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 이야기

드라마 이야기

misfortune4 2022. 5. 16. 00:03

 

 

사실 오랜 기간 TV를 보지 않았고

나는 다큐멘터리영화제기간에 놓친 영화를 보기위해

EBS를 키는게 전부였던

2-30대를 보냈다.

 

이젠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도 영화제도 어느 회고전도 어떤 상영시설도

가지못한다.

나에게 집에서 보는 영화는 의미가 없다.

전에도 글을 쓰기 위해 집에서 다운받은 영화나 DVD를 보았지만

그건 참조하기 위한, 씨네필에 밀리지 않기위해 악을 쓰던 그런 것이었지 내 온전한 경험은 아니었다. 

내가 처음 만난 영화가 그런 방식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영화는 어두운 곳에 모르는 사람들과 앉아

모두 다른 반응을 하는 걸 불편해도 하고 즐거워도 하며

나만의 무언가를 공공적으로 고독하게 하는 그런 장소와 관련된 곳이었다.

컴퓨터가 없었던 나는 늘 영화를 본 밤

담배연기로 꽉찬 피씨방에서 글로 풀어내고는

막차나 첫차를 타고 집에 갔다

그 생활을 꽤 오랜 기간 했다

영화를 본다는 건 가난했던 시절(지금도 그렇지만),  집이 멀던 시절(지금도 그렇지만), 하지만 그런 것이 크게 지장이 없던 시절과 관련이 깊었고, 언제나 틀면 뭔가가 나오던 시절과는 꽤 거리가 멀다.

 

이제는 뭔가를 틀면 나오는 집에만 있다보니

영화보다는 드라마를 보게 되는데

너무 유치해도 그냥 무료함을 달래기위해, 책을 읽기 싫고 음악도 뭐도 다 듣기 싫은 

지리멸렬함을 이기기 위해, 

고양이 낚시대 흔드는 게 너무 재미없어서 뭔가 집중할 거리를 찾기 위해

이도 저도 아니면 그냥 웃고 싶어서

본다

 

부모님과 사이가 조금이라도 진전되고 싶어서

엄마가 보는 막장드라마를 보며 이야깃거리를 만들어서 주말마다 가 떠들어댄 적도 많았다.

왜 그녀는 이것에 흥분하는가를 연구한적도 있었다.

어떤날은 역겨워서 꺼버리고, 블로그에 올려진 내용으로 마치 본것처럼 떠들어 대기도 했다. 

 

 

이제 난 서로간에 어떤 노력으로도 우리가 다르게 태어나 

아니 내가 그냥 당신의 뱃속에서 당신들의 결혼으로 태어나

아무 자의도 없이 그런식으로 살게 되었다는 것을

그 어떤 후천적인 노력으로 극복할 수 없다는 걸 느낀다. 

 

그게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는 더 이상 그녀와 그리고 그와 그들의 딸과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노력하고 싶지 않다.

 

나는 오랜기간 마음과 달리 너무 착한 딸이 되고 싶었나보다

어려서 쳐맞고도, 나는 엄마에게 꽃을 사갔다.

엄마가 나에게 미안해할까봐 무서워서.

엄마가 나에게 사과할까봐 언제나 무서웠다.

하지만 그것은 기우였다.

그녀는 그 꽃으로 나를 때렸다. 누가 이런걸 사오랬냐면서.

 

나는 더 이상 어버이날에도 카네이션을 사지 않는다.

 

왠지 더 이상 

나는

그들에게 아무것도 더는 줄게 없고

그들에게로부터 더는 아무것도 받을게 없다고 결정된듯한 느낌을 갖는다.

 

나는 우리 인연이 이제 끝나야 한다고도 느낀다.

 

더 이어진다면 그럴수도 있겠지만

그건 너무나 불필요한 감정같은 것이라고 느낀다.

우리는 서로 조금도 사랑하지도 인정하지도 따듯하지도 않다

우리는 그냥 인내하는 것만 남았다

그것을 관계라고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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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혜 작가에 허진호 감독에 전도연 주연이라니

'인간실격'같은 경우는 정말 방영을 기다리며 봤다.

매일 밤 몇번을 다시보기를 하며

오래 말라온 눈물 콧물을 다 쏟아내며

보고 또 보았다

그 드라마가 왜 그렇게 좋았을까

어두웠고, 외로웠는데, 따뜻했다 근원적으로 사람을 따뜻하게 바라보았다.

그 카메라를 든 사람은

그 말들을 쓰고 그 인물들을 들여다본 사람은

따뜻한 사람이었고 속깊은 사람이었다

허투루 나와서 헛소리를 하다 의미없이 사라지는 사람은

아무리 단역이어도 한 사람도 없었고

의미없이 사라지는 텍스트도 없었고

함부로 보여주는 장면같은 것도 없었다

 

혼자 웅크린 사람들

쓸쓸한 사람들

그리고 그들을 위로하는 어떤 것들

그것이 남들이 보기엔 어떨지 몰라도

그들에게는 절박했던 것 필요했던 것

 

도덕과 윤리를 상충시키는 것들

 

나는 그 지점들이 좋았던 것 같다.

 

그들은 충분히 윤리적이었다.

한순간도 그것을 배반하지는 않았다.

충실했다고도 볼 수 있다.

 

'나의 해방일지'라는 드라마는

작가도 감독도 모른 채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 보게 되었다. 

