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일지

고양이들하구 집에서 지내는 방법

misfortune4 2020. 4. 29. 14:00

우리집엔 귀 8개가 있다.

고양이들은 때론 귀만으로 찾을 수 있다. 

귀 두개 쫑긋한 채 시옷자로 다문 입에 잔뜩 치렁치렁 달린 흰 수염들

수정구처럼 맑은 한개 혹은 두개의 눈동자 (어두운 밤이면 후레시처럼 불을 밝히고)

살짝 꺾이거나 쭉 뻗은 꼬리는 그 길이와 유연성만큼이나 언제나 변화무쌍하고 (대체로 친절하다)

 

내가 요즘 귀여워하고 있는 곳은 뒷다리이다.

오동통 뒷다리(일명 솜바지)는 엄청난 점프력을 자랑하는 고양이의 숨은 비밀병기다.

몸을 뒤집어 배를 보이는 자세에서는 엉거주춤되어 엄청 귀엽고 아가같이 통통해보이지만

뛰어오를 때 늘어나는 뒷다리의 어마무시한 팽창을 보면 실로 놀랍다.

엄마는 고양이 뒷부분이 너무 커서 무섭다고 한다.

 

뒷다리가 시작되는 부분의 배는 유독 부드럽고 통통한데, 그곳에 얼굴을 비비면 너무너무 부드럽고 행복하다.

단 약 3초 후 날라오는 냥펀치를 감당할 자신이 있다면 

 

하루종일 고양이 4마리와 있으면 아이들은 내가 프로그램을 짠 줄 아는지, 계속 하염없이 나만 보고 있다.

 

내가 무언가를 해주기 위해 집에 있는 것으로 아는 모양이다.

 

그도 그럴것이 매일같이 새벽에 나가 밤에 들어오다 집에 있으니

오늘은 무슨 특별한 프로그램이 있나보다 하겠지

(고양이를 키워보지 않은 사람들은 고양이가 얼마나 사회성이 있고, 규칙성이 있는 동물인지 모를것이다. 고양이는 절대 게으르지 않다. 단지 잠을 많이 잘 뿐이다)

 

오랫만에 푹 쉬려고 멍때리고 있다간 따가운 눈 8개의 눈총을 받아야 한다.

 

밥을 준다.

 

신나게 먹는다.

 

그루밍을 한다.

 

또 기대에 찬 눈빛으로 눈 8개가 나를 본다.

 

낚시대를 흔든다.

 

논다.

 

단체놀이도 필요하고 개인전도 필요하다. 개체마다 모두 좋아하는 장난감과 노는 스타일이 다르므로.

 

끝난다. (끝낸다 내맘대로)

 

간식을 준다. 

 

사냥놀이를 하면 보상이 있어야 하니까.

실제 야생에선 고양이들이 사냥해서 먹으니까.

 

냥냥대며 서로 달라고 난리난리다

 

끝난다.

 

또 그루밍한다.

 

이제없어 끝... 하면 단비와 먼로는 대충 알아듣는데

 

니니와 단밤이는 아직 내 스타일을 모른다.

 

계속 기다리다가 결국 존다. 그러다 잔다.

 

고양이는 얕은 잠을 깼다 잤다를 반복하는 동물이다.

 

그래서 그렇게 많이 잔다는 걸 느끼긴 어렵다.

 

졸다가도 집사가 뭐라도 꺼낼라치면 득달같이 달려와 냥냥댄다

 

단비는 내가 티비를 보면 티비 앞에 가서 앉아버린다.

나는 계속 단비를 보며 티비를 보게 된다.

단비는 내 고개가 자신을 향해있지만 결국 티비를 본다는걸 알아버린 후

그 티비 앞에서 새초롬이 고개를 묻고 잠을 청한다.

너무 귀엽지만 나는 너무 쉬고 싶다

 

언제나 고양이들앞에선 모순에 처한다.

 

와인을 살 돈이면 고양이 캔 몇개를 살수있는지 항상 계산하면서 산다던가

너무 귀엽지만 너무 귀찮을때도 있고

안고 자고 싶지만 내 품을 떠날때도 있고

혼자 자고 싶은데 자꾸 내품에 들어와 핥을 때도 있고

 

결국 종일 고양이들과 있으면 서로 지치곤 한다.

 

잠시라도 나갔다와서 아이들과 거리감을 주고 만나는 편이 낫다는 결론에 이른다.

 

집을 나서자마자 보고 싶고

집에 들어오자마나 너무 반갑지만

 

이내 치울 게 산더미인 현실을 맞닿뜨린다.

 

귀 8개들이 왔다갔다 하는 우리집에선

 

바로 내가 손님이다.

 

자주자주 나갔다 들어왔다 해야겠다

 

아이들이 나로 인해 지치지 않도록.

나의 뻔한 모습을 너무 들키지 않도록. 

 

나도 너무 게으르게 집에서 뭉개져있지만은 말아야겠다.

 

긴 연휴가 기다리고 있다.

두렵다.

 

만날친구도 없고, 놀고 싶어도 돈도 없고, 맛있는 것도 냉장고엔 없다.

 

고양이들이랑 무조건 버텨야한다.

 

어떻게 보내야할지 걱정이 된다.

 

정말 프로그램이라도 짜야하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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