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 이야기

늦여름에

misfortune4 2022. 8. 21. 17:56

 

퇴근길 과일가게에서 산 자두 한개를 베어물자,
알알이 터지는 과즙과 신맛에
여름의 기억이 떠올랐다.


어린시절, 청소년시절, 20대시절의 여름추억은 거의 교회에서의 것이다.
가족이 함께 갔어도 결국은 교회사람들과, 교회의 프로그램과 함께한 것이다.
계곡의 찬물에 수박이며 자두며 담가놓고, 실컷 물놀이를 마치고 오면
부모들이나 선생들은 시원해진 과일을 꺼내어 주었다.
그 상큼하고 시원한 첫맛이란 잊을 수 없는 것이다.
뜨겁고 더운 날에도 수풀이 우거진 계곡 밑 찬물에서 놀고 과일을 먹으면 너무나 시원했다.


바다 수영도 하고 싶고
계곡의 차가운 물에 세수도 하고 발목도 담그고 싶다

 

오빠와의 추억이 있다.

교회의 추억말고는 오직 그것 뿐이다.

나를 데리고 참 많은 곳을 가주었다.

그는 물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더운 여름 정상을 찍고 내려와 얼음장같이 차가운 계곡물에 손을 넣었을 때

나는 감격에 차올랐다. 그의 얼굴을 보자 활짝 웃고 있었다. 

땀을 닦으며 행복해하던 우리. 그의 얼굴. 

 

바다에 가서 함께 바다수영을 즐긴 우리

그는 바다에서 너무 행복해보였다

물과 함께하는 그는 너무도 자연스럽고 편안했다.

 

 이제 난 혼자야
 혼자하면 되잖아
 혼밥처럼

 

 


나는 더 이상 경험이 필요한 사람이 아니다
경험은 꿈과 관련이 있다
나에게 이미 꿈은 행복과 크게 관련이 없어졌다. 


신해철이 말했다
신은 우리가 꿈을 이뤘는지 크게 관심이 없지만, 행복한지에 대해서는 무지하게 관심이 많다고.


나를 오류의 지점으로 되돌려놓는 말이었다.
정말 신이 그렇다면
왜 그 수많은 여름추억을 선사해준 교회에서는
알려주지 않았던 것일까
교회는 왜 나에게 행복하라고 말하지 않았던 걸까


교회는 왜 꿈과 소망과 헌신과 타인에 대한 사랑을 명했던걸까
그것에 진정한 의미가 있다며
그토록 삶의 "의미"를 강조해댄 것일까
내가 종교의 모순을 안건 20대 후반의 일이었다.
그때부터 내가 가장 먼저 버린 것은
교회에서의 "의미"였다.


당장 반대로 행동한다고 해서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었다.
15년정도 지난 지금 그러면 행복해졌어야 하는데
나는 신념의 인간으로 살아온 긴 어린 시절과 20대 시절에서부터
죄책감에 시달려야만 했다
가장 큰 형벌은 죄책감이다
그것은 사람을 완전히 망가뜨린다-자학의 길로.
신해철은 어떤 행복을 찾았던 것일까
그래서 죽는 날까지 행복할 수 있었을까
그만큼의 시간의 그의 행복시간이었다면
그의 죽음이 안타깝게 느껴지진 않는다
(우린 목숨만 부지한 수많은 보지않아도 되는 노인들을 너무 많이 보고 산다)


행복은
주로
유년시절
불우했어도 파편으로 존재하는 행복이미지 기억이
하나쯤은 있으니까
행복은 굉장히 즉각적인 감각들과 연관이 있다는 생각을 했다
부정적이고 구체적인 사건과 논리들이 휘발되고도 남아있는
강력하게 나에게 부착된 물질같은 거
.

 

 

 


참 이상한 일이다
청소년기에서부터 청년기엔 꿈과 이상과 신념을 찾는데
그 당시는 그 시간을 어서 벗어나고 싶을 정도로
괴로움과 고민과 어설픈 열기와 설익은 신념과 지나칠정도로 나를 옭아매려는 데에만 관심이 있었는데
지나고나면
청소년, 청년기에 행복했던 것을 찾아보면 모두 친구들, 동기들, 선후배들과 함께 어울렸던 기억들이다. 


교회에서 여름행사를 하니까
계곡엘 가고 바다엘 갔고
그게 불우했던 가족속에 살았던 내게 유일한 기쁨이었는데,
결국 오랜 기간 교회에 다닌 후 남은 것은
어떤 신념도 전도도 신앙도 아닌
함께한 사람들과 추억과 기억들 뿐이다
그곳은 꼭 교회가 아니어도 족했을 것이다
그곳이 설령 이단종교단체였다도
공동체원이 함께 즐길 수 있었다면 행복으로 기억되지 않았을까


그 외에 단 하나가 있다면, 그것은 예외적으로
새벽에 홀로 기도하던 기도공간이다
푸른빛의 십자가와 나만이 존재했던 그 신비했던 치유의 공간...
그리고 
예수님은 행복했을까.
하는 질문은 남았다.


거지와 창녀와 함께 다니며
온갖 욕이란 욕은 다 먹고
이상한 주장을 펼치고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더니 
사형수들과 함께 십자가에 죽은
그러나 부활했다고 하는
그는 행복했을까
불행했을까
자신의 인생을 저주했을까
오로지 신념에 따라 산 사람도 행복할 수 있을까
어설픈 신념을 가지고 행동력도 부족한 이는 이토록 불행한데
그래서 아주 뒤늦게 행복이란 걸 찾아보려는데
그게 잘 안되고, 실은 욕망과 많이 헷갈리고 있는데
.
..
.

'그녀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안겪어도 되는 일  (0) 2022.08.26
살의  (0) 2022.08.25
가위눌리는 날  (0) 2022.08.05
.  (0) 2022.07.27
나와 닮은 사람  (0) 2022.07.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