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 이야기

6/21 금요일 오후... 오빠를 떠올리다가....

misfortune4 2019. 6. 21. 16:36


최근들어 유난히 지하철과 버스에서의 싸움이 잦다.

조금 심각하다.

아무데서나 침뱉고 가방으로 치고, 사람몸이 타인에게 닿는것에 대해 아무 거리낌이 없는 유형의 사람들이 갈수록 많다.

경계심이 덜한것일수도 있다.

대체 왜 타인에 대해 경계하지 않고, 왜 치냐고 하면 그게 그렇게 대단한 피해냐고 반문하는 걸까.

당신은 옆에 누군가 핸드폰 영상에 빠져 키득대느라 가방으로 당신을 툭툭 치고있으면 기분이 어떻겠냐고 물었다.

자긴 아무렇지도 않다고 했다.

할 말이 없었다.

걷는 일도 시선 처리때문에 힘든 일이다.

대한민국 사람들이야 워낙에 타인에게 관심이 많기로 유명하고

또 그만큼 자신의 어떠어떠함, 아니 어떠하게 "보임"에 관심이 많아

서로를 관찰하느라 자신을 쇼윈도에 비춰보느라

영상속에 자신을 투영하느라

정신이 다 팔려있어

너무나 정상적이고 평범한 거리나 가로수나 하늘이나 태양이나 달이나 별에대한 시선조차 찾아보기 어려우니

그냥 시집이나 꺼내 보곤

아니 그냥 인스타 갬성만으로도

정신적인 활동을 하는 기분이다.

오전 출근길에는 황동규의 사는기쁨을 읽다가

어떤 시들은 번뜩일정도로 어두워서 좋았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유미적인 느낌에 의지하여

그것을 목적으로 정신을 훈련한 사람에게 느끼는 피곤함이

훅 다가와 갈수록 거부감이 들었다.

죽음앞에서 어두운 기운을 느낄 때마다 마음 속에 끝까지 남아 잇는 유희성을 놓지 않으려는 안간힘이 유쾌한 기분을 주지 않았다-O형 남자의 특징같은 건데 철들지 않은 채 늙은 노인이 되었는데 예전처럼 활기를 가질 수 없어 속으로 매우 화가 나있으나 겉으론 호탕한 척 하고 있으며 그러다 자신이 죽어가는 것에 우울해하고 스스로 상처를 받는.

생각이나 말로는 죽음을 대수롭지 않은 단계로 여기지만 실은 마음 끝까지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싶지도 받아들이고싶지도 않아 정색하는 두려움 같은 것.

정말 그것이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이라면

그런 단어를 입에 올릴 이유도 없을 것이다.

사람은 모두 두려운 것을 말해버리니까

자신이 빠질까 두려운 것을 말로 해버리니까

그래서 사랑한다고 골백번 얘기하는 사람은

결국 사랑에 빠지는 나 자신이 두려운 것이다

사랑해봤어?

라고 물어볼때

글쎄 잘 모르겠어.... 그런게 뭔지 잘 모르겠어

라고 말하는 사람에게는

두려움이 없는 것이다

자신을 잃어버릴 두려움 같은 것이.

황동규가

자신의 벌레문자국같이 조그맣고 가려운 사는기쁨을 용서해달라고 말했다.

나는 니들이 뭐라고 비웃던 끝까지 탐미적인 것을 추구하다 골로가겠다는 이야기로 들렸다.

자연에 매몰되어 자연만을 관찰하는 삶도 소인배처럼 보인다.

자연을 볼 줄도 그럴 여유도 이유도 모르는 사람들보다는 숨통이 트일테지만

우리 아빠같은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우리 아빠도 소인배였다.

우리 엄마같은 사람은 더더욱 되고 싶지 않았다.

우리 엄마는 결코 동물적인 사람은 아니었지만

매우 매몰차고 거센 성격을 가지고 평생을 남을 원망하고 자신을 합리화하느라 에너지를 다 소비하였다.

나에겐 가족이 없다.

다만 나에겐 족보가 있다.

그것 뿐이다.

같이 살지 않으면 가족이 아니다.

아니 보고싶지 않으면 가족이 아니다.

내가 가장 힘들고 외로운 시절에 언제나 나는 혼자였다.

엄마는 내가 집에 들어올때마다 나를 쫓아냈다.

내가 힘들어할때마다 나를 괴롭히는 자를 이해한다는 말을 했다.

너는 유별난애라고. 너가 이상한 거라고 했다.

지하철에서 나를 치고도 사과하지 않는 사람도 내 가족이 아니듯이

그들도 나의 가족으로 도무지 여기지 못한 채 성인기를 지나왔다.

오히려 같이 살면서 맞고 싸우고 피튀기며 증오하던 청소년기 시절이

유일하게 가족같은 시간이었을 것이다.

나는 마음이 무겁지만

전혀 슬프지 않다.

지금 나는 아무렇지도 않지만

짓눌린 마음을 가지고 있다.

나라는 자아가 생명을 부여받은 일은 단 한번 일어나는 일이고

그게 어떤 여자와 남자의 결혼과 성관계 속에서 탄생했다는 건 신비스러운 일이다

이 사회가 만든 가족간의 윤리와 도덕, 효, 정, 사랑에 대해

나는 어떤 당위감도 갖지 않는다.

나에겐 가족에 대한 책임감이라는 것이 형성되지 못했다.

아무런 마음도 들지 않는다.

그래서 그것이 내 허물이 되고, 나를 갉아먹는 일이 될수도 있다고 느낀다.

나는 가족이 아니라

가족"같은" 사람이 필요했다.

그건 따뜻한 마음과 위로를 나눌만한 사람이며

내가 안아주고 싶고 잘해주고 싶은 사람이었다.

무엇보다 힘들때 서로를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편이 되어주는 사람이었다.

가족이 그래야한다고 믿었기에

한번도 그런 경험을 못한 나에겐

그런 것 "같은" 사람이 더 소중했던 것이다.

사랑받고 싶지 않았다.

누구한테 사랑해달라고 한 적이 없다.

사랑하고 싶었다.

마음껏, 내 마음껏 사랑해도 되는 사람이 필요했다.

엄마는 말했다. 내가 언제 너더러 사랑해달래? 이런것좀 사오지마.

내 선물을 갖다 버리던 엄마의 야멸찬 얼굴들이 떠오른다.

나는 어려서부터 선물사기를 좋아했던 사람이었다.

선물을 주면 나를 사랑해주겠지라는 생각이었을까?

그런 마음이 무의식에 없었다고 말하기는 확신이 없지만

선물을 받을 때 기뻐하는 상대의 얼굴은

곧 나에 대한 긍정의 신호이기도 했다.

그 웃는 얼굴을 보고 싶었던 것 같다.

사람은 웃을 때 모두 예쁘니까.

우리집은 생일파티를 한 적이 없다.

부모님도 나에게 선물을 준적이 없다.

엄마 생일날에도 그런걸 사오면 혼이 나곤 했다.

서로 축하할 수 없는 관계

그리고 미안해하지도 않는 관계

다만 의무감에 의해 먹고 먹여주고 재워주는 일이 이뤄지는 곳

그곳을 어떻게 가정이라고 할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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