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 이야기

새소년과 천희란 <영의기원>

misfortune4 2020. 11. 8. 17:37

 

그룹 새소년의 '황소윤'은 그냥 미쳤다. 미치도록 섹시하다. 우리는 모두 한편으로 동성애자다.  

 

youtu.be/SPGuXMzKpvQ

천희란 소설집 <영의 기원>을 읽었다. 이 소설집 처음에 등장하는 <창백한 무영의 정원>은 천희란 작가를 알린 작품이기도 한데, 정말 놀랄만큼 슬픈 소설이었다. 그리고 그 묘사들이 꽤나 충격적이었다. 바닥의 어둠에서 사람들이 꿈틀대고 죽어나가는데, 인간의 눈망울에 모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있는 느낌이 들었다. 아무 감성없이 무미건조한 자살클럽이었다면 이야기는 달라질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마치 그렇게 죽어버리지 말라고 눈물로 호소하는 작품처럼 느껴졌다. 무엇보다 죽어버린 사람들과 살아있는 사람들의 시간순서가 얽혀있고, 상상에 의한 대사가 중간에 툭툭 나와서, 나의 단선적인 이해력으로는 다 알아듣기 힘들기도 했다. 그래서 이 알파벳인간들의 죽음의 순서는 어떻게 되는가? 

'죽지마'

이 소설집의 제목이기도 한 <영의 기원>이란 단편은 젖은 채 집에 술병과 편지지를 들고 들어온 영의 장면 그 하나에 의존해 씌여진 소설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오히려 불필요하게 등장하는 인물들과 서사가 불편했던 것 같다. 오히려 그 작품은 시였으면 어땠을까. 시적인 묘사가 그득한데 굳이 서사란 틀 안에 집어넣어야 했을까. 

 

수미쌍관식 기법으로 영이란 존재가 묘사되는데

일부 발췌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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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가 끝나는 것일까. 아니면 시작되는 것일까. 돌연 그러한 질문이 떠올랐다. 시침과 분침과 초침이 정확히 12시를 가리켰다. 밖은 어두웠고, 자정이었다. 왜 자정을 0시라고 부르는 걸까. 0은 11의 다음에 오는 숫자가 아니고 23의 다음에 오는 숫자가 아니며, 0은 12와도 24와도 같지 않다. 0은 1의 앞에 올 수 있으므로, 자정을 하루의 시작이라고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시계는 둥글고, 1부터 12의 숫를가지고 있고, 시침과 분침과 초침은 계속해서 같은 자리를 맴돈다. 하루에 두 바퀴를 돌며, 하루에 두 번 시침과 분침과 초침이 동시에 12를 가리키고, 두 번 중의 한 번은 오늘과 내일에 동시에 속한다. 시계는 계속해서 돈다. 시간은 끊임없이 흐른다. 그랜데 왜 0일까. 마치 시간이 완전히 사라졌다가 나타나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것은 눈앞에 0이 앉아있지 않았다면 떠오르지 않았을 질문이다. 자정을 왜 0시라고 부르는지 알아? 나는 침묵을 깨고 영에게 물었다. 그때, 나는 영의 얼굴을 바라보며, 사람의 얼굴이 곧 그의 성정이라는 오래된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정확히는 사람의 표정이 그 사람의 얼굴을 만든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것이다. 영이 짓고 있던 표정을 설명하기란 쉽지 않다. 표정이 없었다고 말해야 할 텐데, 흔히 말하는 무표정과도 달랐다. 모든 표정, 그러니까 무표정한 표정마저 잃어버린 듯한 영은 영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그의 얼굴은 모르는 사람의 실패한 초상화 같기도 했고, 쓸모없는 물건 같기도 했다. 네 이름이잖아, 영. 영은 대답하지 않았다. 

 

 

...

 

눈이 내리는 겨울 밤이었다. 영이 나를 찾아왔다. 

영이 나를 찾아오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지만, 연락도 없이 불쑥 집으로 찾아온 것은 처음이었다. 영은 한 손에는 편의점의 검정색 비닐봉투를, 다른 손에는 거의 비어가는 작은 싸구려 위스키병을 들고 있었다. 거리가 삽시간에 하얗게 뒤덮일만큼 눈발은 거세게 몰아쳤다. 영이 뒤집어쓴 점퍼의 모자 위에 눈이 잔뜩 쌓여 잇었지만, 그가 얼마나 오래 거리를 돌아다녔는지 나로서는 알 길이 없었다. 다만 한 모금의 위스키가 남아있는 플라스틱 병으로 영이 길에서 배회한 시간을 짐작해볼 수 있었다. 애초에 나를 찾아올 계획 같은 건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저 길을 걷다가 추위를 견딜 수 없게 되었을 때 불현듯 나를 떠올렸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아무래도 중요치 않았다. 영의 얼굴과 손이 꽁꽁 얼어붙은 것처럼 보였고, 그것이 가장 시급한 문제였다. 영은 현관에 서서 점퍼에 달려 있는 모자를 벗고 옷 위에 쌓인 눈을 털어냈다. 눈은 빠르게 녹았고, 신발에 묻은 흙과 먼지가 눈 녹은 물에 젖어 현관 바닥이 새카맣게 변했다. 집 안으로 들어서는 회색 양말의 앞코가 어둡게 젖어 있었다. 

