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 이야기

주말, 월요일

misfortune4 2012. 12. 17. 10:35

그가 왔었던 주말 이틀이 지나고 남은 시간은 기꺼이 버린다. 

가끔 무언가를 해보려 하지만 늘 해오던 일에 밀려난다.

그냥 이대로 있고 싶다는 생각이 나를 기꺼이 게으름에 빠지게 만든다.


그것이 행복이든, 자유든

그것이 추동되는 심리엔 나를 그것에 얽매겠다는 의지가 있다. 


당신에게 얽매여서 행복할래, 기꺼이 내 자유의지로서 당신에게 나를 얽매일께, 같은.

당신을 사랑했으니까 이 시간들은 용서받을 수 있을거라는 낭만적인 기대도 있고.


하지만 당신은 나의 자립을 원한다.

당신이 생각하는 자립과 내가 생각하는 자립은, 아무래도 다를 수 밖에 없겠지만

당신이 원하는대로 사는 내 모습을 보고 싶기도 하다. 


내 자신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하면

나는 터널로 다시 들어가야 할 것이다.

내 어두운 부분과 다시 싸우고 그것에 대해 방관하지 않으려면

당신을 또 다시 괴롭히게 될 것 같다. 

사람들이 나를 떠나가게 할 수 있는 탁월한 기질을 가진 나는

당신에게까지 그 기질을 완전히 발휘할 자신은 없다.

이번엔 정말 잘 해보고 싶었어


선뜻 무언가를 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때가 

나와 너무 멀리있고

내 마음은 자기개발이라는 허울좋은 말에

그저그런 사람으로 살아가도록 만드는

사회속 일원이 되는 일이

나의 꿈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것이


안타깝고 답답하고 그저, 어떤 대안도 없이 박힌 문앞에 서있는 듯 하다. 


무언가를 '하는' 것이  무언가가 '되는' 것이

이토록 나에게 적응하기 힘든 일이 되었다.



레네의 기다리던 영화를 보고 이동진, 정한석의 글을 찾아 읽었다. 시네토크 현장 녹취록도 읽었다. 재미있었다. 나이가 들면 노장/말년/성숙이라는 단어의 수사학으로 영화가 말해지곤 한다. 이것을 어떤 감독이 만들었다는 사실 떄문에 채색되는 것이 있고, 나 역시 레네가 만들었다는 사실 때문에 내키지도 않는 스폰지극장에 그 추운 날 넘어져가며 간 것이니. 레네는 성공적인 삶을 산 사람이겠구나. 과거와 기억에 파묻힌 여행을 하며 자신이 본 이미지를 재생반복하며, 하나의 물질로 만들어가며. 그렇게.  


그 다음날인가  글을 써보다 말았다. 그냥 내가 잔뜩 힘을 주고 화면을 째려보기 시작했다는 것이 낯설어서 그만두었다. 이렇게 영화보기를 이젠 놓은 사람인데, 예전에 했던 방식을 답습하는 게 싫다고 생각했다. 


예전의 소재를 현대적으로 소개하고 표현하는 일은 결국 우리가 보지 못했던 시간에 대한 경험자의 여유/농락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만큼 컴플렉스를 준다. 유령의 집이 나오는 로만 폴라스키 영화처럼 시작해 알모도바르, 스페인 영화처럼 연극/영화의 액자구조를 확장시켜 넘나들다가 누벨바그 영화처럼 젊은 여성의 눈에서 읽히는 아무 의미 없이 스치는 풍경들... 결국은 그 시절 무언가를 봤던 사람들이 유령이 되어 우리는 레네의 영화를 보지만 레네가 어린시절 본 것들을 결국 보지 못했다. 그가 영화를 만들었던 이유인 것 같다. 자신이 본 것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기록하기 위해. 비밀을 간직하기 위해서. 영화란 예술을 알고 보면서부터 내가 세계사를 모르고, 그것에 대한 의식이 없고, 가치관이 무디게 살아가게 된다면 영화를 볼 필요는 없어지겠구나라고 생각했었다. 내가 그들의 비밀을 기꺼이 보고 즐기고자 했을 때에 가능한 것이다. 비밀을 아는 것이 아니라 비밀을 본다는 것이 얼만큼 은밀하고 짜릿한 유혹인지. 인생이야기가 아니라 인생을 표현하는 방식만도 아니라 어떻게보면 자신이 본 것을 표현함과 동시에 지키는, 드러냄과 동시에 대항하는. 그 팽팽한 두꼐의 면이 실상은 영상이라는 빛으로 너무나 부드럽게 스쳐가는 형식을 취하고 있을 때 잠깐 눈을 감았다가 뜬 것이지만 꿈이 이미 기억속 어딘가로 굳어져있음을 알 때 느껴지는 분리감과 그만큼 대담해지는 현실성과. 기타등등..... 자꾸 화면속을 들어갔다가 빠져나오는 인물들의 기억처럼 나 또한 그런 식의 행동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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