았던것도 같고... 그는 약간 고개를 숙인 채 걷고 있었던 것 같다. 앉아있을때보다 10배쯤 멋이 있는 느낌이었다. 저벅저벅 그는 잠시 주춤하더니-하지않았지만 내가 그렇게 슬로우비디오로 느꼈을것이다-자신의 길을 갔다. 거꾸로 내가 그의 뒤에서 가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그의 뒷모습을 올려다보지 않았다. 자신이 없었다. 노량진역에 오다니는 수천여명중에 저런 느낌을 주는 사람은 없다. 그는 잘못내렸거나, 어제 실직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옆으로 얼핏 스쳐본 그는 전체적으로 완벽했지만 좀 슬퍼보였다. 힘이 없었으나 그저 늘 훈련한 태도들이 그를 움직이게 하는 느낌이랄까. 게다 잠시 스쳐본 눈에선 나와 비슷한 느낌마저 받았다. 저 사람에게는 나같은 사람이 필요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어렴풋이 들었다. 밝고 튼실하고 활달한, 외모가 좀 떨어진다해도 말이다. 자신의 어두움을 들키지 않아도 되는 그런 사람이 곁에 있어줘야할것만 같았다.
#4
나는 지금까지 줄곧 불행해왔기 때문에, 내가 더 불행을 느끼지 않는 법은 어쩌면 너무 간단했다. 지금까지 하던 모든 것을 하지않으면 된다.
그러면 이 모든것이 못버티고 나를 슬금슬금 떠나줄것이다. 내 몸이 안하겠다는데, 너라고 어쩔소냐?
몸의 의지를 가지고, 소화가 안되는걸 이용하여 술마시고 꺼내버리고, 또 빈속에 와인을 넣고, 흔들거리는 위와 머리를 움켜쥐고 이 파견직 근로자라는 쪽방신세를 잊고, 나보다 못한 자를 멸시하고, 꼰대스러운 행동을 보이는 자들을 대놓고 무시하고, ... 악한 것들을 참지 못해 똑같은 악으로 응수하고, 나를 자극하는 것에 대해 조절하지 못하는 이 총체적 장애인이 내가 사회에서 돈을 벌고 사는게 나는 이상할 정도이다.
이제 이 모든 걸 안하겠다고 말하겠다. 너무 좁아지고 망가져서 더 할 수도 없다. 그럴 여력도 없다. 하지않기. 지금까지 살아보겠다고 내가 취했던 모든 방식의 위악을 내려놓기. 그냥 적극적으로! 그걸 하지 않기! 내가 또 속을줄알고. 다신 안속아. 그런 행동이 아니어도 난 충분히 더 불행했고, 행복했어. 사람과 책 때문에, 이젠 그것들 때문에 행복해지고 불행해질래. 거기서 또 다시 상처받아도 나를 멸시하지 않을꺼야.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 지나친것과 모자른 것은 별 다를바가 없는지도 몰라. 힘들어도 무조건 그냥 견딜꺼야. 시간이 알아서 지나가게. 나를 파괴하지 못하게. 내게 누적되어 나를 슬프게 하지 못하게. 더는 시간에 짓눌려 울지 않을래. 그건 나를 어떻게 하지 못해. 강물처럼 흘러가면 시간도 나를 어쩌지 못할꺼야. 분명한 건 나는 시간을 파괴할 수 없다는 사실이야. 나는 그것에 완전히 실.패했어.
속 시원하게 실패했어.
모두가 자기 시간을 사는데, 나는 나의 시간을 살지 않았어. 그때부터 시간과의 싸움이 시작된거야. 나에게 몰려오는 시간들을 파괴하고 싶었거든. 여기 지금 같이 있는 모두가 각자 흩어져 그들만의 시간으로 돌아가는 걸 볼 때, 나는 바닥이 없는 것처럼 흔들리고 슬펐어. 나는 돌아갈 시간이 없었어. 나는 어디로 가야하지. 아직도 슬픔에 바닥이 없다는 걸 알아. 없다는 것을 안다? 그건 모른다는 표현이겠지. 바보같이.
바닥을 의식하지 않기로 한거야. 여기는 조금 다르게 살기위해 내가 선택한 곳이야
내가 살아본 곳중에 가장 좁은곳이기도 해. 비좁아서 몸투정도 못할 그런 곳에 둥지를 틀고, 집을 단장하는 기분이 이상하게 나를 위안했어.
