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이야기

심보선 <내가 누군가를 죽여야 한다면>

misfortune4 2019. 6. 23. 10:11



[북, 꿈]

당신은 나의 상체에 기대어 있다

거기엔 아무것도 없는데


당신은 내 심장소리를 듣는다


들어봐. 여기 뭔가 있어

알아, 하지만 별것 아니야

너를 죽지 않게 하는 거야

알아, 그러니 별것 아니지


당신은 피식 웃는다


이번 가을엔 수목원에 가자

그래, 수목원에 가자


우리가 함께 수목원에 간 적이 언제였나

그때 이런 말을 했던 건 기억난다

들어봐, 저쪽에서 황소개구리가 운다

그러자 저쪽에서 큰 새가 날아올랐다

어라, 황소개구리 날아간다


당신은 피식 웃었다


그 후로 당신의 머리칼은 아주 길어졌다

몇 올을 뽑아 내 심장에 심고 싶다


그러면 내 심장은 특별해지겠지

그리면 난 죽겠지


당신은 아직도 내 상체에 기대어 있다

거기엔 정말 아무것도 없는데


당신은 내 심장 소리를 듣는다

우리는 까무룩 잠이 든다


꿈속에서 당신은 먼 북소리를 듣겠지

꿈속에서 나는 미친 듯이 북을 치겠지



[오해]


나는 오랫동안 배려의 그림자를 키워왔다

그것은 내 몸의 윤곽만큼 온기를 지닌다

그러나 참 이상도 하지

사람들은 찬바람이 나로부터 불며

훈풍은 자연의 법칙이라 여긴다

그 누가 그림자의 따뜻한 속삭임을 듣겠는가

그 누가 그림자의 깊은 정에 이끌리겠는가

그런데 참 이상도 하지

사람들이 나를 오해하듯

나는 내 심장을 오해한다

사랑은 나의 의지이며

농부가 열매를 거둬들이듯 때가 되면

사랑을 소유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덤불숲을 뛰쳐나온 토끼 따위에

놀라듯 내 심장은 사랑을 만나 쿵쾅거린다

딱딱한 어깨와 허리와 무릎을 꺾어

사랑을 포획하려 엉터리 덫을 만든다

그러니 참 이상도 하지

산다는 것은 오해의 연속이다

사람들은 나를 오해하고

나는 내 심장을 오해하고

내 심장은 생을 더듬거리며 엇박자로 달린다

오해로 인해 사물과 인간은 

아름다움을 하루도 간직하지 못한다

그것은 참 이상하고도 슬픈 일이다





[내가 누군가를 죽여야 한다면]


내가 누군가를 죽여야 한다면

독이 좋을까

칼이 좋을까


내가 누군가를 죽여야 한다면

부드러움이 좋을까

난폭함이 좋을까


내가 누군가를 죽여야 한다면

오늘이 좋을까

내일이 좋을까


내가 누군가를 죽여야 한다면

밤이 좋을까

아침이 좋을까


내가 누군가를 죽여야 한다면

사랑이 좋을까

증오가 좋을까


내가 누군가를 죽여야 한다면

어떤 시를 쓸까

그다음엔 어떻게 죽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