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이야기

2014.7.3 한페이지소설

misfortune4 2015. 11. 3. 20:23



여자의 글은 더 이상 읽기도쓰기도 원치 않는다는 전제로서만 무슨 글이든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집에 돌아와 투박한 노트북를 두드리면서 바로 이전의 까페장면을 상상해보려 노력한다하지만 알고 있다집에 돌아와 불을 켠 순간부터이미 이 공간에 붙잡혀버렸다는 사실을 말이다길을 걸어오면서 글을 써보리라 마음먹었던 자유로운 생각들이집에 도착하여 글을 쓰면 그럴듯하게 조합 되리라는 상상으로 연결되지만실제로 그러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집은일상이 되어모든 일탈을 차단한다어쩌면,풀다 만 영어 문제집과 일시정지한 깜박이는 오디오 화면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집은그곳을 탈출하기 직전의 상태를 늘 고스란히 연출하고 있기에 도착한 순간부터모든 상상과 계획은 정지되는 것이다.

 

까페에선한트케의 책을 읽었다읽었으나 그건 스키밍한 것이나 다름없었다차는 계속해서 흘러가고노래도 흘러가고담배연기도 꺼져갔기에무엇을 집중한다는 것이 어려웠다다만 그의 시선처럼, 3인칭 관찰자 시점을 갖고 싶다고 느꼈다역겨운 1인칭 시점의 많은 소설들 속에서 그의 소설은 편안하게 느껴진다자신이 무얼했고무얼 관찰했는지 나열해대며 온갖 추측에 사로잡힌 채 거들먹대는 그 역겨운 소설들 속에서 단연코 빛난다는 말이다아니 정확히 말하면 숨통이 트이는 것이다윤리적인가윤리적이다아마 그렇다고 느낀다.

 

그렇다면, 3인칭은 누가 될것인가한트케는 자신을 3인칭에 대입하고 있다하지만 이 내-정말 부득이 한번 허락하는 내-가 그럴 수 없는 이유는 이미 첫 줄에 있다-그것을 전제함으로서만 시작되고 성립되는 여기까지의 글인 것이기에그를 생각했다그의 시선이라면 빌려오고 싶다혹은 그 속에 들어가는 상상을 해보고 싶다그라는 몸체안에 들어가 일상을 살아보고 싶다그러므로서 그 이면서도 그 와는 다른나의 그에 대해 그가 읽는 것을 상상해보고 싶다그렇다면 이 글을 온전히 그에게 헌정되는 글이 될 것이다그러나 사실 누가 본다 해도그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그는 시점을 대입하기 전의 온전한 그로서 존재함으로최대한 경박하지 않게조심스럽게 추측하는 일이 쉽지 많은 않을 것이다그를 많이 벗어난 채 3인칭을 가장한 작가의 시점을 넣어버릴까그것이 두렵다작가는 그것이 설레이면서도그에게 실망을 안길까 두려운 것이다.

 

1.

 

앙드레 클루에 밀레짐 2008. 짙고 푸른 하늘색 라벨이 붙은 초록색의 뚱뚱한 샴페인의 병을 보며 그의 묵직한 손을 떠올린다그것을 한손으로 움켜쥔 채 벌컥 벌컥 들이마시며 웃고는 잠시 자유롭게 걷다가 어딘가에 걸터앉아 둥글게 허리를 말고는 생각에 잠기는 그의 모습까지 연상한다이쯤이면 그에게 들어갈 수 있을 것인가아직 잘 불러와지지 못한다갈색털을 지닌 커다란 곰인형그의 대역으로 삼아 안고 만져주곤 하는 저것이 오히려 쉬울 것이라 생각했지만실제는 전혀 그 반대였다. 그래, 신발장입구이자 출구인 장소만남이자 헤어짐의 장소그 신발장에서 이제 막 신은 신발을 벗을 채비를 하며 들어오려고 하는 그그를 상상해본다.

 

