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소설-스타일스저택의괴사건을 읽다가

misfortune4 2020. 8. 23. 17:22

소설에서 표현하는 것, 묘사하는 것, 설명하는 것 등에는 작가의 평가가 들어가있다. 너그럽다거나, 기질이 섬세하다거나, 우스꽝스러워보인다거나, 태도가 독립적이지 않다거나, 베짱이 없어보인다거나 하는.

그런데 그걸 화면으로 본다고 생각한다면, 정말이지 배우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배우의 외모와 연기력으로 그 모든 표현과 평가를 담아야 하고, 그 누구도 눈치챌수 없을 수도 있다. 영화의 리뷰어나 평론가들이 그걸 다시 단어로 표현해내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 무엇도 단어로서 생각하지 않고, 그저 그 순간의 사건에 묻혀 지나가는 것이거나, 단 한번도 반추하기 어려운 의미없는 이미지로 지나가거나, 좀더 예민한 사람에게는 인물에 대한 누적되는 이미지로서 작용을 한다거나 할 것이다. 

 

문학으로 작품을 대해온 사람들은 배우의 이미지와 연기를 보고 텍스트로서의 평가를 떠올릴것이다. 문학의 경험이 전무한 영화리뷰어들은 이미지의 누적으로 작품을 볼것이다. 문학의 경험이란 결국 영화에 대해 글을 쓰고 싶게 만들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문학의 텍스트로 가둘것인지, 이미지에 대한 순수한 경험의 텍스트를 새로 창조해낼것인지를 선택해야할 것이다. 

 

영화에 미쳐있을 때, 나는 책의 표현들을 평가들을, 어떤 규정들을 견디기 어려웠던 것 같다. 그래서 도무지 소설이라는 장르를 읽어낼수가없었다. 매력이 없었달까, 견딜 수 없었달까.

 

영화를 보지 않게 되면서부터 4-5년쯤 지나, 다시 책을 읽으려면, 나의 어린 시절을 지배한 고전문학부터여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읽기는 어려웠다. 마의 산을 빌려놓고 읽지 못한 채, 순수한 호기심을 자극하는 추리소설을 택하게 되었다. 추리는 재미있는 장르이다. 홈즈는 얼마나 재밌나? 애거서 크리스티의 푸아르형사 시리즈가 또 이렇게 재미있을 줄이야. 영국의 부호들을 상대로하는 계급성이 지나치게 드러나는 작품들이어서 불편함도 있지만 그들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하녀, 집사, 방문객, 떠안은 먼 친척이나, 떠돌아다니는 사람들이라던가 다양한 신분의 사람들 사이에서도 그들의 대화를 들으면 계급의식보다는 자신의 역할에 충실함을 느낄 수 있다. 그런 문제점들과 해소되는 지점에 대한 느낌을 과연 영화에서 읽어내려면 대체 영화를 어떻게 보는 것일까? 그건 정말 순수하게 영화라는 매체를 대하는 자세와는 좀 다른 것 아닐까? 문학에서 가능한 즐거움은 영화에서 전혀 가능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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