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 이야기

조금은 편한 마음으로.

misfortune4 2016. 11. 16. 19:33



햇빛에 비친 아침낙엽이 너무 찬란해서 꼭 봄같았다.

걸어오는 밤길, 짓이겨지는 낙엽짓물의 향이 온갖 추한 냄새를 풍기는 인간의 잡냄새를 지웠다. 

열심히 낙엽을 밟았다 밟으면 밟은수록 오빠를 향해 가던 길고 길었던 길들이 생각난다.

꼭 이맘때쯤이었다.

주말에도 일해야한다며 섹스를 마치고 다시 회사로 나간 오빠를 만나기 위해

길고 긴 길을 걸었다. 끝도 없이 펼쳐진 낙엽길... 추워진 날씨. 얇은 자켓하나로 버티긴 참 어려웠지만

노래+낙엽+오빠 만을 생각하며 걸었다. 오직 내옆을 부드럽고 빠르게 지나가는 자동차들만이 따뜻하고 안전해보이는 

걷는 이는 없는 그런 길들을 나는 회사가 보일때까지 걷고 또 걸었다.

방이동을 지나 올림픽공원길을 지나 문정동에 가까워올때까지 나는 

두렵고 춥고 외롭다는 생각을 내것으로 만들지는 않았다. 

그냥 객관적인 것들만 인지했다. 견딜꺼야. 라고 생각했다. 

곧 만날꺼고. 안두려울꺼고. 오빠차는 따뜻할꺼고. 오빠가 오느라 고생했다면 날 안아줄꺼니까.

난 지금 괜찮아.

어둑한 저녁 아무도 걷지 않는 넓은 도로 옆 작은 쪽길을 걸어도

나는 괜찮았다.

물론 나는 지금도 괜찮다.

오빠를 못만나고 오빠가 안아주지도 않지만

오빠가 어디서 무얼하는지 알고 있고

나를 아주 미워해서 밀어내던 시간을 이제는 조금 지났고

적당한 거리에서 오빠가 열심히 살고 있다는 걸 아는 이상

나는 이제 너무 많이 흔들리지는 않는 것 같다.

다시는 그가 나를 안아주지 않는다고 해도

지금은 괜찮을 것만 같다.


섹스라는게 꼭 안해도 된다는건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내 몸이 기억하는 가치이다.


성욕이 치달을떄는

내 배란기 상태가 안좋거나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을 때이다.


그럴때는

아직도 그 순간들이 나의 이성을 완전히 빼앗고 감정의 제어를 못하도록 끊임없이 괴롭힌다.

나는 여전히 그것들에 지배당하고 있다.


그래도 한달에 반.. 2주일은 괜찮다. 

그게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모르겠다.

한달 내내 울고 괴롭던 그런 날도 있었기 때문에

나는 이정도로 내가 완화된 것에

큰 감사를 느낀다.


여전히 문제들은 남아있고, 나는 시달린다.

그런데 덜 불안하다.


겨울이 오면 괴롭기만 헀는데

이젠 겨울이 오고 추워지면 따뜻했던 기억을 더 많이 떠올린다.

난로에 손을 쬘 수 있는 계절이 있다는 게

얼마나 축복인걸까.


따뜻함을 아는 계절이니까....


늦가을의 쌀쌀함 속에

한달간 끊은 담배를 다시 쥐어본다.


역시 마음이 통채로 아파오다 다시 정리가 되어 연기로 뿜어져나간다.

역시 다시 피길 잘했다는 생각을 한다.


남자들이 욕을 하고 침을 끓어오르게 뱉고 사라진다.

남학생들은 왜 이런식으로 떼거지로 몰려다니며 몰지각한 방식으로 더럽게 담배를 필까.


우아하게 우리처럼 나랑 오빠처럼. 아름답게 필순 없는건지.

무언가 받아들이는 것처럼 말야.


나 받아들일꺼야... 이 모든 걸 다... 부정하지 않을꺼야.

나를 처절하고 외롭게 만들지도 않을꺼야.

그렇게 살지 않을꺼야.


사람들에게 그렇게 살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다.


만지고 싶다. 지금은 아무도 보고 싶지 않다.

혼자 있는 내 자신이 마음에 든다.


몸서리친 시간들이 한단락 지나온듯, 나를 조금 밀어내는 것만 같다.

조금 옆으로. 나와 앉아있는 듯. 

조금 비껴난듯. 아직 지나가진 않았지만 

정통으로 맞고 있진 않은 듯한 휴지기.

세상이 내 마음과도 같은건지

이상할정도로 마음대로 된것이 없었는데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또 다른 나를 자꾸 찾게 함을 느낀다.

보이지 않는 힘같은게 있을까

다만 순리라는 건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 뻔할수도 있는 게 

나에겐 힘들고 특별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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