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 이야기

혼자서... 그 무엇보다 간절한 것

misfortune4 2020. 12. 18. 10:27

웃을 일은 고양이 밖에 없다.

허당 백치미 니니가 사냥놀이 하다 나자빠져 몸이 반으로 접힌 채 나뒹굴 떄

먹는게 급한 단비가 싱크대 오르다 걸쳐놓은 수건에 발이 미끄러져 도로 내려가 태연한 척 등을 그루밍할때

바닥에 대고 사냥감을 일직선으로 쓸어나갈 때만 미친듯이 돌진하는 먼로는 사냥감이 구석에 사라져도 혼자 끝에서 끝으로 우어어어어어 하며 달리기 일쑤다. 다리가 불편한 먼로의 엉거주춤뛰는 엉덩이를 보노라면 너무 귀엽고 안쓰럽다.

단비형아한테 대들어 혼낼 때 단밤이~! 하면 입을 가볍게 떨면서 눈을 지그시 감았다 뜨며 냐아아아 하고 대답하는 사고뭉치 막내 단밤이. 털을 빗어줄때 몸을 뒤집어까고는 내 팔에 꾹꾹이를 하며 골골송을 드럼통처럼 울려댄다.

 

김포에 이사와서 유독 심해진 게 있다면

집이 너무 좋다는 것이다.

정말로 집밖을 나가고 싶지가 않고 아이들과 종일 뒹구는게 너무 행복하다.

그게 환경탓인지, 내 나이가 든 탓인지, 정신과 약을 바꾼탓인지 잘 모르겠다. 

그와 함께 온 것은 출근과 일이 진심으로 뼛속 깊숙히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내 온몸이 거부하고 있다. 누군가에게 진심으로 내 삶을 바치고 싶지가 않다. 적당한 대우를 못받은지 너무 오랜 기간이 흘러, 노동이 착취당할대로 당했다고 몸이 느끼는 것인지. 

여튼 회사 일에 대해, 그곳에 추위를 참고 길고 긴 길을 지나 불편한 타인과의 접촉이 필수인 지하철을 참아내며 간다는 게 견딜 수 없을만큼의 싫은 일이 되어버렸다. 

진심으로 일하고 싶지 않다. 

내가 살면서 이토록 일하고 싶지 않았던 적이 또 있었을까.

나는 워커홀릭처럼 일만하던 사람이었다. 

지금은 회사에서 마주치는 모든 사람들이 버겁고 목소리도 듣기 싫고 무언가 나에게 요구하는 것 자체가 극심한 불쾌감을 주며,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고 다가오는 사람조차 부담스럽다. 

 

나는 왜 올해들어 급격히 이런 증상이 생긴 것일까.

 

하루종일 집에서 커피와 와인을 마시며 고양이와 뒹굴대며 샹송을 듣고 좋아하는 책을 읽고 글을 끄적대며 살고 싶다. 

나는 이런 삶을 정말이지 단 한번도 그리워한 적도 부러워한 적도 없다. 나와는 상관없는 삶이라고 생각했고, 그건 따분한 느낌으로 다가왔었다. 하지만 지금은 긴장하고, 쫓기듯 다다다다다 일하고, 쌓아두는 일 자체를 견디지 못해 다 해버리고, 늘 주변사람 신경쓰고, 공적으로 지내야하는 모든 것들이 진심으로 따분하게 느껴진다. 어떻게 사람에게 이런 변화가 1년안에 찾아올 수 있을까. 서서히 일어났던 일일까? 나조차 알지 못하게. 그저 내 스스로 갑자기 깨달은 시점이 늦어버린 것일까.

 

 

온몸이 거부하고 있는 이 출근과 일을 그나마 견디는 방법은 직원들에게 휴가를 주는 일이었다. 

코로나여파로 일이 줄자 나는 금요일마다 직원들에게 재택을 시키고, 나 혼자 출근을 했다. 

옆에 엄격한 감시자처럼 느껴지는 아줌마 직원도 없고(뭔가 존재만으로 나를 압박하는. 아침댓바람부터 너무 일찍나와 일만하시는 덕분에 나는 8시에 출근을 하고 있다. 물론 성품은 좋은 분이지만, 지나치게 성실하고 완벽적이다)

일을 지루해해서 눈치를 봐야하는(뭔가 즐겁게 해줘야할것만 같은) 어린 직원도 없다.

