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낀 강물에 고개를 처박고 닿을 듯이 굽어진 나무 한그루를 보았다.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서는 아니다. 다만 눈이 내린 가지가 온통 휘어져 강물에 닿을 듯 했다. 사실 원인은 굽어진 기둥에 있었다. 그런데 그것이 왠지, 삶에 굴복하는 자의 최후같이 씁쓸했다. 어떻게 보면 세상의 끝에 사람들의 모습이 저러하지 않을까 생각되었다.
내가 약을 먹고 있으면서 나아짐을 느낄 때마다, 내 손으로 죽음을 선택하는 일이 보다 용이해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로 이상한 일이다. 강력한 의지가 없이도 무언가 나아질 때, 손쉽게 무언가를 포기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것이 화학적 작용의 탓이었나. 정말 의약계는 쉽게 사람을 낫게 만들어, 무언가 더 생산적이고 창의적인 일에 신경쓰도록 사람의 삶을 돕는데, 그게, 그런 일을 할 수 없는 처지의 사람에게는 의지만 나약하게 한다는 것. 그러니 약은 어쩌면 준비된 특정 계층을 위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