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 이야기

개보수중인 토요일

misfortune4 2017. 2. 25. 15:13




창문하나를 두고 있는 방안으로 많은 차들이 시동을 걸어대며 분주할 그들의 일정을 알리는 토요일 오전이 왔다. 나의 몇 평안되는 방, 작은 침대까지 흔들리지만 악착같이 눈을 감는다. 주중엔 새벽 서너시를 너끈히 넘어 겨우 새우잠만 자던 나다. 두고보라는 심정으로 울다시피 기다려온 주말인데 이 정도의 잠으로는 보상이 되지 않는다. 되서도 안된다. 나는 자야만 한다. 이건 명령이다. 나는 너희들의 방해를 개털만치도 신경쓰지 않을만큼 피곤하니까. 피곤하니까. 나는 피곤하다고. 이런 주입을 벌인다. 몸은 이미 말똥말똥한데 내 명령은 허무하게 머리맡을 맴돈다. 그 생각은 끊임없는 실랑이를 벌인다. 그냥 일어나서 뭔가를 한것보다 더 피곤해질것같은 단계가 오면 거의 짜증을 부리듯 일어나고야 만다. 그새 11시 반을 넘어선다. 세상모르고 잔 시간보다 명령과의 싸움을 벌인 시간이 얼토당토없이 더 길다. 그 생각을 하니 갑자기 머리가 지끈댄다. 일단 이 어두운 곳을 나가고 싶다. 아니 뭔갈 해야 더는 이 주말이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는다. 그러려면 힘이 필요하다. 힘을 내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담배. 하지만 이 방은 환기를 시킬 수 없으므로-창문을 열면 곧 주차장이고 사람들이 수시로 오다니면서 보기 때문에-늘 그랬든 쉽게 포기한다. 사실 이젠 거의 생각나지 않지만 남자생각엔 담배다. 끊을 수 없는 하나의 이유. 그너저나 전혀 당기지 않았지만 그저 대안으로 냉장고를 여니 어제 먹던 술이 잔과 함께 그대로 한잠을 잤다. 예쁘네. 자고일어나도. 조금만 마시자. 한모금꿀꺽. 빈 식도를 타고 내려온다. 역시 아침으론. 이젠 나가야지. 씻고 감고 대충잠든 뭉게진 푸들같은 머리가 거울속에 심하게 심드렁하다. 낑낑대며 드라이하고 얼굴엔 대충 오일같은 걸 바르고 오빠가 준 향수를 조금 몸에 뿌리면 그렇지. 언제나 향은 기분을 만진다. 몸을 만져본다. 여기저기 이제 물살들이 집힌다. 위와 장에서도 꾸륵꾸륵댄다. 거기도 마찬가지. 내 몸안엔 물이 너무 많은데, 언제나 외피는 심히 건조하다. 

거의 요즘같이 옷관리를 안한적이 있었나 싶다. 잔뜩 거리의 먼지를 머금은 털 외투 두벌이서 겨울을 나느라 도시의 비둘기처럼 꾀죄죄하다. 신발장엔  나의 애마들이 축축하고 퍽퍽한 겨울을 보내느라 닳고 뭉게진 채 일정한 냄새를 뿜어내며 지친듯 보인다. 얘들부터 살려야 내가 살겠다. 커다란 쇼핑백에 싸들고 세탁소부터 나서기로 한다.

