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 이야기

일요일 아침

misfortune4 2020. 5. 31. 06:05

고양이 4마리를 위해 많은 공간을 내어주었다.

 

고양이들은 이 좁은 집을 200프로 활용한 곳에서 나름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나는 새벽 3-4시면 어김없이 머리를 뜯기고 물려가며 강제기상하는 삶을 살고 있다.

 

캔 살 돈이 없어 매일 여기저기 동냥하고 있다.

 

먼로는 습식이 아니면 먹질 않고

막내 단밤이도 더 이상 키튼 건식 사료를 먹지 않으려고 한다.

형아와 누나가 먹는 걸 먹고싶어 한다. 줘도 제대로 먹지도 못하면서 내 다리를 손톱을 박아가며 기어올라온다. 밥달라고.

 

나는 오빠를 만나면서, 후반전에 서로 지친 틈을 타 와인 중독자가 되었고

그렇게 7-8년을 넘게 매일같이 와인을 먹는 여자가 되어버렸다.

 

월급은 빤한데, 이것은 바꿀수가 없었다.

 

와인은 내 친구였고, 유일한 내 위로였다. 그 순간만큼은 오빠가 나를 떠난 슬픔과, 홀로된 적적함과, 쏟아부은 사랑의 결과가 허무로 남는 무의미한 열정을 위로받을 수 있었다.

 

최선을 다해 사랑했지만 항상 그는 떠나갔고

토할것처럼 열심히 애무해줬지만 그는 나를 남겨두었고, 연락도 받지 않았고, 결국 아무런 기약도 없이 나는 기다려야만 했다. 아무 기약도 없이 수년을 그리 살면서 미치지 않고, 술도 마시지 않고 살아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았다면 이야기는 달라질 것이다.

 

나는 에너지를 완전히 소멸하였고

그걸 위안할 다른 방법은 도저히 내 주변에 없었다.

 

지금은 돈이 없어 커피를 마시지만 이젠 위가 너무 아파 더 이상 에스프레스도 먹지 못한다.

라떼나 싸구려 맥주를 먹으니 자꾸 배만 나온다.

 

몸매도 외모도 마음도 정신도

 

이젠 늙어가고 있다.

 

딱 죽을 일만 나를 기다리고 있는데

야옹이들이 오늘도 나를 쳐다보며 놀아달라고 밥달라고 아우성이다.

 

능력도 없는 나에게 딸리게 된 이 아이들

 

나는 죽는날까지 이 아이들을 위해 또 다시 동냥을 하고, 죽을것처럼 일을 하러 기어나가야만 한다.

 

그것은 핑계였을까. 사실은 나는 살고 싶어서 고양이들을 이리도 많이 들인것이다. 살고싶은 숫자만큼이나

 

나는 이들을 들인 것이다

 

나는 정말 지독히 살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삶은 정말 끔직하게 스스로를 지속하려고 한다.

 

 

퇴근 길 7호선 종점에 내리면, 버스를 타는 정류장 앞에서 늘 상상한다.

그곳은 8차선 도로로 퇴근 길 차들이 전속력을 다해 달리는 곳이다.

여기서부터 40분정도 버스를 타면 고양이들을 만나고

똥치우고 밥주고 낚시대를 흔들면 아무 생각이 없어지는데,

 

나는 그 엄청난 속도를 자랑하는 빛나는 자동차들의 행진 앞에서

장렬하게 아니 사실 아무것도 아닌 먼지 한톨처럼 사라지는 상상을 한다.

매일 그 속도와 빛나는 자동차들과 그 안의 멋진 양복입은 사람들 사이에 서서 

그런 상상을 한다.

 

나는 정말 사라지고 싶다.

 

하지만 고양이들 떄문에 그럴 수 없다.

 

그래서 나는 말도 안되게 많은 고양이들을 들인 것이다.

 

나의 무의식에 존재하고 있는 삶에 대한 욕구가

측은함을 가장한 채 나를 먹여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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