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 이야기

회복되는 삶

misfortune4 2013. 6. 10. 10:32


1.

현충일엔 오빠가 꽃반지와 꽃팔지를 만들어 주었다. 

공원엔 정말 오랫만에 간 것이었다. 

오빠와 손잡고 걷는 일은 진심으로 행복하다.

그는 마치 그때에 청년과 같았고, 나는 젊은 남자와 만끽하는 기분이 든다.








1-1.


토요일엔 유명산 계곡에 이 훈남/훈녀 커플이 나타났다.

우리는 땀내나는 아저/아줌씨들 사이에서 단연코 빛났다.

2km의 정상이었지만 3분의 2정도까지 능선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코스였다.

계속되는 위통과 생리전 불쾌감으로 토할 지경이었으나 땀을 비오듯 흘리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오빠에게 낙오감을 주고 싶지는 않았다.

게다가 아침의 전적(?-혼자 화내고, 결국 혼자 꺼이꺼이울면서 끝나는, 나 혼자의 싸움을 가슴아프게 구경하는 오빠의 얼굴을 보다)이 있었으므로.

그리고 금새 참기를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정상을 두고 남은 4분의 1정도의 완만함은 우선 감사했고, 또 약간의 맥이 빠질정도로 금새 정상맛을 보게 했다. 

하지만 하산길 계곡의 맛은 마음에 들진 않았던 등산길의 기분을 모두 만회하고도 남을 정도였다.

아저/아줌씨들이 다리걷고 계곡에서 더럽게 무언가를 쩝쩝대며 앉아있는 꼬락서니는 

늘 불쾌함을 주었었다.

그런데 훈남이 발휘한 기지로 좋은 돌자리에 앉아 땀범벅이 된 얼굴을 씻고 옷을 헹궈입고, 뜨거워진 다리를 깊숙히 넣는 순간,

아! 탄복이 절로 나왔다. 차가운 산의 물기운을 온몸에 처음 느끼는 그 기분은, 뭐라 형용하기 어려워 또다시 방언을 내지르고 말았다.

꺄! 발목이 에이는 것처럼 차가웠다. 아 이런 것을 위해 이 힘든 과정을 감수하는구나. 이런 것이 선물이고 은혜이구나. 

오빠에게 진심으로 고맙고, 또 투정부린 것이 미안하게 느껴졌다.

오빠가 이보다 더 맛있을 수 없는 정도로 고기와 야채들을 구워주고, 나는 정성을 다해 오빠에게 쌈을 싸주었다.

우리는 절대로 쩝쩝대지 않으며 우리는 삽겹살도 스테이크 먹듯이 그렇게 우아하게 즐기며 산의 정기와 함께 이것들을 만끽했다. 

산에 저렇게 차갑고 판타스틱한 계곡이 숨어있다는 사실 때문에라도

이 더워지는 여름에 대해 조금의 자신감이 생겼다.

약 3개월만에 등산을 했고 약 6개월만에 오빠의 동네에 갔다.

이디오피아의 놀라운 원두 코케 아이스와 모히토, 사케라토를 마셨다.

이렇게 또 견딜 수 있는 힘이, 살 수 있는 시간이 생겨나는 건

우리가 함께 한 시간 덕분이니

이제 외롭다고, 울지 말고, 가위눌리지도 말고, 오빠한테 징징대지 말고, 씩씩하게 잘 살아가고, 잘 참자. 잘 하자 

작심삼일되지말자. 힘내자. 아무도 나를 좌지우지 할 수 없어. 오빠 이외에는. 누구도 나를 탐할 수 없어. 오빠 이외에는. 

진심으로 나를 행복하게 할 수 있는 것은 오빠라는 존재와, 그 존재와 함께 누리는 자연의 기쁨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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