딸깍- 현관문을 여는 소리의 주체가 되는 기분은 좋다. 누군가가 들어온다는 기분은 좋지않지만 내가 나가는 기분은 좋다. 골목은 생각보다 밝고 따사롭다. 공기가 약간은 달라져있다. 아직 차가운 바람은 있지만 몇일전 그 악랄한 뒤끝을 보이는 겨울은 이제 아니다. 세탁소의 문을 열자 언제나처럼 편안한 드라이크리닝 휘발유냄새가 난다. 아 좋다. 저기요- 아저씨는 티비를 튼채 졸고있다. 김시원이요. 검은 패딩이에요. 눈을 반쯤 뜬 아저씨가 한참을 천장을 향해 쇠고리가 걸린 막대기를 휘집는데 잘 찾지를 못한다. 한참만에 찾아낸 옷에는 이시원 이라 적힌 종이가 크게 붙어있다. 일년 째 저분은 이름이 뭐더라 하시면 김시원이요. 네 김시원씨 하고는 이시원이라 적는다. 많은 원룸이 밀집해있고 사람의 이동이 잦으니 그럴수있겠다. 이름표가 붙여진 옷들이 착착 줄지어 천장에 걸려있는 게 오늘따라 약간 기괴하다. 죽고 난 껍데기들이 걸려 깨끗하게 내장을 씻어내고 걸려 있는 듯 하다. 누구의 껍데기였는지를 증명하는 이름표를 달고. 이건 아닌가. 하. 그래도 내 옷은 솜이 빵빵하게 살아난채 비닐 안에서 쎄근쎄근 숨쉬고 있네. 아 죽인 게 아니라 살린거구나. 아저씨 고마워요. 얘를 또 입을만큼의 추위는 다시 오지말기를 바래 보았다.


이젠 구두를 수선하러 방이시장으로 나서볼까. 토요일 점심의 시장은 언제나고 좋은 것 같다. 빛을 그대로 받아 먼지와 냄새가 활개를 펼치지만 그게 아련하고 설렌다. 막연한 활기가 있다. 기계적이지 않은. 무언가를 어떻게든 팔기 위해 사람들이 살아있다. 반찬도 만들어 나오고 뻥튀기도 튀긴다. 밀가루로 빵도 만들고, 배추, 무, 시금치들도 나와 진열대에 올라있다. 동네는 서로 팔고 사주면서 공동체로 성립이 된다. 그 속에 비집고 들어선 프랜차이저들이 이곳에선 더 후지게 보인다. 시장통을 휘집고 난폭운전을 하는 저 벤츠만큼이나. 

구두방 아저씨는 일그러진 얼굴과 뭉뚝한 손마디, 초점이 맞지않는 눈을 가진 기괴한 사람이었지만 친절했다. 오빠가 4년전쯤 인터넷 쇼핑몰에서 주문해준 귀여운 통굽 디자인의 검정 애나멜 구두를 슬그머니 내밀었다. 많이 망가져 있었다. (너무 늦게 오셨어요). 여기저기 살펴본 아저씨는 구조 자체가 무너져서 임시방편으로 고쳐봤자 다시 떨어질것이라고 했다. 눈가리고 아웅하듯이 붙여주면 6천을 벌겠지만 자신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 말 조차도 영업 중인 말같았지만 그래도 성의를 부리는 것에는 괜찮았다. 나머지 부츠들은 굽갈이를 하고 구두약을 먹여 닦았다. 벌써 5-6년이 넘어가는 겨울부츠들이지만 그래도 둘이서 번갈아가며 내 발의 온기를 지켜주었다. 당시는 드물었던 해외직구. 오매불망 기다려 구매한 미국의 구두디자이너의 작품이다. 특별하고 멋있었는데 시간이 흘렀고 길이 들었다. 한국 보도블럭의 사정에 맞게 적당히 상처가 나고, 만원 지하철에 시달리는 한국의 출근길 답게 뒷굽의 가죽라인은 여기저기 치이고 벗겨졌다. 이거 하나 흠날때마다 지하철에서 그 사람이 점이 되어 보이지 않을때까지 노려보던 기억이 난다. 정말 죽일듯이 노려봐야 속이 시원했다. 사과를 하는 사람도 없지만 그럴 필요도 못느끼는 것이다. 어짜피 나를 찬 그사람의 발도 누군가에게 치이고 있다. 게다가 요즘은 이런 하이힐의 부츠를 잘 신지 않는다. 그래도 나는 신는다. 낮은 신발은 키가 큰 사람이 신는 것이라고 여전히 믿고 있다. 사람들은 믿음을 너무 쉬이 포기하는 경향이 있다. 편한 것은 결국 만들어 가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편하다고 나에게도 편한 것은 아니다. 


