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여간 매일 먹다시피한 약을 끊고 있다
어지러움과 빈정맥같은 것 토할것같은 것 전기감전된거처럼 구두 뒤꿈치를 땅에 디딜때마다 오는 것
2주가 넘었다
조금씩 익숙해질려나 싶기도
할 수 있을까?
지나가다 아무 병원에 들어가 내 약을 적어준 전 주치의의 메모를 보여주며
중독환자처럼 손을 덜덜 떨며
약좀 주세요. 라고 하는 내 모습을 상상해보기도 한다
다행히 직장인 흑석동과 상도동, 그리고 와인사고 머리하러 다니는 대치동, 우리집 인천의 도화동 근처에는
그 신경정신과라는 간판을 잘 볼 수 없다.
흑석동 상도동은 학생들의 집결지로, 거의 식당과 술집 카페가 즐비하고
대치동은 이름을 다 읽기도 버거운 수많은 학원들의 간판만 빼곡히 있고
인천 도화동에는 새 아파트를 짓는 공사현장들과 인부들이 먹는 식당들과 편의점들 뿐이다
내가 매일 보는 풍경에서
나는 나를 치료해야겠다는 생각을 할 수가 없다
직장 주변에선 뭐 새로운 음식점이라도 생겼나 기웃대는게 전부고
대치동에선 내가 가장 행복해지는 곳, 예쁘게 파마하고 머리자르고 맛있는 로제와인 사고(욕망에 눈이 멀고, 은행잔고는 잊고)
집 주변은 공사인부들의 침뱉는 거나 뭐 오피스텔 사는 양아치들의 담배냄새나, 배달을 온 오토바이 행렬이나,
택배원들의 담배피는 모습이나 뭐 그런게 전부니까.
이 김에 와인도 끊어볼까 생각해본다
더 이상은 마실 돈도 없다
내 급여로는 내가 이렇게 살면 안된다
내 급여로는
고양이 캔 갯수줄어드는 거에 노심초사하며 밤잠을 설쳐야하고
맥주코너를 실컷구경하고는 필라이트 한병을 들어야하고
머리가 희어지고 파마가 풀어지고 지저분해질때도 어찌됐든 드라이실력을 발휘하여 살아내야하고
모든 세제의 끝에 물을 부어 흔들어 써야 하며
삼각김밥이 지겹다는 생각 자체를 하면 안되고
와인없이 사는 법을 연구해야 한다
남자를 사귀거나, 그냥 섹파를 구하거나 하는 거로 나의 욕망을 풀면 와인을 안마시려나?
하지만 나는
고양이 캔을 잔뜩 사놓고
애들에게 먹을거 많다고 자랑하고
맥주코너에서 일주일에 한번은 IPA를 그냥 사기도 하고
머리가 희어지고 파마가 풀러지면 미용실에 그냥 가고
세제가 줄어들면 리필을 사버리고
삼각김밥이 지겨워지면 갑자기 비싼 치즈를 종류별로 사 와구와구 먹기도 하고
돈을 빌려 와인을 사먹기도 한다
절대 남자는 만나지 않아도 된다
돈을 빌렸으니까
남자에게 빌붙어 와인을 사달라고 조르거나 하룻밤을 댓가로 뭔갈 얻어먹거나 하지 않아도 된다
예전엔 그렇게 해보기도 했지만
별로 좋지 않았다
여튼 약과 와인을 안먹으니
우울한 노래를 다시 찾고, 읽으면 울게되는 박연준의 책을 또 읽게 되고
시집을 또 읽는다 음악을 들으면서
유시민이 사랑했던 노무현, 노회찬 관련한 발언을 하면서 우는 동영상을 괜히 찾아보다가
눈물을 쏟기도 한다
다시 슬픈것에 조금씩 마음이 열린다
약을 안먹을때 간간이 찾아오던 현상이다
건강하게 욕망에 정직하게 그러면서 타락하지 않게
사는 법을
아는 사람은
있을까?
<건투를 빈다>의 김어준은 알까?
그는 참 씩씩하던데
그처럼 호인이 되는 법은 뭘까
아니 무언가에 집착, 슬픔이나 술이나 우울한 정서나. 그런것이 나의 숨쉴틈으로 여겨지고,
그런 감정 속에서 내가 편안해질 때
나는 건강해지지도 않고, 건전해지지도 않는데
나는 왜 편안할까?
건강하지 않은 느낌이 왜 편할까
건전하지 않은 느낌이 왜 설레일까
왜 그러할때 영혼이 열리는 것 같은 느낌을 느낄까
건강하게 아프고 싶다
내가 버는 돈으로도 위처럼 살수있었으면 좋겠다
나는 불행해지고 싶지 않다
나는 내가 하는 일에 비해 너무 대우를 받지 못해왔다
일에서든 사람에게서든
나를 당당히 주장하면
버림당할것같았거든
실제로 그러하기도 했고
내 욕망을 죽이고 살기에
이미 개발되어 정착된 욕망이 있다
그것에 불행히도 돈이 든다
로제와인을 무료로 제공하는 나라는 없을것이며
시집을 무료로 배포하는 나라도 없다
각종 세제와 소모품들을 배급해주는 나라도 없다
머리 파마를 국가에서 예쁘게 해주고
흰머리 염색도 국가에서 챙겨주기를 기대하는 건
너무 한심한 생각일까
자신을 유지하기 위한 돈이 없어서
가난하면 지저분한 행색이 된다
그리고 하고 싶은 걸 못하게 된다
그래서 너무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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