순돌이도 양양이도, 재활용센터로 보내졌어. 이젠 그들을 안고 울고, 찌찌주고, 그런 인형놀이 그만하기로 했어. 아이들을 버리고 올때, 갑자기 순돌이가 없어지면서 내 양초에 탄 엉덩이가 보였어. 울지 않으려고 다부진 표정을 지어보다 엘리베이터안에 들어가서야 울고 말았어. 내 손때가 묻은 저 아이들이 이젠 분해되었을꺼야. 나는 목걸이에 아빠엄마이름을 건 재키를 차마 보내진 못했어. 옷을 빨아 입히고, 몸도 닦아주고. 그 아이를 데려오고야 말았어. 하지만 괜찮아. 그 아인 그냥 재키일뿐이야. 우리의 매개체.
나는 소박했던 때로 돌아갈거야. 다른 환경에서 같은 행동을 하는 바보는 되지 않을꺼야
줄이고 작아질꺼야
어떤 활개도 치지 않을꺼고, 웅크리고 살꺼야.
책만 읽으려고 해. 그것만이 나를 커다랗게 만들어줄꺼니까.
하지만 책으로 커진 머리로, 또다시 내가 누구를 판단하고, 무시하고, 내가 뭐라도 되는양 떠들까봐 겁이나기도 해.
책은 행동하게 한다는 점이야.
그럼 나는 나를 작게 만드는 소심한 책을 읽어야할까?
내게 읽히는 책이라곤, 단언하는 소리들이 가득한 책들 뿐인데.
나는 독단적인 길을 정말 가게되는걸까.
빚부터 갚으려면 책이 뭐야?라며 2차까지 뛰는 직장인이 되어야하는 건 아니고?
내게 필요한 행동은 어쩌면 그것일지도 모르는데...
일할 땐 일하자.
버는 만큼 벌어서 아껴쓰고, 돈생기면 빚부터 갚자.
삼척동자도 아는 건데
나는 모르고 싶었던 일들. 부정했던 순간들. 아름다웠고 타락했던 시간들. 후횐없어. 아니 후회해. 지금도 후회하며 살아. 후회라는 감정조차 아름답다고 느낄만큼 난 그걸 애착/애정해. 난 왜 이렇게 태어난걸까 같은 한심한 질문을 해 볼뿐. 그렇게 살고싶지 않았던거라구! 같은 명징한 사실이 내 뒤통수를 때리니까.
나는 내 뒤통수를 때리면서 살아왔는지도 몰라. 37에 죽겠다며 덤벼든 사랑에 나가떨어져도, 내가 이렇게 안죽고 살아있네. 그만큼 고귀한 게 인생인가보다. 인천에서 마지막날 샤워를 하다, 그 줄에 목매단 최진실을 다른 수많은 사람들을 생각했다. 그 줄로 목을 감는 순간, 얼마나 죽고 싶을 만큼 끔찍하고 외로웠을까. 나는 샤워칸에서 그 순간 안개서린 유리창에 오빠 얼굴을 그려넣었다. 오빠가 어떻게 생겼더라. 눈을 이렇게 코는 이렇게 입은 요렇게 작고 머리는 이렇게 몸집은 이렇게. 그 그림을 보고, 내가 기억하는 오빠 이미지만으로 나는 행복해질수있다는 사실에 눈물이 났다. 샤워기줄로 목을 멜때는 그 얼굴이 떠오르지 않아서였겠지. 내가 기억해낼 이미지가 아무것도 없이, 온통 내 마음을 가득한 악이 붙잡아 나를 까마득하게 만들었을때였겠지. 그 순간에 나도 무슨짓이든 하고야 말겠지. 그런데 나에겐 자꾸 그런 순간마다 떠오르는 이미지들이 있고, 결국 그것들이 내게 다른 차원으로의 생각으로 이동하도록 돕는다.
이상한 일일까
영화에 빠졌던 나에게는 어쩌면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미지란 종교와도 같은 일이다
다른 차원의 세계가 우리의 뇌에 스캐닝되어 있다.
이미지로 기억한다는 것.
우리가 이미지로 기억된다는 것
은 축복이다
끔찍한 사람들은 절대로 이미지로 기억되지 않고, 생각과 행동과 말로 기억되곤 하니까....
오빠는 내게 그런 사람이다.
여전히 그가 막하던 말이 내게 남아 나를 눈물흐르게 하지만
나에게 그를 그리라면
그림을 그리라면
나는 그를 그렇게 웃는 얼굴로 여전히 그린다.
그것이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기로 한다.
사랑해. 너무많이 사랑해. 내 기억들을 사랑한다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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