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 이야기

행복한 토요일

misfortune4 2017. 5. 16. 13:29


알람이 울질 않았다. 6시에 일어났어야 했는데.... 

아 이런. 늦었다는 인식을 하기도 전에 빛의 속도로 냉장고를 열고 새우껍질부터 까고 있는 나...

화이트 와인과 허브와 레드페퍼로 재워놓고 나서

밤새 불린 보리밥을 부글부글 저으며 끓이기 시작하고 나서야

인식이 되었다. 나 지금 약간 제정신 아닌데, 뭔가 이렇게 재빠르게 잘하고 있다니.

그럼 당연하지 내가 오빠에게 얼마만에(2년반개월만에) 요리를 해주는건데, 그 와중에 늦잠까지 쳐잤으니

이정도 반응은 당연한거 아냐? 훗.

레시피는 어제 새벽즈음까지 스마트폰을 들고 외워서 안보고도 할 수 있었다-그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아침부터 허겁지겁 요리를 하고 등산복을 갖춰입자니

어제밤까지 취소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진땀을 흘리며 3시쯤 겨우겨우 눈을 붙이던 기억도 금새 사라졌다.

미안한데 오늘...하는 문자가 아침까지 없으니 일단 오라는 뜻이다.

성사된게 얼마만인가. 너무너무 설레었다.

항상 과정이 설레는 법

어제 몇번이고 확인한 짐을 다시 꺼내서 세었다.

오빠우산, 일본과자랑 라면두개, 시디구운거, 카드쓴거, 그담에 요리한거 두통이랑 양배추반찬, 또 또 모였더라 응 빈티지 푸우까지.

가방에 차곡차곡 잘도 들어가는구나

너무너무 기뻤다.

어쩜 이리 꼭 맞는지.

남양주로 출발

남양주로 가는거야 드디어

매일밤 12시경까지 부릉대며 서있던 평내호평역 직행버스를 코앞에 두고도 탈 엄두도 못냈는데

드디어 가서 오빠를 만나는구나 


평내호평역.

너무나 오랫만에 느껴지는 편안함. 오빠가 사는 동네. 오빠랑 등산하고 돌아와 이과두주를 마시고선 뒹굴던 잔디도 그대로 있구나.


오빠가 역앞에 차를 가지고 왔다

빵빵

나를 부르는 소리

수많은 차들이 빵빵대도 나랑은 아무 관련이 없던 소리들인데

오빠를 기다릴땐 빵빵소리만 듣게 된다

너무나 오랫만에 빵빵소리를 기다렸다

타라구. 타라는 소리

나보러 차에 타라는 사람은 오빠밖엔 없다



<마린푸우>


오빠가 요 아이를 기여워라 했다.

빛바랜 노란색을 가진, 제작년도가 불투명한, 푸른 줄무니 모자와 바지를 입고 친근한 웃음을 지은, 마린푸우.

비록 산에 가진 못했지만

차에서 오붓하게 먹은 음식도

맛있다고 했다.

남은것도 안버리고 가지고 가서 먹겠다고 했다.

너무 기분이 좋았다.

매일 매일 오빠에게 요리해주고 싶었다.

퇴근길이나 출근길에 요리를 검색하고 싶었다.

장에 들려 레토르트 식품이 아닌

요리의 원재료를 사는 상상을 한다.

나를 위해서는 절대 되어지지가 않는 것들을 잠시 떠올렸다.


오빠랑 차타고 가면서 산풍경을 많이 보았다. 

산속에 사람들이 집을 지어놓고 사는 것을 한탄했다.

더 깊은 곳을 향해 자꾸만 인간이 침투하고 있었다.


마음과 시야에서 인간을 떠나와도 이젠 인간들이 어디에나 있다. 


오빠는 사무실에 가야한다고 했다.

형아가 레미콘 공사를 하니 가서 보라고 했단다.

오빠랑 오빠형아는 내가 다 좋아하니깐

괜찮다.


서울로 가는 차 안에서 오빠가 맥주한캔 마신 것이 힘들었는지

손을 올리고 길게 하품을 했다.

푸우처럼 티셔츠가 딸려올라가 배가 보였다 

오랫만에 오빠의 하얀배를 보자 흥분한 나머지

기습공격을 했다

그리고 막 여기저기 간지럼을 태웠다

오빠가 천진하게 웃었다

너무 기분이 좋았다.

너무 기분이 좋아서 소리를 지를 뻔했다.

음식이 맛있었다고

오빠가 장소잘 못찾아서 미안하다고 

뺨에 벌로 키스를 했다.

