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이야기

우리는 행복할 수 있을까? ....(진행중)

misfortune4 2017. 8. 3. 13:39




우리가 행복하게 지내는 법


서문

푸우와 공실이는 행복하게 만났습니다.

푸우는 재혼해서 사는 악세사리 사업하는 50살 남자였고

공실이는 유부남만 사귀다 사기당해놓고도 돈대주러 나온 정신나간 33살 웨이트리스였습니다

처음부터 서로가 이런 사실을 알았던 건 아니었습니다.

푸우는 산 친구랑 술을 마시러 와 한마디도 안하고 이야기만 듣고 술만 따라마시던 손님

푸근한 몸과 기가 센 눈을 가진 귀여움과 무서움이 뒤섞인 사람이었는데

공실이는 그가 혼자 노래부르는게 좋아서 무대에 가서 안아버렸습니다

공실이가 전화번호를 달랬더니 푸우는 순순히 적어주고는 주고는 고개를 푹 떨구고 졸기 시작했습니다.

첫 만남은 그랬습니다.

공실이는 푸우에게 열심히 작업을 걸었습니다.

푸우둥절한 푸우는 밖에서 아가씨를 만난게 첨인지 어찌해야할질 몰라하면서도

공실이 싫지는 않은 모양이었습니다.

공실이는 푸우를 신림동 자취집까지 끌어들이는데 성공했고

훌륭한 푸우의 성적 능력을 이끌어?내는데 일조?하였습니다

둘은 열심히 사랑했고

아파도 열심히 섹스했고

수많은 타액을 교감하고

온몸을 성감대로 만들어갔습니다.

공실이는 푸우에게 맞는 음식과 와인을 주말마다 만들어주기위해 노력했습니다.

일에 지친 푸우에게 애교애교를 피우며 좋은 책과 음악을 선물해주는것을 잊지 않았습니다.

푸우는 공실이를 아껴주었고

힘들고 외로울때 꼭 안아주었고

공실이가 생전 먹어보지도 못한 맛있는 사시미와 사케를 많이 사주었고

공실이가 가보지 못한 산에도 열심히 데리고 가주었고 서울생활하면서 타보지 못한 승용차도 많이 태워주었고 

지하에 사는 공실이에게 바깥세상도 많이 구경시켜주었습니다


이런 푸우 덕택에 공실이는 방황하던 술집생활을 6개월만에 끝내고

사기꾼과는 완전한 단절을 하고

예전처럼 전공을 살려 취직을 했고, 첫 출근날 푸우는 축하한다며 전화를 걸어주었습니다.

아직도 공실이는 그날의 골목길. 걸음걸이. 귀에서 들리던 따뜻한 목소리를 잊지 못합니다.

푸우 덕분에 공실이는 돈을 다시 모아

사기당한 돈도 거의 모았고

푸우네 회사 근처로 그럴듯한 원룸을 얻어(비록 지하였지만) 푸우를 더 가까이서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둘은 몇년간 행복했습니다.

다퉈도 금새 안아주었고

눈물을 닦아주었고

여행도 많이 다녔습니다

별로 해준것이 없다고 느낄때에도

둘은 이미 인생의 너무 많은 보이지않는 부분을 공유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마치 보이지않는 점액질형태로 엮어진듯했습니다.


언제부터였을까 

공실이는 비정규직에 월세생활을 하면서 자신에게 올수없는 푸우에게 거의 올인하다시피 한 불안한 삶에 대해

괴리감과 우울감을 느껴가기 시작했습니다.

푸우는 공실이와 살 수 없었고

푸우는 항상 돌아갈 곳이 있었고

공실이는 푸우가 있다간 자리를 치우고 걸레를 훔치며

우는 날이 많아졌습니다.

푸우 냄새가 그리워 더러워진 이불보와 배게를 잘 빨지 않는 날이 늘어가고 있었습니다.

공실이의 푸우를 향한 전심을 다했던 마음에 조금씩 균열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공실이는 곧 잘릴 직장에서 너무 많은 책임감을 가지고 일하고 있었습니다.

고통을 잊기 위해 와인을 마셨고

그 무렵 생리전증후군이라는 질병의 현상을 강하게 느껴

정신과 치료를 받으러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이 나를 향해 감각되는 이 괴로움이란 거의 죽음과 맞닿아있다고 느꼈습니다.

욕구에 대한 복잡한 문제들이 공실이의 정상성을 완전히 가로막기 시작했습니다.

