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 이야기

가위눌리는 날

misfortune4 2022. 8. 5. 10:08

가위눌리는 날은 무섭다.

내가 보고 기억한 이미지가 꿈 바깥의 소리와 겹쳐진다.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상황이란 것은 없다.

 

꿈속에서 계속해서 신경을 거슬리는 소리가 반복적으로 울렸고,

내가 처한 상황에서 모든 살아있는 것을 죽였는데도

계속해서 소리는 옮겨다녔다.

살아있지 않은 것도 움직이는 것이 있었다 예를 들면

바람에 움직이는 막대기

시계추

전기밥솥의 칙칙대는 소리

다리미의 딱딱소리

망가져서 굴러다니는 철조각들

샤워기에서 떨어지는 물방울들

나는 계속해서 움직이는 무생물들을 못움직이게 만들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최후 수단으로 두꺼비집을 내리자 일순간 조용해졌다

안도의 한숨을 쉬자마자

다시 스물스물 소리가 들렸다

밥솥을 열어보니 구더기들이 들끓고 있었다

나는 구더기를 죽이기도 전에 그들에 의해 잠식당했고

공포감에 소리를 지르며 꿈에서 깨었다.

내 소리에 놀랐는지 고양이들이 내 곁에서 겁에 질린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고

그제서야 내 핸드폰에서 알림이 몇십분째 울리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온몸이 땀에 젖었고, 머리가 지끈거렸다.

 

내 의지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걸 인지할 때 엄습하는 공포

사람들과 멀리 떨어진 채 혼자 물에 빠졌을 때

다리가 꺾여 계단에서 굴러떨어질 때

말이 더듬어 질거라는 불안감이 엄습했는데, 이미 첫 단어를 꺼내고야 말았을 때

술에 취한 느낌에 이제 그만마셔야지 하는 생각과 달리 이미 감정이 일렁거려 울고 있을 때

사랑하면 안되는 사람이니까 이제 그만 두어야지 하면서 이미 그 사람을 안고 있을 때

누군가를 그만 미워해야지 하면서도 돌아서서 머리통에 칼을 꽂는 상상을 구체적으로 하고 있을 때

 

.

 

 

 

 

 

 

'그녀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살의  (0) 2022.08.25
늦여름에  (0) 2022.08.21
.  (0) 2022.07.27
나와 닮은 사람  (0) 2022.07.21
너무 예쁜 Breea Guttery의 목소리 (커버가수)  (0) 2022.07.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