오빠는 벌

나는 상

나는 상을 받았다

헤헤


오빠랑 헤어져 홀로 카페에 있다보니 유모차가 점점 늘어나고 부부단위, 연인단위로 와서 떠들어 대거나 만져대는 사람이 많아졌다.

이어폰을 크게 듣다가 엎어져서 잠이 들었다가 그냥 밖으로 나왔다.

폭풍우가 불더나 조금씩 잦아들고 있었다.

약간 내리는 비는 맞아도 족했다.



<이팝나무-오빠가 명칭을 가르쳐줬다>


비가 바람과 함께 와서 이팝 나무 꽃잎이 길거리에 후두둑 떨어졌다.

키를 높여 만지려고 했지만 자꾸만 하늘로 올라갔다.

좋은 향기만이 계속해서 났다. 

문정동 일대를 계속 돌아다녔다.

어느 중학교에선가 spc입사시험을 본 사람들이 한 손에 파리바게트 선물세트를 똑같이 들고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그들 대열에 의도치 않게 끼어들어 그들의 이야기를 귀따갑게 들었다.

겨우 헤어 나와 어느 길목으로 들어서자 그때부터 길을 헤매기 시작했다.

여긴 어디쯤일까?

건물앞마다 나와서 담배를 피는 남자들이 있고

그들은 꼭 지나가는 사람을 훑어보았다.

사람을 보러 나오는지 나왔는데 사람이 보이는건지

담배를 피러나오는건지 담배를 수단삼아 여자구경 하는건지

도무지 모르겠지만 하여간 뒤돌아서까지 쳐다본다

저사람은 왜 저기를 지나갈까 궁금해서 보는걸까

사람들의 호기심이란 정말 밑도끝도 없고, 진심으로 불쾌하기 이를데 없다.

나에겐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 일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궁금한 사람이 없다.

그냥 내 느낌이 있다.

판단도 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냥 감각적으로 행동하기로 했다


날씨가 흐림에서 점차 밝음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어디선가 비취는 빛을 등뒤로 한채 내 판단만을 믿고 나는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나와 반대방향으로 어떤 남자가 지나가는데 

그 반대방향을 보니 빛이 비취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자동적으로 그곳으로 발길이 향했다...


그렇게 한참을 걸어 옆을 도니

!!!!

솔렉스 무역이 있었다

!!!!

진심 리얼팩트이다

나는 너무나 화들짝 놀래서

오빠닷 하고 소리지를뻔했다.


오빠자동차 옆에는 똑같이 생긴 애가 나란히 있었다

짜증났다.

번호도 구렸다.


오빠열심히 일하세요- 라고 작게 속삭이고는

로데오거리로 향했다.


전체를 두바퀴쯤 돌았는데오 4시반밖에 안되었다. 쇼윈도를 보고 또보고 보도블럭을 보고 또보고 하늘을 보고 또보고 나무를 보고 또보고

하다

문정동 느티나무 기념수가 있다는 팻말을 우연히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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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동 600년된 느티나무>


정말 어마어마했다.

수액을 맞고 있었다.

어떤 이가 버린 막걸리병이 있어서 눈에 거슬렸는데 알고보니 저 나무가 맞고 있는 수액이었다.


나무를 보고 나니

많이 지쳤다.

다리도 너무 아파 쉬고 싶었다.

오빠가 늦어져서, 원장님 데리러 가야한다면서

미안한데 먼저 갈래라고 전화할것만 같아서 또 불안해지기 시작하자 눈물이 핑돌았다.

길을 걸으며 기도했다.

조금만 더 걸으면 오빠가 올꺼고, 같이 이쁜 오빠 자동차도 볼꺼구, 좋게 울지않고 화내지도 않고 짜증내지도 않고

화목하게 헤어질수있게 오빠에게 부담주지 않게 해어질수있도록 도와주세요



구경하고 올라오는길에 오빠에게 전화가 왔다

너무너무 반가웠다 울음이 날뻔했지만 간신히 참았다.


오빠가 힘들게 정말 많은 인내를 통과해서 번 돈으로 사는 자동차를 구경하러 갔다.

등산복에 화장도 안한 부스스한 차림이었지만 멋있는 오빠랑이면 어딜 다니든 우린 빛이 나니까.

오빠가 계약한 볼보차를 보았다.

진짜 멋있었고 잘빠진 디자인의 차였다.

유니크하고 멋있고 낮지만 날렵한 디자인이 귀엽기도 하고 유니크하기도 하고, 약간 빈티지스러운 친근함도 들었다.

한마디로 아주 괜찮았다.


