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 이야기

금요일인줄 알고 저지른 일들

misfortune4 2020. 8. 6. 15:15

직원들 휴가를 주었다.

마음이 설랬는지, 내일이 주말인줄 알고 책을 빌리러 갔다. 

640번대 살림, 정리, 라이프 쪽 책을 빌릴 참이었다. 

일본번역서가 많다.

일본살림은 전세계적으로 유명한가보다.

한국저자가 쓴 책들은 이미 온라인, 잡지 등에서 살림을 전시하며 유명해진 사람들이고

하다못해 잡지기자라는 사람들도 일인 라이프를 찬양하는 책들을 써내고 있다.

글로는 어느정도 검증된 사람들이니 그러하겠지.

일본여자가 쓴 나답게, 마흔 이라는 책과 필름이점영 출신 남자 솔로족 기자가 쓴 오늘도 계속 삽니다, 또 일본여자가 쓴 작은 생활이라는 책을 빌렸다(훔쳤다-보고갔다놓는다-비번을잊어버려서데스크에 가야하는데 가면 또 인사, 어쩌구 저쩌구, 구차, 연체료 궁상 등이 귀찮아 보고 갔다놓기로한다 조용히)

책을 펴자마자 고양이들이 달려들어 냄새맡고 파고들고 물기도 하다 떨어져 식빵을 구운채 언제놀아줄껀지를 네마리가 눈 여덟개로 쏘아볼텐데

아니 꼭 그렇지 않더라도 나는 책이나 읽을 정신머리는 될까

돈도 없고 빚값을 계획부터 짜야하는데

내가 거들떠보지도 않던 이런 책을 수년만에 들척이는 이유는 뭘까 싶긴 하다.

삶의 여유를 찾고 싶다 마음의 여유를 누리고 싶다 단 몇시간이라도 나를 위해 공허한 시간이 아닌 알찬 시간을 주고 싶다. 이 책을 쓴 사람들도 실제는 불안한 시절이 있었을것이다. 지금의 나처럼. 그런 생각이 들었다. 

거지같은 재정사정이 거지같은 삶을 살으라고 명령한 적은 없다. 과거는 나를 끊임없이 괴롭히지만, 현재는 과거에 대해 책임을져야 하지만 그게 궁상맞게 살아야만 대등해지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돈도없는게 와인이나 사먹는 것도 한심한 일이지만. 나는 대체 어떻게 살아야 맞는걸까. 모두에게 덜 미안하면서, 나 자신의 삶을 영위할 최소한의 것의 균형을 대체 어떻게 설정하면 될까.

 

마음이 무거워지는걸 방지하기 위해 애거서크리스티 전집 중 처음보는 것들을 몇권 더 가져왔다. 나는 추리소설과 공포소설을 좋아한다. 나는 잔인하고 무서운 걸 좋아한다. 나는 놀이동산가도 정신이 멈추고, 위액까지 토할거같은 놀이기구는 아무것도 못타지만(회전목마도 내려올때 울렁거려서 싫다), 귀신의집은 좋아한다. 흡혈귀영화가 좋다(좀비는 너무 병신같아서 싫다), 드라큘라 흡혈귀 처녀귀신 이런게 좋다. 왜 좋을까? 처연함? 피빨린 창백함? 한번도 못해본 긴 생머리? 사연? 트라우마? 순결함? 고결함? 

뭔가 등골이 서늘해질 때 상상도 못할 쾌감이 있다. 마치 냉장고에서 막 꺼낸 스파클링 와인을 마시는 것처럼.... 

 

아 벌써 서늘하다. 

 

매일 전화를 받을 수 없다는 사람에게 아침마다 전화를 거는 정신병에 걸린지 오래되었다.

예전엔 컬러링이라도 들을 수 있었는데, 이제 그것도 내가 선물해준게 더럽게 느껴졌는지 지워버렸다.

내가 얼마나 역겨우면 그거마저 없앴을까

어짜피 수신거부해놓으면 노래 몇초 듣지도 못하는데 말이다.

게다가 메세지도 남길 수 없게 해놓았다. 전엔 그건 가능했는데

마치 대부업체에서 단계별로 압박해오는 느낌이랄까

마지막엔 거의 숨통을 끊어놓는것같이 나와의 모든 가능성을 단절, 모든 신뢰를 단절. 그리고나서, 

'너가 자초한 일이야'

라고 속삭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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