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 이야기

동양철학, 오빠. 156번.

misfortune4 2013. 5. 31. 16:12



어제 EBS에서 최진석 교수의 도덕경강의를 들었는데, 패키지로 다시 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이의 가르침에 귀가 뜨인 건 너무 오랫만의 현상이라 아직 낯설긴 하다. 

동양철학에 한계가 있는 건, 어떤 면으로 한가지 원리를 깊이 파고들어가 그 단면의 깊음과 위험성이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위험하기 때문에 매력이 있는 것이기도 하다. 원리를 가지고 무엇인가를 다시 살피려 할 때, 이념도 가치도 점차 사라져갈텐데

그렇다면 세상과 삶에 대한 믿음이라는 것은 무엇인가를 꿰뚫는 태도를 통해 때론 시험당하고 부숴져야 할텐데

믿음은 그래야하는 것일까. 믿음은 그렇게 시련당해야하는 것일까. 

옳고 그름이라는 태도가 정치적이라는 것에 대해 동의한다. 그것이 부패를 만든다는 것에 대해서도 동의한다. 

그러면 내 멋대로도 아니고, 보편의 가치로도가 아닌, 세상을 보는 기준이란 어떻게 얻어지는 것일까. 

거기에 어떤 가치도 믿음도 선행하지 않은 채, 그것이 가능할까. 




내가 오빠에게 원하는 것은 나를 무시하지 않는 사소한 태도이다. 

매번 공평하게 나를 대해주길 바라는 것이다. 

시원이니까 괜찮을꺼야

시원이니까. ... 

그런 특별화를 원하지 않는다. 

나는 물론 오빠에게 특별한 사람이다. 

내가 특별하기 위해선 오빠 편에서의 공정한 적용이 필요한 것이다. 

오빠가 나를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내가 오빠에게 특별하게 다가가기 때문이다. 

내가 오빠를 특별하게 여기는 것 또한 그러해야할 것이다. 

특별함은 다른 취급이 아니라 기본적 공정함 위에 더해지는 어떤 플러스같은, 선물인 것이니까.




오빠가 날 위해서 너무 열심히 기도하는 바람에

나 또한 열심히 잠들어서

지각을 하고 말았다.

처음으로 팀장님한테 전화를 했는데 의외로 이해해주셨다.

처음으로 소속감이 들었다. 

술로 쓰린 속을 달래기 위해 몇몇 선생님한테 점심을 먹자고 했으나 거절당한나는

어쩔 수 없이 처음으로 혼자 교직원 식당까지 걸어가 식사를 했다. 

의외로 괜찮았다. 

지긋지긋했던 학교가 꽤 괜찮은 풍경처럼 보인다.

위에서 모밀국수들도 행복하게 소화를 시킨다.

이런 날엔 또 이런 깨달음이 있다. 



156번의 전화를 안받은 것이 아니어서 다행이다.

오빠의 전화기는 꺼 있었다. 

다행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나의 맹목성은 무서운 편에 속한다. 가치와 믿음을 버려가야 하는 것인가. 서양철학을 마구잡이로 독학해서 영화평을 써보았지만 그것은 너무 한심한 수준이었다. 동양철학. 강신주의 장자강의, 도올에 관심을 갖은 적은 있었지만 빠져나오는 길이 너무 쉬웠다. 아직은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으로선 관심이 가는 대로 공부해보는 길 밖에 없다. 지금 있는 내 상태에 아무 답이 없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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