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 이야기

무제2

misfortune4 2013. 2. 27. 09:36




무언가 강력히 대비되기 시작한 때가 언제 부터인지, 지나가는 것들과 박혀있는 것, 디스플레이에 씌어졌다 지워지는 글자들과 여전히 두텁게 어딘가에 박혀있는 글자. 짝을 이룬 채 목적지가 정해진 걸음을 하는 사람들과 홀로 발길이 닿는 대로 멈추어있는 사람.

흘러 다니는 모든 것들이 견디기 어려웠다고 하고 싶은데 망설여지는 이유는, 그 흘러가는 것들로부터 역방향으로 밀고 올라가는 운명적 사명감을 진 이처럼 내가 포장될까 해서이다. 나 외의 모든 것이 내가 운동하는 역방향으로 사라져가는 모습에서 일종의 시선이나 냄새, 작은 접촉 같은 게 이뤄질 때마다 좋지만은 않은 감각으로 자리 잡는데, 이것 또한 신경과민의 일종으로 물리적 치료대상으로 비춰질 수 있다(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이 모두가 내 생각에서 나온 시점이라는 것이 가공의 픽션임을 알아챌 때, 나는 아무런 쓸데가 없는 일에 메여있다는 느낌에 사로잡힌다. 수없이 반복된 일이다.

대화상대가 사라지면서 나는 일상에서 대화체로 연기를 시작했다. 사실 늘 외로워서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사람은 수도 없이 많다. 하지만 나는 내가 가공한 대상과 나누는 가상의 대화가 즐거웠다. 예전엔 어두컴컴한 예배당에서 나무십자가에 비추인 달빛의 신령한 기운과 대화를 나누었고, 그 후엔 역시 어두컴컴한 극장 안 영화 스크린과 대화를 나누었다. 물론 사람들과 대화하는 일이 이것들과 전혀 다른 차원의 일이라는 것에 대해 조금도 헷갈린 적은 없었다. 하지만 어둠 속의 대화라는 일이 일상적 대화의 가치를 점차 앗아가면서 나는 말없이 무언가를 응시하는 일에 대해 깊이 빠져들기 시작했다. 그것은 사색과는 좀 많이 다른 일이었다. 대화, 즉 커뮤니케이션의 일종인 이것은 사실 말해 응시하는 눈과 응시의 대상이 있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러한 설정 자체에 대해 나는 대화-커뮤니케이션이라고 느꼈다.

내가 하늘을 본다-하늘이 나를 내려다본다. 내가 스크린을 본다-스크린이 나를 향해 투사한다. 내가 달을 본다-달이 나를 향해 온화한 빛을 내려준다. 그러나 언제나 먼저 보는 일이 중요했다. 제대로 보지 않으면 그들도 나를 제대로 봐주지 않았다. 대체로 응시하는 대상은 나보다 거대했고, 나에 비해 훨씬 더 충만했다. 따라서 그것이 특별히 나를 보지 않는다 해도 나는 마치 그 온화하고 충만한 느낌에 휘감겨 우리가 서로 보았다고 느낄 참이었다. 하지만 설마 모두에게 그럴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것들은 온화하지만 모두에게 온화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것은 누군가에게 내려진 특별한 교감이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그 가정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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