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 이야기

냉장고 앞에서

misfortune4 2019. 1. 19. 22:15



냉장고 앞에서 술을 마시는데

갑자기 노량진 재수학원의 수학선생 생각이 났다.

이름에 '노' 자가 들어간 것만 기억나는데, 절대 박노해 같은 이름은 아니었다. 

당시 수학 단과로는 꽤 이름을 알리던 강사여서인지

내가 다니던 학원이 유명하지 않았음에도 단과수업에는 꽤 큰 지하강의실을 빌릴 정도였다. 

그 사람이 자주 쓰던 말은 '통빡' 이었다.

나는 그게 무슨 말인지 잘 몰랐지만 애들이 웃어서 그저 따라 웃었다. 

말인즉슨, 잘 보이는 곳에 수학공식 하나를 적어넣고 

그 공식을 적용해야만 풀리는 문제들을 하나씩 골라 풀어내면서 공식을 써야할 타이밍이 오면

공식이 적힌 칠판 자리에다가 정확히 분필을 집어던지며 '이것이 통빡이다' 라고 외치는 것이었다.

지금보면 하나도 웃기지 않은 그런 방식이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 분필던지는 방식보다도

영화 '닥터지바고' 에 대한 그의 이야기때문에 더 기억에 남는 듯 하다.

본인이 노량진 전철역에서 출근을 하다보면 너무 웃기다는 것이다.

다 앞만 보고 맹렬히 걷는 사람들을 흉내내며

'사람들이 왜 이렇게 주변을 볼줄 모르냐' ' 낭만이 없어' 이러면서

본인이 학교 땡땡이를 치고 여자친구와 닥터지바고를 보러 극장에 간 얘기를 하곤 했다. 그것도 아주 자주. 

하지만 그 지하철에서 똑같은 모습으로 걷는 사람들을 흉내내는게 재밌어서

매번 같은 얘기를 할 줄 알고도 우스웠고 흥미로웠다. 

그때 그 수학공식이 뭐였는지, 도대체 그 긴시간동안 졸음과 싸우면서 뭘 배웠는지는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고

이런 것들만 머리속에 남아있다.

생각해보면 그 수많은 강사들 중에 기억이 나는 사람들이란

아주 캐릭터가 분명했던 사람들이다. 

자신을 과감히 드러냈던 사람들이다. 발음과 호흡을 안으로 들어마시면서 강의하느라 온 목소리가 쉬어버린 이상한 스타카토 형식의 말을 내뱉는-흡사 군대처럼- 대머리 아저씨 국사선생이라던지, 전교조임을 과감히 드러내면서 굵다랗고 두터운 목소리와 음성으로 우리가 배워서 점수를 올려야 하는 것과 실제를 명확히 구분짓던-심심찮게 다 개소리죠 라는 말을 해대던- 국어선생님이라던지(당시 내 짝궁 지영이의 최애선생님)... 사실 이 3명을 빼놓고는 도무지 내가 누구한테 무엇을 배웠는지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 그들의 수업시간에 들었던 것들 중 시험과는 상관이 없었던 이야기들과, 일상과는 다른 패턴의 무엇인가만을 기억하고 있다. 


술 앞에서 왜 이런 기억을 떠올렸는지는 정말 모르겠다.

동작구 흑석동 직장을 다니면서 노량진을 꽤 자주 다니지만 당시 있었던 학원들의 간판도 모두 바뀌고, 상징과도 같았던 노량진 육교가 없어지고, 늦은 밤 줄기차게 찾아다니던 닭갈비집 골목도 카페로 바뀌었는데, 

아마도 사육신 묘 때문인것같다. 어느날 모범생 짝꿍 지영이가 늦은밤공부를 하다말고 우리(점심밥같이먹고 어울려다니던 멤버-지영이, 나, 정규, 윤경이, 주리)를 불러모아 잠도 깰겸 사육신 묘를 가보자고 했다. 지영이는 당시에도 교육과 역사에 관심이 많고 꽤 진지했던 아이였다. 나는 거기가 어딘지도 모르고 따라가 한밤중에 무덤을 보았던 기억이 난다. 이곳의 역사적 배경에 대해 지영이가 얘기해줬지만 내가 기억나는 것이라곤 차가운 밤공기, 남색 하늘, 함께 뛰는 우리 다섯명의 재수생, 불투명한 미래, 그래도 맑은 느낌이 무언가 희망적인 것.... 그런것에 관한 것이었다. 


어제밤 야근퇴근길 버스가 그곳을 늘 지나치다보니 나의 잠재의식속에 그곳에 대한 추억이 자연스럽게 연결되었나보다.



가장 늦게까지 연락을 한 정규마저 연락이 끊겼고


이젠 정말 다들 어디서 어떻게 사는지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지만


윤경이는 영어를 잘해서 해외를 오다니며 뭔가 일을 하고 지영이는 계속 공부를 해서 뭔가 다른 분야의 전문가, 높은직책? 그런게 되있을거고, 주리랑 정규는 교대를 가서 선생님을 계속 하고 있을 것이라는 것만 안다.


아마도 내가 잘 가장 안된 친구이지 않을까 싶다. 


그들을 만나도 나는 별로 할 얘기가 없지 않을까 싶다. 


시험이 끝나고도 대학을 다니면서도 노량진역앞에서 만나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던 우리였는데, 이리 된게 너무 아쉽다.


중학교도 고등학교도 그립지 않은데, 재수시절은 언제나 그립다. 

모두 개성이 달랐지만 누구도 누구를 몰래 욕하거나 시기하지 않았던 때는 나에게 그때가 유일했던 것 같다. 

초등학교때는 전학을 오다니며 왕따를 당했고

중학교때는 친구의 모함과 말더듬에 대한 놀림에 시달렸고

고등학교때는 성적 스트레스와 나의 반항기 폭발로 얼룩진 나날들이었고-그나마 고등학교2학년때 만난 지연이와 영혜(처음 맥주를 마시던 지연이의 집에서의 추억이 그립다. 지연이의 부모님은 그걸 허락해주셨다. 그 아이의 집은 매우 자유로웠고 따뜻했고 활기찼고, 지연이는 너무나 웃긴 아이였다. 영혜도 코미디언에 가까운 아이였는데, 남기분 생각안하고 솔직하며 기복이 심해서 친구가 많진 않았다. 하지만 나는 영혜랑 지영이랑 어울렸을 때가 가장 자유롭고 행복했다.)말고는... 그때만큼 나에게 좋은 친구들은 없었던 것 같다. 우린 누구도 깎아내리거나 질투하지 않았다. 그러기는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이렇게 외롭고 가난하게 살게 될 것이라곤

스무살 그 시절엔 단한번도 상상하지 못했다.


생각해보면 그시절은 지금보다 더 가난했고, 부모의 지원도 없이 학원을 다녔고, 밥사먹을 돈이 없어 굶고, 늘 첫차와 막차를 타는 외로운 인생이었지만, 나는 고통스럽지 않았고, 희망적인 느낌에 더 사로잡혀 있었던 것 같다. 



그 느낌을 다시 찾으면 되는걸까?



어떻게 찾아가야 하는걸까

돈이 없으면 한없이 불안하고 우울하기만한데

냉장고에 술이 없으면 

나쁜 생각만 드는데




이영표가 어떤 책을 썼는데

신앙인의 한계를 느끼는 문구를 너무 많이 봐서 덮었다.




아무의미 없고, 어제보다 오늘이 더 좇같아도

살아내는 사람들이 있고

그것이 하나님께 저주받은 인생이 아니라고



그에게 들려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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