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 이야기

견디자, 목요일!

misfortune4 2013. 10. 24. 13:41



1. 

가끔은 사람들이 나로부터 떨어져 나가는 것이 재밌다고 생각한다. 

사실 사람들을 가장 멀리하고 싶은 것은 나이나, 

외로워지면 병드는 나이기에 가까운 누군가와 어떻게 해서든 잘 지내보려는 내 시도 때문에 

그들이 떠나는 모양새가 되는 것이다.  

매력이 없는 사람들도 매력이 존재하는 사람들처럼, 아니 그들처럼 자연스럽게 가까워지길 원하는 것 같다. 

그러니 그 수준들끼리 친해질 밖에..

그들은 관계를 위해 노력하는 내 모습을 부담스러워한다. 

아무것도 노력하지 않으면서 매사에 자연스럽게 잘 지내고 가까워지려면

신이 점지하지 않고는 불가능할 것 같은데...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그나저나 그들은 알고 있을까? 나를 소재 삼아 껌을 씹고 있을 그들이 나에겐 지푸라기였다는 사실.


이렇게 저렇게 이야기 들어주고, 사먹이고 비위도 맞추고 친한척도 해보지만

결국 그들은 나로부터 조금씩 돌아나간다. 

이젠 거의 전직원을 왕따시켜야 하는데, 그 일도 쉽진 않다.

하지만 그들로부터 내가 떨어져 나오는 순간, 나는 조금 슬프다해도 좌절하진 않는다.

나는 원래 혼자 걷는 걸음을 좋아한다.

사실 말해 내 스스로가 마음에 드는 순간은, 무언가 두리뭉실한 사람들을 뒤로 한 채 돌아설 때이다.


2.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

성경에서 사랑해야 한다고 가르치는 목록에 나는 없기 때문이다. 

나는 병들지도, 가난하지도, 불쌍하지도 않아 보인다. 

실상 내가 그렇다 해도, 그렇게 '보이는 것'은 스스로가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이 살고 있는 모습 그대로를 보여주는 사람이, 길거리 거지나 난민, 병원의 환자 외에 또 누가 있을까?

사실말해, 그들에게 나는 견뎌야할 대상일 것이다.

온갖 세속적인 것으로 물든, 술과 담배를 즐기며 몸에 붙거나 비치거나 파이거나 찢어진 옷을 좋아하는 나는

그들이 시험에 들지 않아야 할-딱 한번 봐도 째려봐야 속시원한- 대상일 뿐이다.

성경의 가르침이 그렇게 얄팍한 것일까.

성경이 언제 '조신하라'고 가르친적 있나?(그럴꺼면 유교를 믿던가.)

피상적인 해석이 사람을 병들게 한다. 

하지만 사실 말해, 사랑 받아야 할 사람들은 바로 그들이다.

어떤 현상도 제대로 보아내지 못하는 그들이 진정으로 불쌍한 자요, 가난한 자이다. 



3.

제일 좋아하는 감독을 꼽으라면 나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5년전이나 지금이나 '루이스브뉘엘'을 꼽는다.

그런데 사실 그의 많은 작품을 필름으로 보고서도, 전작을 보지 못했다는 누적된 죄책감이 남아있다. 

그의 영화는 세상에서 제일 기발하고, 진지하고, 파격적이다. 

자신의 입지가 느껴지지 않는, 아니 그것을 공격하는 작가이다. 

나는 그런자들에게서 진정성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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