그 무렵 푸우도 새로운 사업준비로 많이 지쳐있었습니다. 

둘은 서로간의 약속이 조금씩 금이 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가고 있었습니다.

서로 행복하자고 했던 그 약속이

예민해진 서로의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었습니다.


공실이는 직장에서 짤리게 되고 취직이 되지 않아 많이 힘들어졌습니다.

하지만 푸우는 공실에게 사업하면 옆에 책상을 놔주겠다며 공실이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공실이는 거식증에 걸려서 40키로까지 살이 빠졌지만

죽을 힘을 다해 재기하고자 했습니다.

땅이 꺼지듯 다리가 후달리고 어지러운 날들 속에서도 지하철을 타고 홍대 악세사리학원과 동대문종합시장을 오다니며

푸우일을 돕기위한 준비를 했습니다.

그야말로 버티기로 결심했습니다.

그 추웠던 2월, 오돌오돌떨며 길거리에서 울며 뼛속까지 추운 지하방으로 들어가 불면증에 시달리던 긴긴밤을

누구는 알아줄수있었을까요

하나님도 외면한 시간들이었습니다.

보자기로 목도 졸라보았고, 켁켁대며 풀러대고 울다 푸우오빠를 부르다 지쳐잠든 날들의 연속이었습니다.

그 와중에 공실이는 운전면허시험도 봤습니다.

하지만 결국 푸우는 공실이를 채용할 수 없었습니다.

푸우는 공실이와 일하기로 결정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푸우는 인생의 후반부에서 마지막으로 하는 사업이었습니다.

푸우는 정말 실패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고, 최대한 안전한 선택을 해야만 했을 것입니다.

공실이는 푸우의 선택을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이 일로 푸우에게 깊은 상처를 받았습니다.

결국 공실이는 닥치는 대로 어디서든 일을 하지 않으면 월세를 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도와주는데 한계를 느낀 푸우도 차차 공실이 곁을 떠나갔습니다.


어렵사리 한 파견직회사로 들어가 대학도서관의 정리파트 용역업무를 맡게된 공실이는

쥐꼬리 월급에 실로 엄청난 업무를 맡게 되었고

매일같이 밤 12시에 집에 들어가느라 푸우에게 버림받은 아픔을 감각하기조차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계속된 야근에 지친 공실이는 여지없이 무너졌고

매일을 술과 구토를 일삼으며 하루하루를 버텨야 했습니다.

술을 부어대 위장이 아파서 고통스러워야 그날의 하루가 견딜만한 것으로 치환되는 경험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괴로움은 괴로움으로밖에 견뎌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처절하게 깨달았습니다.

공실이는 정말 행복으로서 괴로움을 견딜 수 있을거라고 믿어온 인생이었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괴로우면 어떤 행복도 자신 곁에서 버티지 못하고 떠나간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미 때는 늦은 것일까요?


이미 늦었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공실이는 결국 세상에서 젤 좋았던 것을 떠올리기로 결심합니다.

그건 자신에게 상처를 주었던 푸우의 품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푸우에게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주고

푸우를 애무해줄 때

푸우가 가장 행복한 얼굴을 보였던 것을 기억해냈습니다.

가장 고통스러웠을때 공실이는 유리를 호호 불어가며 화장실에서 푸우얼굴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야근하던 회사책상에서도, 새벽두시 겨우 잠들기 위해 샤워를 하던 샤워실 거울에서도

공실이는 푸우를 그려넣었습니다.

거기엔 공실이 자신이 아닌 푸우가 보였기때문입니다.

공실이의 얼굴을 비취면 푸우가 보였기 때문입니다.

공실이의 눈엔 푸우가 들어가있기 때문이었고

그런 눈에 맺힌 상은 뇌가 사라지지 않는한 지워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공실이는 상처를 받기로 결심했습니다.


받지 않는 전화를 걸기 시작했고

받아도 퉁명스러운 전화를 견디고자 했고

그리고 화도 내고 울기도 하고

또다시 푸우가 전화를 끊어버리면

시간을 두고 다시 전화를 걸었습니다.


무섭다는 말까지 들어가면서도

공실이는 푸우곁에 다시 돌아가고자 했습니다.


푸우는 많이 괴로웠습니다.

이 상황이 너무 고통스럽고 힘들었습니다.

