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 이야기

감자탕

misfortune4 2023. 2. 21. 16:55

일하다 말구 오빠랑 먹은 양양 감자탕이 생각났다

아무리 찾아도 못찾다가 

여기인 게 기억이 났다

사실 메뉴판보고 기억이 났다

오빠랑 참 맛집을 많이 다녔다

모두 오빠와 에릭이 덕분이다

 

이제는 기억도 가물가물한 그집이 

왜 그리 그리웠던지

정말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감자탕집이었던 것 같다.

 

https://blog.naver.com/henyo86/221381323201

 

2002년~2003년 한 납품업체에서 일하면서 그 회사 사장(지금 회사 사장임)이 건물 1층 감자탕집에

대놓고 밥을 맥였는데

점심 저녁(야근은 필수, 12시에 사장이 봉고차로 집에 데려다줌)을 모두 그집에서 먹었어서

그 회사를나온 이후 감자탕을 먹은 기억이 거의 없는데

 

이집은 정말 오빠랑 아침에 배가 너무 고파서 눈에 보이는 집 들어가서 먹은건데

너무 맛이어서 눈물날뻔했다

 

감동....

 

음식에 감동을 받은 게 얼마나 오래된 일인지..

우울하고 입맛없을 때마다

성시경 먹을텐데 유튜브를 보곤 하는데

원래 좀 까탈스럽고 예민하고 노래도 콧소리만 나서 거의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는데

술과 음식에 진심인 걸 보고 오빠생각이 많이 났다

일 없는 날 국밥집에서 국밥에 수육에 소주한병 놓고 캬 하면서

오늘은 오랫만에 쉬니까 맛있게 먹고 낮잠자야지 하며 빙긋이 웃는

맛있는 음식 따뜻한 햇살 여유있는 시간. (아 사랑하는 사람만 없네 하며 얕은 한숨)

을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

 

오빠가 생각났다

토요일이면 낮술에 고기 먹으면서 따뜻한 시간을 보낸 많은 기억들.

이젠 방이동도 산도 에릭이도

모두 볼 수 없지만

 

 

오빠랑 처음 만났던 영동설렁탕 편을 보면서

낮에 청바지에 청셔츠 입구 소주한병 놓고 설렁탕 먹던 오빠 앞에 앉아 시니도 술한잔 달라구 했던 

때가 떠올랐다

그날 나는 연보라색 짧은 원피스를 입었는데 

신림동에서부터 어떤 남자애가 따라와서 만나달라고 해서 유부녀라고 했던 기억도 났다

밖에 나온 오빠가 이쑤시개를 물고나서 담배를 한대 피우며 하늘을 보던 모습도 생각 난다

나는 그런 오빠를 옆에서 구경했다

오빠의 행동이 느린 것이 좋았다

일하다 말고 소주먹는 것도 좋았다

낮이어서 더 좋았다

살짝 패인 이마의 주름도 좋았다

불룩한 배도 좋았다

다 너무 귀엽고 편안했다

안아보고 싶었다

 

 

안녕 오빠.

 

오빠랑 먹지 않는 음식은

그 누구와 먹어도 더이상 감동이 없어

오빠와 먹지 않는 술은

그 누구와 먹어도 더이상 짜릿하지 않아

 

나는 깊은 수렁에 빠진 채 조금씩 죽어가고 있어

회사에선 살아있는 척을 하기 위해

술과 자해로 버티고 있어

 

고양이는 옵션이야

고양이는 사람이 아니야

고양이는 살아움직이고 갸우뚱하고 파닥거리고 웅앵거리는 자동인형같아

귀여운데 사람은 아니야

나를 바꾸지 못해

조금은 나를 부드럽게 하고

조금은 나를 덜 우울하게 하지만

조금은 나를 더 지치게도 하고

조금은 내 생활을 더 피폐하게도 해

다만 죽쭉 늘어나는 몸과 귀여운 털과 고소한 핑크젤리와 찰랑대는 수염과 쫑긋한 채 안테나처럼 움직이는 두 귀와 새까만 눈동자와 시옷자 입과 분홍코와 냥냥대는 목소리와 꿍실대는 엉덩이와 바짝세운 꼬리가 상당히 귀여워서

관찰하다보면 웃음이 지어져

 

그런데 나는  조금 많이 지친것 같아

집에 들어와 아무것도 안하고 쉬고 싶은데

단 하루도 그러질 못해

고양이 똥은 넘쳐나고 물그릇은 엎어져있고 아이들은 밥을 달라고 울고 먹고나면 낚시놀이하자고 우니까.

 

하루만 어디로 도망가서 아무것도 안하고 쉬고 싶어

그런데 그럴수가 없어

사람이랑 꼭 안고 하루만 자보고 싶어

그런데 그럴수 없어

 

술없이 하루만 자보고 싶어

그런데 그럴 수없어

 

나를 미워하지 않고 견뎌보고 싶어

그런데 그럴수없어

 

인내없이도 살아졌으면 좋겠어

하지만 매순간 참는일뿐이야

 

자연스럽게 살아가고 싶어

욕망없이 살아가고 싶어

있으면 있는대로 없으면 없는대로

하지만 나는 그러질 못해

그래서 아무것에도 감동하지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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