 

인물들은 햇살이 빛나는 여름

파란 하늘  흰 구름 푸른 나무 숲에 쌓인 시골마을 한가운데 산다

 

그들은 늘 함께 밥을 먹고

자식 3명은 지하철을 타고 서울로 출근을 하고

어머니 아버지는 농삿일과 목공일을 하고

정체모를 한 남자가 아무렇지도 않게 그 집에 섞여 밥을 먹고 일을 한다

 

그 남자는 밤이고 낮이고 일이 없을 때면 늘 검은 비닐봉지에 소주 두병을 사서 들고 온다.

달그락 달그락 부시럭 부시럭.

그는 그 길에서 가끔 막내 딸을 만나는데

그들의 동선은 가까워질듯 가까워지지 않는다

 

 

 

 

 

 

----------그냥 보세요 제발 보세요--------------

----------다시보기로 보세요 제발 처음부터 다시 두번씩 보세요----------------

 

 

 

오늘 나는 너무 가슴이 아팠다

 

이 드라마도 허투루 나오는 인간은 없다

유쾌하고 재밌는 터치도 많고

기정이도 창희도 현아도 창희의 웃긴 친구들도 하다못해 오늘 나온 자동차긁힘전문 기사도

 

다 진심이다

 

그런데 이 드라마는

 

구씨(구자경)과 미정이를 어떻게 말로 할수가 없다

내 평생 이런 커플은 정말이지 본적이 없다

 

미정이는 시골여자이고 본능이 살아있지만 

너무 평범하지만 너무 살아있고

죽어사는거같지만 너무 살아있고

아무말도 없는 것 같지만 너무 강렬한 말들만 하고

있는듯없는듯하지만 너무 있고

얌전한듯하지만 너무 강렬하다

 

구씨는

어려서부터 밤일을 해왔을 구씨는

어둠의 세계를 씹어먹을만큼 성장해왔으나

잘못내려서 오게된 염씨네 집에서

어쩌다보니 식구처럼 밥을 먹고 염씨일을 돕게된 구씨는

쎄지만 여리고

아무말이 없지만 늘 담고있고

무심한 듯 하지만 늘 예민하고

취한듯하지만 온감각이 살아있고

모든 것에 진심이면서

그것을 누가 알아주지 않는다해도 개의치 않는다

 

그런 구씨가

품고 살던 아이들이 힘들어졌다는 말에

흔들렸다

마치 허진호의 <행복>처럼

그는 갑자기 미정이의 추앙과 해방이 부담스러워졌다

원래 내 모습도 괜찮았던것만 같다

 

 

이 드라마는 처음부터 도시의 비둘기, 들의 개들을 유심히 보여주곤한다

동물적인 것들을 유심히 본다

어울리지 않는 곳에 있는 동물들.

그들의 행태를 관찰한다

길에서 죽거나 

들에서 잡혀가거나

할 운명에 처한 

잘못내린 동물들의 운명

 

어느 곳이 잘못된 곳일까

인간일까

인간이 만든 환경일까

그곳에 그냥 태어나고 버려진 동물들일까

 

 

벅차고 벅차서

 

너도 그냥 평범하게 살아 라는 말 한마디로

미정이를 내치기에

너무 나약한 메세지

나는 그냥 이렇게 살꺼야

라는 말이 더 강렬하게 남는 

 

구씨의 마음도 그러지 않을까

 

나를 버린 모든 남자들을 저주하고

 

내가 지겹다고 한 모든 남자들을 저주했지만

 

당신만은 영원히 매일먹는 술에도 속도 편안하라고

빌어준다는 그녀

 

그와 잠시나마 행복했던 그의 어둔 집에서 혼자 달을 보며 울던 그녀의 처연한 모습

구씨 앞에서 그 의기양양하던 자존심 세우던 모습은 어디로 가고...

 

 

다시 세속의 세계로 돌아간 구씨

손하나 까딱안했는데

 

알아서 죽어주는 눈의 가시

 

이제 승승장구할일만 남았는데

 

 

그는 망가질 것이 분명해 보였다.

 

이 남자가 나른하게 주절대다가

 

갑자기 누군가를 불러세울때 그 날카로운 목소리

정말이지 귀에다 때려박을것만 같은 그 호통스런 소리

 

살고 싶다는 소리

아니 살겠다는 소리

아니 이렇게 그 바닥에서부터 살아왔다는 소리

 

 

나 무서운 놈이야 라며 실실웃던 구씨의 다정한 모습을 

더이상 불수없다는 것이

염소를 키우지 잡아먹냐며 눈을 찌푸리던 모습을

미정이 무슨 말을 해도 보조개를 피어가며 들어주던 모습을

더 볼수없다는 것이 가슴아프지만

 

 

미정이는 구씨를 기다릴꺼고

구씨는

 

미정이를

 

어떻게든

 

무엇이든

 

그 문제를 다시 한번은 돌아볼꺼야

 

그들은 아직 젊으니까 그들은 살날이 더 많으니까

그들은 그러기엔 아직 너무 살아있으니까 펄떡이니까

 

우리 아니 그냥 대부분의 평범하고 늙은 인간들이

대충 뭉게고 

아니 실망한 일에 대해 다시 기대하지 않는 관성에 젖을때

 

너희들은

다시 살아서

그래도 무언가를 해주기를

 

우리는 이렇게 살았지만

 

너희는 그렇게 살지 말기를

 

 

 

제발 다른 선택을 해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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