사업에 올인하다시피한 삶이었고

다른 걸 신경쓸 겨를이 없었습니다.

어떻게든 실수하지 않고 실패하지 않고 잘 해내야만 하는 일이었기에

다른 것은 생각할 여유가 정말이지 없었습니다.

가족외에는...


푸우는 매일같이 울어대고 전화해대는 공실이 때문에

정말 괴롭고 힘들었습니다.


그렇게 연락이 되고 안되고 기분이 풀어지고 화가나고 

소리지르고 울고 하던 시간들이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지나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우리는 정말 우리가 추구했던 행복감을 서로에게 줄 수 있을까요?


우리는 기억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좋은 기억, 나쁜 기억, 따뜻한 기억, 추웠던 기억

아름다웠던 기억, 매몰찼던 기억

치유되었던 기억, 생채기가 생기던 기억

가슴을 치던 기억, 가슴을 열던 기억

술취해서 고백하던 기억

술취해서 추한 기억

손을 잡아주던 기억

매만져주던 기억

쓰다듬던 기억

키스의 기억

애무의 기억

섹스의 황홀경

지치고 늘어진 몸을 대하던 슬픈 기억

지치고 늘어진 몸에게 힘을 넣어주던 희망찬 기억



인생에서 짧다면 짧은, 늦다면 늦은, 7여년의 시간동안의 굴곡진 연애에 대해

전혀 종지부를 찍을 생각이 없는 공실이는

푸우를 여전히 방긋방긋 웃으며 쳐다봅니다.

이제 공실이는 푸우를 보고 울지 않습니다.

공실이는 상처를 많이 극복한 것도 같습니다.

푸우도 이제 공실에게 쌀쌀맞거나 무뚝뚝하게만은 하지 않습니다.

전화도 잘 받아주려 노력합니다.

물론 만지지는 않지만 말입니다.


공실이는 푸우를 보면 자꾸만 까마득해집니다.

그것이 과거를 향한 것인지 미래를 향한 것인지 

그 둘이 사실은 같은 방향을 향해있다는 것을 아는 것인지 모를 느낌...


푸우는 공실이를 보면 어떤 기분이 드는 것일까요?

어떤 기억이 나는 것일까요?

고통보다 행복이 조금은 더 앞서 드는 감정일까요?

공실이를 떠올릴때 울던 일그러진 얼굴보다

웃는 모습을 더 먼저 떠올리고 있을까요?

그렇지 않을까요?

공실이의 희망사항일 뿐일까요?


공실이는 푸우에게 좋은 기억을 다시 많이 심어주어

푸우에게 있는 않좋은 기억을 하나씩 지워내고 아니 대체해내고 싶어합니다.


푸우도 공실에게 같은 기대가 있을까요

있겠지요


그것이 우리가 아직 희망적이라는 것이겠지요

서로가 회복하길 바란다는 것에서

아직은 공실이가 더욱 푸우에게 노력해야하지만

어쩌면 그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처음 시작도 공실이가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푸우둥절한 푸우에게 공실이가 먼저 안고 키스했기 때문입니다.

너무 단순한가요?

하지만 그것은 중요한 것이지 않을까요?

그후 푸우가 공실에게 헌신적으로 베풀어준 것들에 대해

공실이로선 당연한 것이지 않을까요?


"우리는 서로의 과거 모습이자 미래의 모습이었습니다."


서로를 보면 과거가 보이고 다시 서로를 보면 미래가 보입니다.


그러므로 어떤식으로든

우리는 헤어질 수 없다는 것을

선언하는 바입니다.


오늘 서로 아프게 울어도 내일 서로 안아줄 수 있는 한

우리는 다시는 이별할 수 없음을 압니다.


행복이라고요.


"푸우가 행복했음 좋겠어"

"공실이도 행복했음 좋겠어"


이렇게 써놓고 보니 서로의 행복을 빌어주는건

꽤나 쓸쓸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행복?!

모르겠다.


애초부터 그런게 우리 둘의 삶에 들어와 있었는지.

그건 돌려보낼때나

앞세울때나

하는 무책임한 말이 아니었나 싶기도 합니다.


푸우가 보이지 않을 때 울며 기도할 수 있는게

행복이었던가요.


공실이가 멀어졌을 때 울며 기도해줄 수 있는게

행복이었던가요.


행복은 정말 대신해서 빌어주고 바래주는 것일까요

둘이서 해낼 수 있는 건 아니었던가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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