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혼자에 익숙해져야
적극적으로 혼자가 되려 했던 그 때의 그 오랜 지속된 감정을
설명할 수 있을것이다.
10대에는 집을 나오는 게 목표였고
20대에는 친구들과 달라야만 하는 게 목표였고
30대에는 고통스러운 아름다움을 체험하는 게 목표였다
20대의 도전엔 모르고 덤비는 것이 대부분이었다면
30대에는 알고도 아니 알기때문에 뒤집고 싶은 간절함. 알고 있는 짐작되는 수없는 굴곡, 위험함으로 들어가는
체험의 욕구가 컸다
그렇게 살려면
혼자여야 했다
적극적으로 홀로일때만이 이 모든 게 가능했다
같이 고독과 위험속으로 가자고 할 수 없었고
홀로일때만이 그 가치가 살아있었다
나는 리더가 잘 되지 못했고
그런 역할을 부여받을수록 강박적인 사람이 되어갔다
나는 동반자도 되기 어려웠다
내 옆에는 자리가 없었다
어쩌다 내 옆에 앉은 자들이 있었다
그걸 놓치지는 않았다
40대는 어떻게 살아야할까
40을 넘은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다녔다 당신의 사십대는 어땠냐고
30대와 뭐가 다르냐고.
대충 남자들이여서인지
그들은 다를바가 크게 없고 오히려 더 안정되고 정리되고 좋다고 했던 것 같다
그들과 공유할 것이 없어진걸까
단순히 성별의 차이일까
40대 싱글여성들은,
전문직도 아니고 돈도 잘 벌지 못하고 의지할 집도 없이
그저그렇게 외롭게 사는 여성들은
다 어디에 있는 것일까
아무렇지도 않게 태연하게 40에서 1년을 보낸 지금
혼자인게 처음으로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혼자인게 불편한 건 내 인생에서 처음있는 일이다.
목표가 사라졌기 때문이겠지
혼자여야하는 목표.
내가 적극적으로 혼자여야했던 그 목표와 그 당시의 간절한 이상이
지금 나에게서 사라졌기 때문이겠지
그러고나니, 현실생활에서 내가 혼자살아낼만한 조건이 거의 없다는 게 보이기 시작했고
수습하기엔 너무 멀리, 늦어버린 내 삶이 그냥 이대로 풀어진 채 엉망이 될 것 같은 두려움이 생겼다
<슈츠> 드라마를 보면 한끗차이란 말을 실감한다.
일을 추진하고 처리하는 방식이나 사람을 대하는 것이 그렇다
성공한 사람들은, 천재라는 사람들은
뭔가에 고도로 집중된 사람들은 그 한끗에서 남다른 기지를 발휘한다
게으르고 구태의연한 것, 회로화되고 고착화된 것에 대해 늘 점검한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걸꺼란 물음을 했을 때
그 다음날의 행동이 달라지는가 아닌가로
그 진가가 판가름난다
거기에는 '감당'이란 단어가 참 많이 나오는데, 남자들이 많이 쓰는 단어일까 싶다.
어떤 대사가 생각나는데
그 사람이 감당하려는 위험의 크기가 그 사람의 가치라는 .. 그런 뉘앙스의 말이었다.
살아온 많은 시간들동안 나는 너무 지루한 걸 못견뎠고
거의 항상 매일 불안했고
능력 이외의 것을 꿈꿨다
지금은 시야도 흐리고
팔도 감각이 없고
근육이 자꾸 사라져버린다
악착같은 모든 집념이 조금씩 멀어지니
삶의 방향과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
내 삶을 내가 감당하지 못하면
누가 내 삶을 감당할까
<브레이커스>에서 서사무엘이
탈락위기에서도
내가 만든 곡이니까 내가 사랑해주고 최고라고 해줘야지
누가 내가 만든 곡을 예뻐해주겠냐고 했다
그 말에 움퍽 눈물이 났다.
나는 내 삶에 대해 애착이 좀 필요해보인다
낡은 욕망말고.
자신의 마음을 돌보지 않으면
마음의 위기를 읽어주지 않으면
마음이 뿔이나
스스로를 해친다고
한 의사가 말했다.
그는 불안은 긍정적인 삶을 이끌어낸다고도 말했다
불안은 삶의 근원이라고 말했다
우리를 살아가게 한다고 했다
다만 그것의 강도가 세져 그것만 바라보고 일만 하려 할 때
우리는 그것에 지배당하게 된다고 했다
불안의 양면을 잘 봐야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