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 이야기

생일, 내년계획, 박연준의 시

misfortune4 2019. 12. 30. 10:06


1.

일요일 회사를 나왔으나

피곤하고 우울해서 잤다.

많은 악몽을 꾸었다. 꿈에서 울었는지 소매가 척척하다. 

정신을 차리니 오후 4시 일을 빡세게 3시간 했다.

휴

학교온김에 평일에만 챙기던 학교냥이들 생각에 비몽사몽 나온다

비가온다 생각보다 많이 춥다 

삼색이가 있을거라곤 생각도 안하고 그냥 물만 따뜻하게 갈아주고 사료만 채워주려 했는데

종이부스럭대는 소리에 갑자기 냐~ 하는 소리와 함께 삼색이가 튀어나온다

나도 놀라고 삼색이도 놀랐다

꺄 와 냐 의 사이쯤 소리로 계속 언성을 높여가며

내 몸 여기저기를 부비기 시작한다

원래 동네 주민이 챙겨주던 아이였는데

얼마전부터 나도 합세했다

물이 금새 얼어버려서, 아무래도 사무실정수기에서 뜨슨물을 부어줄 수 있는 이점이 있다

삼색이 뿐 아니라 다른 곳도 매일 챙기지만 그곳은 냥이들이 매일 바뀐다

학교가 거점인지는 모르겠으나 여기저기 옮겨다니는 아이들이다

오직 이 삼색이랑 저쪽 치즈냥이만 고정자리가 있다

날 본지 얼마나 됐다고 나에게 몸을 부빈다.

밥그릇엔 동네 주민이 챙겨준 밥이 남아있지만 내가 새로 부어준 것을 먹는다

타우린 과 영양제 가루를 챙겨줘서 일까

아님 내가 따뜻한 물과 핫팩을 늘 가져와서 일까

아님 내가 여자목소리-고냥이들은 하이톤을 좋아한다-여서 일까

아님 내가 털옷을 입고다녀서일까


생일이라고 아무 일도 없고, 술먹다 일어나 술먹고 나와 악몽꾸며 울다 자다 

 하기싫은 일하다가 부시시 나왔는데 

나를 반겨주는 첫번째 생명체 냥이를 만나자마자

갑자기 울컥하여 한참을 참다 결국 꾹꾹 울어버렸다

다리사이에 얼굴을 파묻고 꾹꾹대며 울고있자

삼색이가 다리에 온몸을 비비고 냐~ 냐~ 한다


삼색이게게 말했다

너가 날 축하해준 유일한 생명체구나

정말 고마워

고마워 삼색아

나를 반겨줘서 고마워


.

.

.

내가 주섬주섬 짐을 챙기자 따라온다. 영역동물이니 다른 영역으로 한걸음 나갈때마다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다

몇걸음을 따라오고, 바닥에 냄새를 묻히느라 뒹굴고

또 나를 따라 몇걸음 따라오며 안테나귀를해서 돌려가며 또 바닥에 냄새를 묻히고

나는 삼색이가 안쓰러워 걸음을 멈추고 쳐다보았다. 

조금 더 가자 더는 영역을 넓히기가 두려웠는지 다가오지 않는다

그리고 나의 걸음을 끝까지 본다

일요일이라 학생들이 놀아주지도 간식을 주지도 않아서

많이 외로웠구나


삼색이는 학교 인기냥이다


나는 안다 삼색이도 심심했고 나도 심심했고 외로웠는데

오늘이 그저 내 생일이었을뿐이라는 것을.



2.

2020년엔 금전문제를 스스로 해결하지 않으면 안된다


갈수록 왕성한 식욕을 보이는 셋째 니니때문에라도

내년엔 사는 패턴을 바꾸어야 한다

오빠한테 의지하지 않고 사는 방법을 찾아야한다


1. 술끊기(줄이기). 아니 술없이도 괜찮다고 견뎌보기. 

2. 먹고싶은거참기. 아무거나 사먹지 말고 집에서 제대로된 거 하나라도 먹기.

3. 돈쓰고 싶은거 참기. 핸드폰결제하지않기. 

4. 습관처럼 편의점 들르지 않기. 공허하다고 마트들리거나 쇼핑몰 서핑하지 않기. 