오빠랑 차 여기저기를 구경했다

영업사원은 오빠가 안듣게 나에게 정말 실물도 안보시고 계약했냐며

사장님이 화끈하신 타입이신가봐요 했다

나는 당황해 '아뇨 전부터 타고 싶었던 웨건 스타일의 차여서 이미 알고 있었을거에요"라고 말했다.

우리 오빠가 화끈하다고????

푸우 볼 빨게지겠다.


전시관을 나오는데 영업직원이 깍듯이 인사를 했더니

오빠도 첨엔 넵. 하고 공손히 한번 인사하다가

그 영업직원이 계속해서 인사를 반복하기 시작하자

오빠도 계속 인사가 심해지기 시작했다

둘이 인사경쟁이 붙은것처럼 인사를 문닫히기 전까지 했다.

오빠가 상담하러 가서 업체 젊은 여직원들한테도 저렇게 하겠구나라고 생각하니

첨엔 귀엽다가 갑자기 좀 마음이 짠해졌다.

그냥 전시장 구경한건데, 직업병이 나오는 거다.

웃펐다.

오빠는 누구에게도 함부로 하는 타입이 아니어서

가게 왔다고 갑자기 갑으로 돌변해서 기고만장하고 그런 스타일이 절대 못된다.

오빠는 그런 사람이 될 수 없는 유형이다.

그래서 내가 오빠를 사랑하는지도 모르겠다.


오빠랑 차를 구경해서 너무너무 행복했다.

오빠의 새 직원이나 마찬가지인데

나까지 설레었다.


다시 에릭이를 갈아타니

갑자기 에릭이가 휑하니 불쌍하게 느껴졌다.

별의 별 짐을 다싣고도 견디고

별의 별 인간들을 다 싣고 다닌

우리 성격좋고 씩씩한 국산차 에릭이

.............

길에서 검정 카니발만 보면 오빠- 하곤 속으로 불러보고 울음을 삼키던

지난 시간들이 떠오른다.

오빠가 차를 바꿔도 검정카니발에 대한 기억은 지워지진 않을 것 같다.

멀리서라도 보이면 가까이 뛰어가서 번호판을 확인하는 일은 더 하지 않아야겠지.



오빠가 내리기 전에 잠바 지퍼를 채워주었다.

너무 따듯했다.

오빠를 만져주었다.

너무 행복했다.


매일이 오늘만 같다면 좋겠구나

하지만 그런 추억으로 또 시간을 견딘다면

그것도 행복이겠구나


나빴던 기억들이 많이 정말이지 많이 흐려졌다고 느낀다.

내 인생의 길에 대한 흐릿한 느낌만이 있다


오빠에겐 이미 정해진 길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오빠에게 마음을 주고 싶어하는 내 안달해하는 모습도 자꾸 오빠의 길에 겹쳐서 보였다. 


내 그림자가 자꾸 저 옆의 오빠 이미지에 겹쳐지려고 한다. 옆을 보니 내가 보이는데, 그것은 그림자이다.


오빠를 어루만지고 있는 내 그림자가 슬프다.


그래도 오빠는 나를 밀어내지 않았다.


공존할 수 있을까

내 그림자와.

내 바람들과 오빠의 삶이 정말 공존할 수있을까.


가끔씩 이렇게 오빠를 만지면서 살려면

오빠를 느끼면서 살려면

오빠 인생의 머뭇머뭇 대려면


나는 백지같아야 할지도 모른다.

정말 내게는 아무런 주장할 것이 없어야 할지도 모른다.


정말 그렇게 되야할지도 모른다

버릴 수 있을까.

내 의지들을. 욕망들을, 취향들을,


이제는 내 미래가 정말이지 두려울정도로 불투명하다.


벗어나고 싶은 느낌은 전혀 아닌

종류의

그것이 그냥 정형화되어버리면


나는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야 할것일까

사람도 없이

애인도 없이

섹스도 없이

가족도 없이



내가 무언가를 가진다면

오빠를 이런 방식이나 이런 순전한 마음으론 만날 수 없을 것이다.

뭔갈 기대할것이고 또 싸우게 될것이고 미워하게 될것이다



나는 너무 많이 가진 것 같다.

물질도 너무 많고 생각도 너무 많은 것 같다


지금보다 훨씬 더 가난하게 살지 않으면 안된다.

허한 마음에 무언가를 채우려고 하면 나는 앞으로 망할 일만 남았다.


.....................


오빠가 보고싶다고 울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리워하는 일만이

아름다운 것 같다


그리움. 거기까지. 그리고 멈추기. 멈추기.

내일이 있으니까.

언제나 내일 아침이 또 오니까.

시간은 자꾸 가고

시간이 자꾸 간다는 것은

오빠를 다시 만날 시간이 가까워 온다는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