영은 젖은 옷과 양말을 벗지 않은 채 바닥에 주저앉았다. ... 영은 마지막 한 모금의 위스키를 입안에 털어넣었다. 나는 따뜻한 차를 마시겠냐고 물었다. 차가운 물을 마시겠다고 영이 답했다. .. 영의 양손에는 여전히 빈 위스키병과 검정색 비닐봉투가 들려 있었다. 거기에 술과 안주 같은 것들이 들어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굳이 영에게 그것을 풀어놓으라고는 하지 않았다. 점퍼랑 양말은 벗어저 좀 말리는 게 어때. 감기 걸릴지도 몰라. 영은 고개를 저었다. 

...

20여분의 시간이 침묵 속에서 흘러갔다. 그때까지만 해도 벽에는 시계가 걸려 있었다. 영은 내내 창밖을 응시했고, 나는 계속해서 시계와 영과 창밖을 번갈아 보았다. 시계는 동력을 잃어가고 있는 것처럼 느리게 움직였다. 

...

 

영이 한 송이의 시들지 않는 꽃을 남기고 떠난 다음 날 아침, 현관 밖 손잡이에는 영이 들고 왔던 편의점의 비닐봉투가 걸려 있었다. 거기에 여섯 장의 편지지와 세 장의 편지봉투가 들어 있는 편선지 한 세트, 검정색 볼펜 한 자루, 몇 봉지의 과자와 몇 병의 술이 있었다. 의아했다. 그것은 내게 남겨두어야 했다면, 집을 떠나기 전에 건네주었을 것이다. 만일 문밖에 선 순간 비닐봉투의 무게가 너무 무겁게 느껴졌다면, 그렇다면 다시 문을 두드렸어도 좋았을 것이다. 나는 몇 차례 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매번 사서함이 연결될 떄가지 전화를 끊지 않고 응답을 기다렸다. 영은 끝내 전화를 받지 않았다.

 

늦은 밤이 되어서야 연락을 해온 것은 영의 삼촌이었따... 영의 친구죠? 놀라지 말아요. 여기 장례식장이에요. ...

밝고 맑고 투명한 영. 사람이 꼭 이름대로 사는 건 아닌 것 같아. 밝고 맑고 투명하다니. 귀신처럼 조용한 영이라면 몰라도. 결단코 그것은 농담이었다. 영이 죽었다. 

 

 

 

...

그것이 영일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영은 죽었고, 귀신은 문을 두드리지 않고도 집안으로 들어올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때때로 영이 두고 간 물건들을 찾으러 온 것 같은 기분에 휩싸이거나, 영이 나를 찾아와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 그가 여섯 장의 편지지에 적고 싶었던 말들을 들려줄 수도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다. 모두 부질없는 생각이다. 영은 절대로 나타나지 않고, 내게 아무런 이야기도 들려주지 않는다. 죽을 용기로 살았어야 해. 사람들은 말한다. 그러니까 죽을 용기와 살 용기, 그것은 과연 같은 종류의 용기일까. 나는 맑스와 마르크스, 그리스인과 희랍인, 자정과 0시, 두 번의 침묵, 부명 같은 데 서로 전혀 다르게 느껴지는 것들을 생각한다. ...

 

344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덱--> 단밤이가 키보드위에 올라와 쓴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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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에서 잠긴 문은 열지 않는다면, 문은 열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손잡이가 서서히 돌아가고 문밖의 누군가가 문을 열어젖힌다. 현관의 등이 켜지지 않는다. 스위치가 딸깍이는 소리와 동시에 방안이 환히 밝는다. 어둠 속에 갇혀 있떤 네가 나타난다. 너는 젖은 머리를 털며 집으로 들어선다. 너의 손에는 커다란 가방과 묵직한 편의점의 비닐봉투가 들려 있다. 너는 가방을 내려놓는다. 코트를 벗지도 않고 비닐봉투속의 물건들을 정리한다. 텅빈 냉장고가 조금씩 채워진다. 너는 나를 의식하지 않는다. 네가 가방과 싸구려 위스키병을 들고 책상 앞으로 다가온다. 주머니 속을 뒤져 몇 개의 동전과 휴대전화 따위를 책상 위에 부려놓는다. ... 나는 너에게 손을 뻗는다. 그러나 나의 손은 투명하고 너를 붙잡지 못한다. ..나는 너의 이름을 부른다. 나의 목소리는 나에게도 너에게도 닿지 않는다. 너는 한 모금의 위스키를 마시고, 마지막 페이지의 흰 여백이 너의 얼굴을 창백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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