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 이야기

음식과 마음

misfortune4 2021. 10. 20. 10:55

오빠는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나는 요즘 정말 입맛이 없어졌어.

맛있는 빵과 과자를 난 참 좋아했었지

늘 가방엔 그런게 있었고, 사무실 서랍에도 넣어두고 사브작 사브작 꺼내먹는걸 즐겼지

따뜻한 국물도 참 좋아했어

오빠와 늘 탕을 먹으러 가곤 했지

다크 초콜릿도 에스프레소도 좋아했지

 

요즘은? 그 어떤것도 먹고 싶지가 않아 특히 나를 위로하는 음식들은 더더군다나.

뭔가 살아있는 소리를 내면서 먹어야하는 것들.

사각 사각 과자씹는 소리를 내가 스스로 들으면서 살아있다는 이상한 느낌을 주는, 저작행위의 자위행위.

후루룩 후루룩 카... 하면서 속을 쓸어내리며, 살아가려고 하는, 그 긍정의 행위와 소리들.

뭔가 살아내려고 내는 소리들, 삶을 긍정하고 위로하려고 먹는 소리들, 

인생을 꼭 뭐같이 살아도, 먹는 소리는 어쩌면 다같이 그렇게 긍정적인지.

이상한데서 위로를 느끼려는 사람들

삶을 똑바로 쳐다보지도 않으면서, 먹는데서 삶을 느끼는 사람들

나도 그런 사람들하고 다를바 없는데, 요즘은 그게 뭔가 징그럽게 느껴져 견딜수가 없어.

그런 걸 보면 온몸이 거부반응이 들고 징그러워

 

그냥 죽지 않을 만큼, 씹지 않고 입에 우겨넣을 수 있는, 소리안나는 음식들, 주로 편의점에 파는 물렁물렁한거, 

이름은 다 다른데, 맛은 다 비슷한거같은 그런거들, 데워먹으라고 나오지만 그냥 차가운 채 먹어도 상관없는 그런 것들

그렇게 싸지도 않으면서 마치 싼것처럼 진열되있는 그런거

가치없는 그런거

대기업연구원들이 아파트에서 차굴려가며, 고시원, 원룸에서 고개처묻고 쳐묵쳐묵하게 만든 그런거를

나는 주로 그런거를 입에 우겨넣고 늘 소화제를 달고 살게 되었어.

불과 몇달 안돼. 8월 말즈음 부터 맡은 어떤 일때문에 다시 안좋은 트라우마를 경험하게 되면서

나는 다시 그 수없는 야근기간동안 겪은 그 상태로 일부(전부는 아니어서 다행이지) 돌아가게 되었어.

 

맛있게, 따뜻하게, 바삭바삭, 후룩후룩, 삶을 긍정하며

그렇게 오빠와는 어떤 음식이든 맛있게 먹었어.

오빠가 뭐 먹고 싶냐고 물으면 언제나 그렇게 대답했지

오빠를 먹고 싶다고.

나는 어쩌면 오빠를 먹었나봐

오빠라는 사람을 맛있게 먹었나봐

그상에 차려진 음식이 무엇이었나보다

오빠를 마주보며 맛있다 오빠랑 먹으면 다 맛있어

오빠도 시니랑 먹으면 다 맛있어

하던 기억이 더 남아있으니.

 

뭘 먹고 싶어?

오빠랑 마지막으로 함께 먹은 음식이

연희동 몽고네에서, 내 생일에 함께 먹은 맛있는 파스타와 와인이네.

정말 비싼 편에 속하는 곳인데, 선뜻 나를 위해 가준 오빠.

그것이 우리의 마지막.

 

음식을 다시 맛있게 먹고 싶어.

고양이들에겐 늘 습식을 데워주고, 아이들이 찹찹찹 거리며 먹는 동안 건사료를 준비에 한편에 놓아두지.

그러면 이어서 아이들이 까득까득 하면서 뽀작뽀작 사료를 먹어.

그리고 나선 이쁜 손에 침을 묻혀가며 열심히 그루밍을 해.

얼마나 귀여운지 아이들이 따뜻한 밥을 먹을 수 있어서 얼마나 감사한지.

스스로를 잘 돌볼줄 아는 고양이들이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그 좋아하던 커피도 마시지 못해 늘 타놓고 버리는 일을 반복하고 있어.

 따뜻하게 후루룩, 마시며 나를 위로하고 스스로를 정제하고 타이르고 느끼는 일을 하지 않고 있어.

 

나를 도와줘.

 

원래 나를 돌보는 편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렇게까지 나를 극단으로 몰았던 긴 수년의 시간을

이제 겨우 빠져나왔다고 다행이라고 여기고 있었는데,

 

나의 과거와 얽힌 인물들이 가끔씩 출몰하여

이름을 바꾸고 잘 살아가고

안면을 바꾸고 잘 살아가는 걸 보아.