 

그것이 이토록 나를 편안하게 한다. 아침에 나와도 누구의 눈치도 안보고 커피를 마시고 일도 긴장감없이 할 수 있다. 

 

내가 좋은 사람들한테도 스트레스를 받는 수준에 이르렀다니, 나는 그냥 사람 자체를 견디기 어려워진것이 틀림없다. 나는 나약해진건가? 약을 다시 바꿔야 하나.

 

하이톤으로 거칠게 다니는 사람들을 견딜수가 없다. 그건 내 40평생에 거쳐 온몸으로 거부한 일이었다. 말투가 공격적이고, 뭔가 다급하고, 방어적이고, 자신의 무게나 자신의 일과 걱정을 남에게 밀어내듯 굴고, 뭔가 퍼붓듯이 불평하고.... 그 사람들이 나쁜 사람들이지는 않겠지만 정말 나와는 맞지가 않다. 존재자체가 부담스럽다. 

 

나는 내면이 고요한 사람을 사랑한다. 고양이의 내면은 고요하다. 

급격히 안좋은 시간을 오래도록 보냈고, 여러 질병으로 시달렸지만

나는 원래 고요한 사람이었다.

 

매우 급하고, 다혈질에 화도 잘내고 울기도 잘하고, 불평도 많았던 지난 내 모습이 있다.

 

나조차 보고 싶지 않은 나의 과거. 물론 지금도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 어떤 상황에 마주치느냐에 따라 나는 많이 바뀐다.

 

나를 자극하지 않는 환경속에서 나를 보호하고 싶은 것 같다.

그래서 새벽, 추위, 앞만보고 걷고 남을 치고 걷는 부글부글 출근길, 퇴근길, 서로를 감시하는 직장. 서로가 힘이되기 보다 부담이 되는 직장. 노력해도 터무니없는 월급. 언제짤릴지 모르는 불안. 시끄럽고 예의없는 학생들. 떼로 몰려다니면 뭐라도 된줄 아는 듯 시끄러워지는 사람들. 어디서곤 아무렇게나 시끄럽게 통화하며 낄낄대는 게 밝은 줄 아는 사람들

 

그 모든 환경에서 

나를 보호하고 싶어진 것 같다.

나의 고요를 깨는 그런것들로부터 나를 지키는 내면의 힘을 키우지 못해

안으로 안으로 파고들어, 나는 현재 아주 작아진 채 슬프고 우울해졌다.

무엇보다 나는 오랜기간 평온함과는 먼 삶을 살았고, 5년넘게 야근에 술에 돈문제에 시달렸고, 사랑에 너무 오래 아팠고, 불안하고 힘들었고, 이제 그 고통을 느끼는 것에 대한 번아웃이 온 것 같다. 

 

고양이는 나에게 좋은 것 행복한것 평온한 것이 어떤것인지 그들의 몸과 존재자체로 알게 모르게 나에게 전달해주었던 것 같다. 

 

나는 나를 보호하고 싶어졌다.

처음으로 나는 나를 보호하고 싶어졌다.

우기고 소리지르고 변명하고 싸우는 거 말고,

조용히 그저 나를 감싸주고 싶다. 아무런 평가없이... 몸을 동그렇게 말고 동그란 침대에 몸을 만 고양이처럼

나는 몸을 말고 내 아지트에서 누구의 방해도 없이 쉬고싶다.

 

돈은 필요하다. 그것이 이렇게 고통속에 벌어야한다는 것이 서글프다.

 

쉬고 싶다. 누구도 없는 곳에서 나혼자 고요히 고양이들과 내 내면과 보내고 싶다.

내 내면의 원성을 다시 살리고 싶다.

내가 누구였는지 다시 알고 싶다.

나를 찾고 싶다

나를 다 잃어버려도 무언가 의미있는 것을 좇고 싶었고 그걸 찾으면 좋다고 생각했던 오랜 십여년의 젊은 시절의 헛바람, 헛물, 

나는 왜 이렇게 바보같이 한심하게 살수밖에 없었을까

 

나는 바뀔수있을까

나는 바꿀수있을까

나는 다시 찾을 수 있을까. 나를. 나다움을.

돌아가고 싶다. 내 원래 있던 곳으로. 

 

그곳이 무덤이어도 좋겠다. 조용히 몸을 말고 눈을 감고 싶다. 

 

나를 만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