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 이야기

2013년 1월 22일 오후 03:59

misfortune4 2013. 1. 22. 16:01


오빠가 일기를 쓰지 않으니 나도 의욕이 없다. 너무나 여행이 가고 싶어. 아니 사실 말해, 지금 내가 처한 환경만 아니라면 어디든지 좋겠다. 나를 비롯하여 내 주변 환경 모든 것 중 단 한가지도 견디기 어렵다고 느낀다. 내가 근래 이만큼 힘든 날이 또 있었을까. 분출할 곳이 단 한 곳도 없이 할 일도 없이 그저 그렇게 앉아 컴퓨터 부품처럼 일을 처리하고 있는 내가 퇴근길에 죽는다고 한들, 길가는 비둘기가 깔려죽는 일보다 더 별날 것도 없이 사람들이 그저 쓰윽 하고 보곤 말겠지.


한줌의 의욕도 없이 회사를 다닌다는 것이 나를 지치게 한다는 건 이미 수년간 겪었는데도 불구하고 이 일을 놓지 않고 있는 이유는 다른 할 일을 찾지 못해서외에는 전혀 없다. 사람들의 발걸음에 눈이 달렸다는 것이 짜증날뿐인 회사사람들. 나름대로 각자 분주하지만 단 한마디도 나눌 이야기가 없는 그들과 내가 왜 같은 회사에 다니는지 모르겠다. 이 조직을 증오하지조차 않는다. 관여가 없는 사람이 조립부품처럼 돌아다니고 있구나 정도로. 오늘도 출근을 했구나. 아 출근을 했던가? 왔다 갔으니  일이 쌓이진 않았겠지 정도의 인지.


눈에 거슬리는 쌓인 일이 없으면 알아서 잘들하고 있겠지 정도의 인지를 가진 팀장은 일주일에 한번 얼굴보기도 어려운데, 나는 저 여자의 조직원이다. 그리고 그 조직원인 나는 팀장과 나눌말이 단 한마디도 없고, 저 여자도 나에게 물어볼 말이 단 한마디도 없다. 내 옆에 앉은 앙칼진 꼬마도, 뒤에 있는 언니들도 할 말이 없다. 눈마주칠일도 없다. 뒤통수로 듣고 귀로 감지하는 사무실 분위기는 이미 스크린에 상영되는 영화처럼 다른 매체로 감지된다. 나는 완전히 분리된 채 발만 왔다갔다 하면서 꼴에 먹을 건 다 먹고, 잠잘 건 다 자고, 꼴에 매일같이 와인이나 홀짝대며, 나와는 관련도 없는 책이나 흘끗대며 겨우 하루를 보낸다.


죽을 것 같이  뭔가 닫히는 돌문에 찡겨 사는 것 같다. 이 게으르고 나른하고 멍청하고 답답하고 무감각한 기분을 설명할 길이 없다. 

증발하고 싶다. 이 모든 것으로부터. 간절하다. 이 모든 것으로부터 떠나고 싶다. 오빠가 미친듯이 간절했던 적이 있었지만 이미 그는 그 스스로 그 간절함을 버렸다. 그도 잘 알 것이다. 당신이 그은 선 안에서 나는 자유롭지 못하다. 그 선은 나의 간절함을 식게 했다. 그 안에서 놀고 웃고 해야한다는 걸 훈련하는 일도 쉽지 않다. 하지만 이 일은 해야만 하기에 견디고 있다. 폭발하기 직전까지 견뎌야 하기에. 분출구가 필요하다. 무책임하게 이 모든 걸 떨쳐버리고 싶다는 불안한 생각이 다시 스며들어 나를 흔들면, 나는 또다시 힘든 선택의 기로에 스스로를 놓고 저울질하기 시작할 것이다. 나쁜 습관을 버리기 어렵다. 좋은 습관은 어떻게 나의 것이 될까? 나는 좋은 것을 가져본 적이 별로 없는 듯 하다. 나는 매우 열심히 노력해서 무언가를 얻어보았지만, 결국 그것을 누군가에게 쉽게 넘겨주곤 했다. 나는 왜 그것을 가지고 있지 못했을까. 나누면 배가 된다는 말을 늘 믿었지만, 나누면 가져갔다. 나에게 온 사람들은 그랬던 것 같다. 왜 나는 좋은 사람을 만나지 못했을까. 내가 그들을 피해왔을까? 그들이 더 좋은 사람을 찾아 다니느라 나 같은 사람을 피해다녔을까. 


왜 나는 이런 환경에 이렇게 살고 있게 된 걸까. 나는 왜 남미의 가난한 마을에서 해맑게 태어나 놀지 못했을까 나는 남부 프랑스, 프로방스에서 태어나지 않고 왜 억압적인 환경에서 자라왔을까. 다시 태어나면 여행자로서가 아니라 한 국민으로서 그 지역에서 살아볼 수 있을까. 뜬금없는 생각만이 지금은 겨우 겨우 숨쉴 수 있는 구석이다. 다시 살고 싶다. 다시 되돌리고 싶다. 이 모든 삶을. 다시 처음부터 리셋하고 싶다. 같이 나누어쉬는 공기가 탁하고,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전혀 짐작할 수 없다. 나 또한 그들에게 짐작되고 싶지 않다. 어떻게 이런 환경을 하루더, 하루더, 하루더 그렇게 하루만 식으로 늘려야하는 것인지 눈앞이 깜깜하고 진심으로 외롭다. 남의 일기에서 이런 글을 읽는 일은 나조차도 짜증나는 일이지만, 이렇게 살아야하는 일이 나이가 들수록 더욱 괴롭고 힘들다. 나는 나이를 믿지 않게 되었다. 어쩌다보니 그렇게 그 나이가 된 중년들과 청년호들갑정신병에 걸린 아이들사이에서 나는 무엇을 보고 살아야할지, 나 자신만 믿고 괴물처럼 살아야 하는 건지. 사람들의 안면에는 아무 그림도 없고, 반영들만이 떠다닌다. 날씨마저 왜 이런지, 누군가 나를 떠나도 어떤 슬픔조차 느껴지지 않을 그런 날이다. 사람들은 모두 비슷한 상태에 있는 듯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를 보지 못하게 만드는 포털사이트와 신문 미디어들은 눈에 번쩍 뜨일만한 사건, 이야기, 이미지를 실어나르느라 혈안이 되있다. 아직 정신을 덜 차려서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의 머리와 입엔 역시 똥과 쓰레기만 가득할 것. 나에게 있는 똥과 쓰레기가 그들보다는 낫다는 안도감을 주니 가끔 그런 뜬금없는 반응에 허탈한 미소를 보낼 뿐. 그렇게 살아있어서줘서 삶이 객관적으로 더 가치없는 일이 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른다는 듯이 그렇게. 아무리 쓰레기같은 삶도 죽음보다는 낫다는 생각이 지배적인 이상 이 이야기는 해서 무엇하랴. 


수년째 비슷한 생각과 수준에서 맴도는 삶이지만 나를 숨쉬게 하는 건 이런 허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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