그는 종일 땀흘린 신발을 벗으며 조금은 시원하고또 조금은 민망하기도 한 기분으로 집을 들어온다그녀가 깡총거리며 연두색 수건을 두른 채 뛰기 시작한다언젠가 강아지가 자신을 반기는 방식을 설명했더니그대로 연출하기 시작한 것이라 생각해본다그녀는 빙글빙글 돌다가 그에게 폭 안긴다언제나처럼 그는 그녀의 등 혹은 엉덩이를 두드려주며 안부를 묻고는금새 침대에 걸터앉거나 반정도 누워버린다-. 피곤이 몰려온다그녀는 냉장고를 열어 뭘 줄까 맥주를 줄까 하며 왔다 갔다 한다그는 일단 몸부터 씻어야겠다고 생각한다하지만 잘 움직여지지 않는다몸이 무겁다그냥 눕고만 싶다하지만 눈앞에서 이미 샤워를 마친 채 한껏 촐랑거리는 그녀를 보며 자신도 씻어야만 한다는 의무감 비슷한 생각을 한다그리고 그대로 한다-하고야 만다뜨거운 물줄기가 몸에 닿고그녀가 새로 산 듯한 커다란 비누로 온몸을 칠하고나니어쨌든 씻는 일은 기분을 나아지게 한다고 느낀다수건으로 커다란 몸을 닦고 나니 그녀가 나와 남은 물기를 닦아주려한다-실은 그러면서 안기려는 시도인 줄 알면서 그는 그녀가 하는 대로 내버려두기로 한다그렇게 그녀와 밀착하여 눕자 마자눈꺼풀이 무거워진다그녀가 맥주를 따준다과자를 씹으며 그는 깨있으려 안간힘을 한다그녀가 점점 밑으로 내려간다그리고 기분이 좋아진다진심으로 이 순간이 가장 그에겐 느끼고픈 시간이다이대로 잠들면 모든 것이 괜찮아질것만 같은 생각이 들 찰나그는 정신을 차려야 한다는 의무감 같은 것으로 그녀를 끌어 올려 안아준다그리고 그녀가 발음을 뭉게고 끝을 올려가며 물어대는 질문에다시금 일 생각에 사로잡히고 만다바로 그녀의 집까지 오며 머리 속에 맴돌았던 생각들이제자리에서 동시에 일어나 그를 조정하기 시작한다-하고 잠시 스트레스 속에 잠긴 그는 맥주 한 모금을 마신 뒤 지긋이 눈을 감는다이 기분도 잠시곧 움직여야만 한다는 것을 생각한다전화기를 살핀다그리고 잠시 종알대는 그녀를 토닥여준 후그 자세 그대로 멈춘다언제나 일정에 좇기는 삶에 대해 피곤함을 느낀다. 일은 대체로 삶을 구성하며 사회적 안정을 주지만 결코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이 벅차게 느껴질 때가 있는 것이다그녀의 집에 와서까지도 그는 이런 생각에 사로잡히는 듯 하다. 자, 그러니 이제 일어날 때가 온 것이다오늘은 여기까지갈께라고 말하자 그녀는 잠옷을 걸친 채-혹은 나체로마중을 나오겠다며 또 종종댄다그대로 둔다-혹은 거절하거나 허락한다. 시동을 걸고 빠져나오며 그녀의 상이 멀어질때까지 차창밖으로 손을 흔들어준다골목을 꺾어 나오면서 다음 일정을 생각한다그녀가 울며 잠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어렴풋한 바램을 뒤로 한 채. 오늘따라 운전이 신경쓰인다앞차의 운전이 맘에 들지 않는다. 그러나 어쩔 수 없다. 차선을 바꿀수도 없게 오늘따라 교통체증이 심하다. 담배를 하나 물고는 창문을 내린다. 습하고 조금은 더운 여름공기가 불어들어오지만, 낮보다는 한결 낫다 싶어진다. 그냥 이대로 이 연기처럼... 하는 느낌이 드는 찰나, 신호가 바뀐다. 그와 동시에 전화가 걸려온다. 이젠 어떤 이변도 일어나지 않은 채 모든 것이 늘 계획한 대로 일어날 것이다. 변화가 있는 건, 일의 틀어짐 뿐이다. 그것은 조금도 설레는 종류의 변화가 아니다.. 그건 그에게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변화이다. 불안한 변화가 아닌, 설레는 변화. 설레는 변동. 그런것을 느껴보고 싶다. 그는 잠시 원인모를 까마득한 불안함을 느낀다. 아무것도 변화하지 않는 가운데, 엄습한 짜증스러운 이 어찌할 수 없는 기분은 대체 뭐란 말인가. 나란 사람은 왜, 여기에 있는 걸까. 나는 지금 무엇을 하는 것일까. 살고자 걸어온, 묵묵히 지나온 굴곡들이, 이제와 유난스럽지도 않는 그 두터운 삶의 마디마디들이 지금의 이 불안함을 잠재우지 못하는 까닭은 무얼까. 그는 잠시 고통속에 잠긴다. 


2. 




 

 

 

 

 

 

 

 

 

 

'그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니야 오빠야  (0) 2019.10.05
심보선 <내가 누군가를 죽여야 한다면>  (0) 2019.06.23
우리는 행복할 수 있을까? ....(진행중)  (0) 2017.08.03
기억  (0) 2017.06.22
장미빛 인생  (0) 2015.1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