5. 애들 간식 충분히 사놓아서 칭얼댈때 비싼사료 질러버리지 않도록 주의! 

6. 저렴한 캔 쟁여놓고, 비상시 먹일것 확보해놓기

7. 애들 병원비 항상 빼놓기

8. 오빠는 더이상 연락이 안되는 죽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9. 오빠는 더 이상 살아있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10. 오빠는 유령이거나 귀신이어야 한다고 



3. 

박연준 시집 <베누스 푸디카> 콜라주


나이가 든다는 것은

마음에 한장씩 이불이 깔리는 일

어느날 한꺼번에 다리를 잃어도

몸통을 핥으며 살 궁리를 하는 것


생각은 이동 중에 발각되거나

고인 채로 굳어 침대가 된다 

<침대2

 - 시간들 중>



얼어버린다면 어떨까

녹아버린다면 어떨까

...

하하,

사람처럼 느린 꽃이 어디 있담 피었다 지기까지

<꽃밭, 흡혈 중>


아홉번 죽은 별들만 아름답다는데 대관절

아름답게 죽은 별이란 게 무슨 소용일까?

살아나면 어쩌지

이 많은 생의 궁극들,

피어나면 어쩌지 

<아홉번 죽은 별들만 아름답다 중>


상한 데 없이 아름다운 도주

보세요 당신의 밑바닥만 적시고 있어요!

<암늑대들이 달아나는 법 중>


루시,

난 겁 안 나

그게 뭐가 중요하니


패배를 사랑하는 건 우리의 직업병

웃다가 쓸쓸해지는 건 얼굴이 미래를 보았기 때문

아주 커다란 원을 그리다 지치고 싶다

...

루시,

난 겁 안 나

나 여기 있어

굴뚝

얼굴

입김이

내 집이야

<음악에 부침-낙원상가를 떠도는 시인, 루시에게 중>


당신 손목 있잖아

책을 펼쳐 내 쪽을 향해 보여줄 때

약간 비틀어진 모양,

난 그게 나무 같더라

물기 없는 갈색

나 거기서 태어난 거 같아

...

당신 지느러미 있잖아

내 미래 같더라

새벽에 자꾸 떨어지길래 주웠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

당신은 잠

미래는 강

<당신이 물고기로 잠든 밤 중>


새벽에 혼자 깬 여인은

종이보다 먼저 하얘진 문장

촉이 뭉게질 때까지 허공을 노려보다

커튼 뒤에 심을 숨긴,

...

시작도, 선언도, 기억도 없이

깊어진 것들

...

완성이란 더 이상 걸을 수 없다는 선고,

일체를 거부하고 홀로 선 다리 한짝이

새벽에 기대 있다

<침대3-새벽에 혼자 깬 여인 중>


봉오리를 열다 좁히다 망설이는 사이

어둠을 빌미로 놓친 사랑이 몇개

...

손등 하나 볼 언저리에 머물다 시들고

내가 당신-이라 부르던 사내는,

들은, 죄다 남의 남자가 되었다


이렇게 깊은데 당신은 왜 시작하지 않을까


종은 계속 울리는데


모르고 핀 꽃들은

들개의 축축한 주둥이에 물려

사라지거라

<꽃, 가장 약한 깃발 중>


손톱만 한 흰 구두 스물다섯켤레

작은 목젖 열두개

흐를지도, 흐르지 않을지도 모를

눈물샘 여섯바구니

마루에 코를 뭉개고 잠든 무릎 네개


문턱에 널어놓은

살아보지 못한 날들,


조그만 것들의 과거에도

실감은 있다

<가벼운 장례식 중>


패배자들의 무릎을 닦아주고 싶다

눈가의 주름을 더 깊이 파고

아스팔트 같은 목덜미를 지나

마을이 사라진 지도 같은,

빈손 위에 눕고 싶다


그들의 걸음과 복사뼈와 낯빛에 대하여

무릎으로 생각하다

저녁이 도면

옛 광장을 서성이고 싶다


나는 왜 당신 얼굴을

쓰다듬으며 살지 못했을까

얼굴이 사라지기 전에


곱고 천진하게 패배하기는 얼마나 어려운가


뒤척일 수 있을 때

가라앉고 싶다

<네가 사라지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