그들도 살아야겠지

살인자도 감옥에서 살잖아

사기꾼도 감옥안가고 잘 살잖아

밥을 먹겠고, 아무리 가난해도 라면은 먹겠고, 똥을 싸겠고, 몸을 씻겠고, 몸을 뉘이겠지. 

어떻게 그것을 욕할수있겠어.

 

그저 나와 인연이 아니었던 것이겠지.

나의 약점이 그대로 드러났을 뿐이고, 그들의 악함이 강하게 발휘되었을 뿐이지.

 

강재와 부정이는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까?

그들이 꼭 안거나 키스를 하지 않아도 좋았을 것 같아.

누가 누구를 끌어준것도 아니야

감독의 말처럼 그냥 손을 잡고 걸었다면 더 좋았을것도 같아.

 

그들이 정말 좋은 친구가 되길 응원해.

스마트 인공지능 시대에, 인력을 대행하는 시대에,

인력이 필요한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일이 흔해진 시대에

전통적인 직업이라는 것이 점차 붕괴되어가는 시대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과 허무함이 

더이상 그들을 상처내지않고, 

비슷한 처지의 이들끼리 서로를 밀어내지 않고 보듬어 안아주었으면 좋겠어.

 

나도 많이 이젠 지쳤어 오빠.

 

더 이상 이렇게 일해야하는건지도 잘 모르겠어.

 

더 이상 나를 세뇌시킬 힘도 이젠 사라져가는 것 같아.

 

너는 무능력하다 그러므로 이런 일이라도 붙들고 안떨어져나가게 살아내야한다 는 명령말이야.

내가 그것을 나에게 더 이상 해도 괜찮은걸까.

 

내가 이토록 안좋아졌음에도

다른 방도를 찾지 않는 

내 몸에 위기를 느끼면서도

병원에 갈 의지를 갖지 않는

 

나를 어떻게 바꾸어야 하는걸까.

 

중앙대병원 삼거리에서, 강한 아침햇살을 맞았어.

갑자기 햇살이 너무 따뜻해서 한참을 서있었어.

마스크를 쓰면서부터, 계절의 냄새를 맡지 못했어.

내가 좋아하는 여름냄새, 흙냄새.

내가 좋아하는 가을냄새, 낙엽냄새.

담배를 끊으면서부터 나무와 하늘을 보지 못했어.

연기를 뒤로 하고 보았던 나뭇가지의 움직임과 이파리의 색깔과 푸르거나 어둡거나 했던 하늘과의 조화.. 살랑이는 바람에 움직였던 마음같은 거.

담배를 끊으면 그런거조차 느낄 여유도 사라져 온종일 모니터만 보게 돼.

뭐가 좋은 걸까? 인생에서. 인생에 대해 정말 뭐가 좋은 걸까.

 

햇살을 맞을 때, 이어폰에서 대사가 들렸어.

가족도 아닌, 직장 동료도 아닌 사람의 전화번호를 핸드폰에 저장하는게, 처음있는 일이라,

답장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너무나 마음이 설렜어. 얼마만에 이런 기분이 드는지 몰랐어. 

하늘을 얼마만에 제대로 보는건지, 햇살은 또 얼마만에 감사하게 느끼는지.

 

조금이나마 긍정적인 기운을 느낀 날이 얼마만인지

살아내려고 약을 먹고 버텨냈지만 그럼에도 삶에 대해 긍정하는 마음에 조금도 생기지 않았다면,

 

한 작가의 대사는, 한 감독의 음악은, 하늘의 햇살은

약이 떨어져 먹지도 못한 아침에, 그 약보다도 긍정적인 것을 주었어.

 

몸이란 건 무엇일까.

몸을 좋게 만들기 위해 약을 먹는데

마음은 왜 몸이 좋아진다고 좋아지진 않을까?

몸만 바라보는, 몸만 신경쓰는, 몸에 좌지우지 되는,

몸으로 컨디션을 움직이려고하는 

의사들은 그렇게 말하거든

 

내가 계속 몸에 대한 생각만 했던 것이

너무 한심하게 느껴졌어.

아프다고 어디가 몸이.

 

사람들은 몸이 아프다고 하면 걱정하고 병원에 가보라고 하지만

마음이 아프다고 하면 그러지 않지.

 

마음이 아픈건 비밀스럽고

몸이 아픈건 안비밀스러운 이유는 무엇일까.

 

 

더 중요한 것이 나아지고 싶었었나봐

그래서 나에게 더 중요하지 않은 것에만 신경쓸 때

나는 더 나빠만 졌었나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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