내 아이들이 산뜻해지자 나의 기분도 그러하다. 거리엔 옅은 꾀죄죄한 시장냄새와 어설프게 들어선 작은 커피숍의 원두냄새, 시장에서 구워내는 싸구려 빵냄새, 쪄내는 떡냄새같은게 몰려와 나를 이상한 시간대에 데려다놓는다. 엄마손을 잡고 다니던 대전 우리집 앞 용두시장, 포대기들이 즐비하던 어렴풋한 풍경, 나홀로 서울에 와 노량진 고시원에 살면서 다니던 시장통의 기억. 그 더러운 바닥이 너무나 싫고 그 비린내가 힘들었다. 펄떡이는 생선들을 패대기쳐가며 우렁차게 가격을 불러대던 아저씨들이 억척스러움이 부담스러웠다. 그저 오늘 외운 한국사 한 장이 잊혀질까 두려워 몸을 사리며 지나친 길고긴 시간들. 홀로 자취하던 광명의 시장통. 그곳의 보리뻥튀기가 너무 먹고 싶어, 주말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1시간을 걸어 가서 사먹던 기억. 500원이 모자라서 쩔쩔매자 그냥 가져가라며 튀긴거 몇개를 더 얹어주면 자기들끼리 웃어대던 아줌마들. 저 아줌마들이 날 비웃은건 아니겠지. 그냥 딸같아서 그랬겠지. 괜히 눈물이 나고, 엄마가 보고 싶었다. 시장에 가면 엄마가 보고 싶었다.



마음의 굴곡이 깊어질때쯤 시장의 막다른 곳을 빠져나오자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고층빌딩에 앞선 가로수들이 개보수중이다. 겨우내 지저분해진 고목같은 나무가지를 잘라내고 싹이 트도록 하는 작업인 것 같다. 맨숭맨숭 끝이 무뎌진 나무들이 어색하게 서있다. 깔끔하기도 하고 우습기도 하지만 뭔가 다름을 준비하는구나라고는 알수있다. 잘라내버려진 나무 귀퉁이를 슬쩍 만져보았다. 싹이 나다만 나무가지가 힘없이 툭 꺾어진다. 


이어폰을 꽂고 거리를 걸었다. 성문영이 소개해준 nine pound shadow의 음악이 근사하게 어울렸다. 

석촌호수는 녹았고, 완연히 흘렀고, 




첨단빌딩옆의 하늘은 그 풍경만큼 쨍했다. 

햇볕을 온몸으로 받는데 있어 아무 걸리는 것이 없다는 저 오롯이 높이 있는 자신만의 위엄.

그 쪽의 공기는 너만이 알겠지? 하늘도 그에 응답하네. 구름한점 없이. 깨끗하게. 조금은 위험하고 위태롭게. 





음악과 함께 햇빛과 함께 물에 무거워진 내 몸이 한결 나아짐을 느낀다. 생각이 거의 잦아들었다. 남자들이 드글대는 흡연부스 근처에서 담배를 피워 물자, 주변에서 쭈뼛거리던 어린 여자애들이 하나 둘 내 곁에와 너도 나도 담배를 핀다. 기분이 나아진다. 지하철에서 한 귀여운 아가를 보았다. 손에 든 곰돌이의 한쪽손만을 잡은 아이. 그때문에 균형이 무너진 채 대롱대롱 매달려 가는 곰의 귀엽고도 슬픈 느낌이 쉬 가시지 않는다. 아이가 귀엽다. 옆에서 모피를 껴입은 채 아이를 수시로 체크하던 어머니의 눈치가 보여 제대로 찍지는 못한다. 기린반 아이. 무럭무럭 크렴. 한마리의 기린처럼 우아하게 자라렴.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