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 이야기

3월 25일 밤이야기.

misfortune4 2013. 3. 26. 14:53



생리시작 2주전인 배란기부터 생리불쾌증후군이 시작된다면 그 삼사일 혹은 하루이틀전부터는 키보드 손목보호대에 손목을 올려놓는 것조차 팔목이 고통스러워 눈물이 날 것같은 상태를 경험한다. 한걸음 한걸음이 어지러움을 동반한다. 피도쏟기 전에 마치 피를 쏟은 것 같은 경험을 하는 것이다. 하루는 마구 음식이 당기고 다음날은 바로 구역질이 올라오고 그 다음날은 물도 입에 대기 싫은-내 구원주인 화이트 와인조차도-상태를 직면한다. 근래들어 더욱 극심해지고 있다. 오빠는 '여자는 참 힘들겠다. 매달 그래야 하니'라고 말한다. 하지만 나처럼 민감하게 경험하는 여자는 많이 드문 편이다. 그리고 나조차 30대 이후의 일이다. 친구, 언니들 왈 '결혼해서 애나면 다 없어져'라고 하는데, 나는 그저 애매하게 웃을 수 밖에 없다. 실제로 남자와 살면서 출산한 경우 이러한 고통이 사라진다는 것은 의학적인 것이다. 호르몬의 영향이 큰 것이다. 내 호르몬은 거의 애 열댓나은 모성이 풍부한 어머니 수준으로 발산되고, 내 감각은 거의 작가수준으로 민감해지는데 나는 엄마도 작가도 아니며 남편도 아이도 없다. 내가 가진 것은 커다란 곰돌이와 땟국물 묻은 티셔츠를 입고 사는 곰돌이와 뭉그러질대로 뭉그러진 늘 잠자는 양인형뿐이다. 어제는 우리 식구들은 모두 품에 안고서 '우리 이사갈까. 우리 멀리멀리 가버릴까, 아무도 모르게'라며 되뇌이다 짐을 다시 싸는 내 슬픈 모습이 비춰져 눈물이 맺혔다. 노란 전등에 비친 눈물이 눈부셨다. 등을 돌려 이불을 다시 덮자 생겨나는 바람에 주말에 잠시 다녀간 오빠의 냄새가 어렴풋이 풍기고 그만 빗줄기처럼 눈물이 계속 흘렀다. 소리나지 않는 울음. 침대와 베개는 언제나 눈물로 가득했다. 나는 어려서부터 울지않고 잠든날이 손꼽을 정도로, 그렇게 왠지 자꾸 슬프고 서러운 감정에 이끌리는 그런 아이였다. 길가는 거지가 생각나 울고, 매를 들고 떄리다말고 날 쏘아보는 엄마의 무서운 눈망울에 맺힌 작은 눈물방울이 떠올라 또 울고, 밤마다 늦게 들어와 조용히 잠드는 아빠가 생각나 울고, 친해지고 싶은데 너무 인기가 많아 내 존재자체도 모르는 한 친구가 떠올라 울고, 지나가는 길에 피어있는 들꽃들을 가만히 만지고 있을 때 누군가 그 길에 침을 뱉은 일을 떠올리며 울고, 답답한 우리가족때문에, 내 맘을 몰라주는 모든 사람들 때문에 또 훌쩍이고, 나보다 더 어려운 환경에서도 너무 밝은 아이들의 훗날이 떠올라 울고, ... 홀로 서울에와 10여번 이사짐을 싸던 그 이사전날의 아득한 밤들이 떠올라 울고. 서울하늘아래 나 혼자인 것 같은 그 서러운 날들. 여전히 내 나이 서른 여섯에도 그러한 신세를 벗지못한 것은 무엇때문일까. 왜 나는 이 상황을 벗어나지 못했을까. 나를 내려앉힌것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지금까지처럼 앞으로도 그러한 삶을 살아야하도록 운명지어진 것일까. 모든 것이 두려워 또 다시 짐을 싸고 떠나면서부터 내 인생이 이렇게 내려앉은 것은 아니었을까... 왜 그렇다면 나는 두려워지는가. 그 무엇이 더 나아질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일까. 결국은 모든 것이 뻔해지고, 또 흐려지고, 둔탁해지고, 진실과 사랑과 믿음과 소망과 멀어질 것같은 두려움이 늘 어느시점부터 생겨나는 것일까. 모든 것이 두렵다. 더 나빠지지만 않아도 살만하다고 하는 말은 들리지 않는다. 이보다 더 나빠지기 전에 이 상황을 벗어나야 겠다는 생각이 앞선다. 나는 왜 이런 생각에 사로잡혀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단한번도 그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던 것일까. 오늘도 여전히 그 생각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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