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일지

단비오빠와 먼로

misfortune4 2019. 6. 7. 09:44




단비의 냥모나이트.

드디어 동그란 스크래쳐를 써주고 있다. 

가끔 들어가서는 뜯뜯만 하더니 3달만이다.

흐흐흐흐 안버린 보람이 있군. 

 

먼로는 단비를 보고 그루밍을 따라한다.

먼로는 단비오빠를 열심히 따라하지만, 자기가 할 수 없는 것-나와 다이렉트로 부딪히는 것-은 아직 하지 않는다. 먼로는 단비를 통해서만 나에게 접근한다.  

 

단비는 내가 싱크대에서 서서 먹는 모든 종류의 음식에 참견을 한다. 3달동안 매일, 매시간 호기심을 갖고 있다. 이제 크면 안그러겠지 싶지만, 아직은 참 불편하기도 하다. 평일엔 거의 싱크대에서 대충 해결하고, 주말이나 되야 티비 앞 식탁에서 뭔갈 먹지만, 매일 싱크대에 올라오는 단비때문에 열기구를 사용하지 않아 요리를 할 수 없다. 할 수 없이 편의점 떡볶이나 라면 등을 전자렌지 돌려서 먹고 있으면 그것도 먹겠다고 와서, 비닐에 든 매운 양념을 뜯기까지 한다. 라면스프가 뜯겨지고 단비는 우다다 도망간다.  

 

단비가 아니라는 걸 판단하고 팽 버리면 먼로는 지켜보다 돌아간다. 단비라는 중간기제를 거쳐서만 먼로는 판단을 한다. 이렇게 둘째는 첫째를 보고 배우는 걸까.  

 

(나도 언니한테 그런걸 배웠을까? 전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어려서부터 공부만 하고 음식을 거부했던 언니가 엄마몰래 자기 밥을 먹어주면  내가 사고친걸 엄마한테 안일른다고 해서 매끼 두그릇씩 먹었던 기억이 어린시절 언니와의 추억에 큰 부분을 차지 하고 있다. 밥도 두그릇, 생선도 두개, 국도 두그릇. 배불러서 괴로웠지만 언니는 매일 나의 잘못을 일러바치는 사람이었고, 엄마에게 난 매일 맞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 거래를 거절할 수 없었다. 덕분에 어렸을 때, 그리고 고등학교때까지 나는 항상 통통했다. 어릴적 음식에 대한 괴로움 때문에, 독립 후에 음식을 멀리하며 살아왔다. 나는 항상 위가 안좋았는데, 늘 더부룩했고 늘 배가 불러 토를 자주 했다. 어려서 토를 하면 엄마한테 너무 맞아서, 언니밥을 먹다가 토한거라는 말도 못하고 눈물을 뚝뚝 흘리던 기억이 난다.) 

 

단비는 우리 언니같이 이상한 오빠는 아닌 것 같다. 먼로 대신해서 뭔갈 먼저 함으로서 먼로의 행동을 교육하는 면이 있으니, 나는 단비에게 고마워해야하는 걸까? 먼로는 언제나 단비가 먹으면 먹고(내가 먹던 쥐포를 난리쳐서 뺏어먹으니 먼로가 앵앵대서 줌. 억지로 먹다 켁켁거림)

단비가 냄새만 맡고 굴리며 노는 것(토마토, 사과 등등)은 자기도 똑같이 하고

단비가 오만상을 찌푸리며 팽 하고 돌아서는 것(맥주, 와인, 커피 등)은 자기도 똑같이 그걸 한다.

밥달라고 할때 앵앵대며 다리사이를 8자로 지나다니며 머리를 부벼대는 것도

단비 보고 배워 곧잘하는데, 이제 단비보다 더 과해지고 있어서, 새벽에 우렁차게 들리는 앵앵소리가 집 복도를 울릴까 걱정이다.

아직 단비가 점령한 싱크대 위라던지 화장실 세면대 및 샤워부스, 돌로된 찬장은 못올라오고 있고, 침대위도 약간 쭈뼛대지만 말이다. 

유일하게 먼로가 동조하지 않는 건 새벽 4시부터 나를 깨워대는 일이다.

전엔 5시였는데, 4시반으로 당겨지더니, 이젠 4시가 되버렸다. 나를 살짝 물고 넘어다니다가 이젠 세게 물고 밟고 다니고, 전에 머리를 살짝 앙앙 물더니 이젠 머리카락을 입으로 물고 걸음을 걸어서 머리가 딸려갈 정도이다. 게다가 이젠 집에서 반팔을 입으니, 팔도 무방비상태다. 발과 종아리로 안되면, 팔에 진출하여 아래서부터 차차 강도를 높여온다. 손, 손목 그담에 팔꿈치 아래살까지 부드러운 쪽만 공략한다. 진짜  단비같이 이쁜 고양이가 아니면 나는 매우매우 열받았을 것이다. 사람깨우는 법을 어쩌면 이렇게 구체적으로 단계별로 .... 대체 어디서 배운걸까? 보드라운 살이 더 아프다는 것을.... 내가 맨날 지 안으려고 하고 뽀뽀하려고 할 때 참다가 복수하는걸까?

먼로는 단비가 나를 깨우는 일을 도맡아 할 때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마지못해 4시반쯤 질질 끌려나오면 신발장과 싱크대 사이 러그앞에 예쁘게 몸을 뉘이고 앉아있다. 단비가 나를 깨워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그 성공률이 지금까지는 거의 100프로인걸 알고 있다. 

하.. 휴일에도 4시반에 기상하게 될줄을 꿈에도 몰랐다. 근데 고양이들때문에 일어나지고, 반쯤 자면서도 닭가슴살을 삶고, 오이를 까고, 북어채를 불리고, 토핑으로 얹을 거 뭐 없나를 고민하는 내 모습이라니.

불면증이 뭐였나 싶다.... 하..... 얘들아 고마워. 내 병 치료해줘서. 



오늘도 싱크대에 뭐 먹을거 없나 단비가 올라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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