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 이야기

주말

misfortune4 2020. 6. 15. 08:28

 

우리는 좋아하는 것을 부단히 느끼려 한다.

 

그 사람이 뭘 진심으로 좋아하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브람스의 곡을 몹시 좋아한다'는 말,

'어쩌면 이리 멋있을까. 최고잖아?' 하고 감탄하는 모습,

어떤 것에 대한 그 사람의 표정이나 눈빛,

그 사람이 반복하여 화제로 삼는 것.

그 사람이 진심으로 좋아하는 것은 그가 혼자 있을 때도 부단히 만지거나 보거나 느끼는 것이다.

자주 먹는 요리, 몇 번이고 반복하여 읽는 서적, 낡아도 개의치 않고 입는 옷, 수시로 흥얼거리는 노래,

장시간 앉아 있는 소파나 방

 

비트겐슈타인-미학, 심리학 및 종교적 신념에 대한 강의와 대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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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은 내 병원(서울) 구두병원(서울) 고양이병원(인천)에 다녀오구 술먹다 옆동 친구네 고양이 돌봐주러 다녀오고 또 술먹고 잤다.

일요일은 집 전체 청소와 아이들 이닦이고 털빗고 발톱깎고 야구보고 술마셨다. 

주말 내내 술을 먹어서, 월급받아 산 와인 5병을 수욜부터 시작해서 다 마셔버리고 말았다.

집에서는 도저히 커피를 마시기 어렵다.

사무실에서 늘 진하게 마셔야만 일할 수 있는데

주말에 집에서 그 각성의 기분을 느끼고 싶지도 않고 실제로 커피가 입앞에 있어도 안들어가진다.

 

이제 와인을 다 마셨으니 맥주로 넘어가야 한다.

일주일의 행복이었다.

 

그렇다고 주말이 행복했을까?

일요일에 애들 케어하느라 소진이 되어 낮잠을 자버렸는데, 눈을 살며시 떠보니 야구는 지고 있고 애들 눈 8개는 나를 향하고 있었다

부시시 일어나 술로 목을 축이고 낚시대를 흔들었다.

꺄꺄꺄꺄꺄

아이들은 나라는 존재가 낚시놀이를 해주고 쓰다듬어주고 간식주고 밥도 주고 똥도 치워주고

아프면 낫게해주는 것이니

늘 나만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어제 밤엔 약을 안먹고 잔게 생각이나 새벽에 일어나 약을 먹었다.

아이들이 자다말고 나에게 졸졸졸 온다.

한마리씩 안고 쓰다듬어주며 이름을 불러주었다.

엄마랑 있어서 좋아? 길에서보단 좋지?... 그러길 바래.....

라고 말해보았다.

 

 

5초를 못견디고 뛰쳐나가는 아이들이지만 그 순간만큼은 아이들도 느꼈으리라 믿는다.

 

나를 고마워한다고 아니 나를 좋아한다고.. 아니 적어도 내가 싫진 않다고....

 

 

내가 부단히 느끼려는 것은, 무얼까

스파클링 와인의 향긋함과 청량감 늘 위가 안좋은 나의 답답함을 해소해주는 기분

고양이의 털감촉과 냄새, 야옹대는 목소리, 찰랑대는 수염들, 바짝 새운 꼬리, 귀여운 동작들.

상상만 해도 좋아지는 것들

덱스터고든의 재즈, 조원선의 목소리

오빠 품의 냄새, 오래된 오빠의 옷에서 나던 오빠 냄새....

그의 품에 안겨있으면 간간히 그가 말을 할때 드럼통처럼 울려대던 목소리

그가 좋아하던 시원이표 찹스테이크

읽고 읽고 또 읽어 낡은 심보선의 시집

보고 보고 또 본 영화 러브레터

만지고 또 만지고 뭉개져 우리집에서 가장 낡은 물건이 되고 만 재키인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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