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 이야기

나와 닮은 사람

misfortune4 2022. 7. 21. 04:19

나는 모든 사람이 죽지 않고 반드시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죽음은 자신의 삶과의 단절이자 삶이 맺어주는 관계의 단절이다. 죽음은 내가 살면서 접촉하는 모든 것으로부터 나를 분리시킨다. 나는 자신이 태어나는 것을 선택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죽음 또한 스스로 결정할 수 없다는 것에 의문을 품고 있다. 하지만 나의 이런 생각을 사람들에게 주장할 생각은 없다. 
 
사는 동안에 단 한 번도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매일 죽음을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는 매일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이다. 나는 행복하게 죽고 싶다. 행복하게 죽고 싶어서 매일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 내가 더 이상 살아가지 않기로 숙고하여 신념을 가지고 결정했을 때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죽을 수 있는지 매일 상상한다.
지금 당장 나에게 안전하고 행복하게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방편이 있다면 좋을 것이다. 그러면 더 이상 죽음을 생각하지 않을 텐데. 안심하고 살아갈 텐데. 매일 다른 내일을 만들 텐데. 매일 다른 용기를 가질 텐데. 매일 다른 사랑을 낳을 텐데. 
 
세상이 내게 가져다주는 여러 문제들에 맞서 살아간다 한들 그 끝에서 맞닥뜨리는 죽음이 비극이라고 생각하면 서서히 병들어가는 마음을 무엇으로 위로해야 할지 모르겠다.  나는 내게 마련된 건강한 죽음을 갖고 싶다. 다시는 죽는 것에 실패하고 싶지 않다. 서서히 나를 죽이는 것도 그만하고 싶다.  
 
자살하지 않고 살아가기로 한 사람들은 대신 천천히 자신을 죽인다. 병이 나도 돌보지 않고 최소한만 먹으면서 주어진 일을 무감하게 해내고 무엇과도 관계를 맺지 않는다.  
 
'지금 죽는 것'에 실패한 나는 대신에 '언제든 사는 일을 그만해도 좋다고 생각하는 것'을 삶의 동력으로 삼았다. 언제든 그만 살면 되니까. 생각하면 희한하게 조금 더 살 수 있었다. 정말로 그만 살면 된다고 생각하기 전까지는. 
....... 
 
 
삶이 내게 어떤 모습이어야만 계속해서 살고 싶은 마음이 들 거라는 뜻은 아니다. 삶에 대해 바라는 뚜렷한 것은 없다. 다만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타인의 삶에 구애받지 않고 살고 싶은 욕망은 매우 강하다. 그리고 어느날 갑자기 태어나서 살고 있자니 그에 알맞을 정도로만 언제든 갑자기 그만 살아도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뿐이다. 갑자기 태어난 것과 갑자기 죽는 것의 균형을 맞춘다랄지. 다만 전과 다른 것이 있다면 지금은 혼자 살고 있지 않다는  것. 전에는 항상 고양이 생각을 했다. 고양이를 집에 혼자 두고 죽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  
 
소박하고 작은 삶에 감사하자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런 깨달음이 너무 많아서 하는 얘긴데 다 웃기는 소리다. 사랑하거나 돈이 많은 사람은 어쩌면 사랑이나 돈에 대해 조금 알게 될수도 있다. 하지만 구경꾼은 어렴풋이 느낄 수 있을 뿐이다. 그러니까 주제에대해 깨닫는 사람은 늘 관객이다. 
 
... 
 
그러나 삶은 우선 살아가는 것이다. 그 전에 제발 좀 그만 깨달았으면. 가만 보고 있으면 그들은 무엇이든 깨닫느라 정작 자기 삶을 살 시간이 없어 보인다. 잘 모르면서 왜 지껄이냐고? 깨달음은 삶을 더욱 풍성하게 해준다고? 네. 알겠습니다.  
 
 
유진목 <산책과 연애>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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