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 이야기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막지마

misfortune4 2013. 6. 25. 14:32



나는 어려서부터 늘 죽음을 생각했다.  좋은 가족을 가지지 못했으며 가족은 나의 편이 결코 아니며


나의 흠을 친구들보다도 더 적나라하게 힐난하며 안락한 곳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던,   


정말 처음으로 그런 생각을 한 어느 어린 날이  기억난다. 


억지로 아침 밥 먹은 것을 토하자, 유치원에 가지 못하고 언니 방에 갇혀서 매로 맞고 갇혀있던 그 날, 


무서운 엄마눈을 떠올리며 처음으로 죽음을 생각했었던 기억이 난다.


그 이후 고등학교 3학년이 될 때까지 나는 세기 어려울만큼 같은 경험을 했다. 


그 떄엔 죽음에 대한 생각이 실존에 대한 고민보다는 도피를 위한 안위에 가까웠을지 모른다.


부끄러움이 많았고, 숫기가 적었으며, 열망과 욕망을 표현하는 법을 익히지 못했다. 


내가 한 행동이나 겪은 일들로 인해 창피함을 겪을 때, 늘 죽음을 생각하면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꼈다. 


시간이 지나, 죽음은 내게 다른 존재로 다가왔다. 


창피함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뒤집는 쾌감을 즐기게 되면서부터이다.  


그 때 죽음은 어쩔 수 없이 택하는 안위성 도피처가 더는 아니었다. 


죽음은 적극적으로 취할 수 있는, 혹은 취해야만하는 결단의 조치가 되었다. 


얼마전 치료 후 처음으로 죽음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 시간을 보낸 듯 하다. 


그것은 한달이었던 것 같다... 헌데 생각해보면 영화를 할 시절에도 죽음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내가 적극적으로 오빠를 만나야만 했을 때 또한 마찬가지다.


나는 무언가를 적극적으로 주도적으로 할 때에만이 살 수 있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그만큼 나약함과 수동성에 대해 지극히 미워하고 또 기피하니까 말이다


그런데, 내가 그렇게 살고 있는 것 같을 때, 아니 적어도 그런 모습을 누군가에게 하고 있을 때


스스로가 너무나 견디기 어려운 것이다. 


지금 내가 적극적으로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죽음의 길이란 생각이 그래서 들곤 하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실은 거의 맞는 해석이다. 


죽음은 나약한 도피처가 아니다. 그것은 나의 의지였다. 언제나 생각으로만 존재했던 하나의 강력한 의지였다.


하지만 정작 죽음을 준비하는 구체적 과정에서 내가 그토록 당당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나는 그 과정에서 상당히 위축되고 생각이 바뀔지 모른다. 


내가 무언가를 적극적으로 할 수 있다면 그것은 준비없이 뛰어들 수 있는 것 뿐이다.  


삶을 향한 적극성에는 준비가 필요하지만


죽음을 향한 적극성에는 준비가 필요없다는 건 무엇을 뜻하는지. 


언젠가 오빠가 죽고싶다는 내게 그랬다. '그런 얘기 그만하고 죽고 나서 얘기해'라고. 


하지만 위에서 언급했듯, 나는 홧김에 하는 말이 아니다. 


언제나 생각하고 있는, 제대로 살지 못하는 삶에 대한 예비책일 뿐.


정말 죽고 나서 얘기할 수 있다면 나는 지금 당장 죽을 것이다. 하지만 내 생각의 자아가 소멸된다는 것을  실감하기란 정말 어렵다. 


생각이 사라진다는 것, 나는 이래서 죽음을 선택했는데, 죽음이 날 한 존재로써 받아주는 기분도 체 느껴보지 못한 채 사라져야만 한다는 것.


그래서 인격적인 죽음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내 두려움은 그러한 것들이다.  


많이 외로웠는데, 죽음이 나를 더 외롭게 떨어뜨려, 죽기 직전 세상에서는 언저리에도 가보지 못한 처절함을 느끼며 간다면


그것은 정말 너무나 끔찍할 것이라는 상상이 드는 것이다. 


나를 한번이라도, 제대로 영원히, 따뜻한 세상으로 인도해준다면 


아니 마치 죽음은 그런 존재처럼 느껴졌는데, 그 떄의 그 배신감은 또 얼마나 클지에 대해서도 생각하면 아찔하다. 


............



혹은 이런 것이다. 죽음이 끝까지 내 친구였는데, 그에게로 가는 순간, 그것이 내 친구가 아님을 알지만 이미 너무 늦었다는 걸 깨달을 때.

내 인생 통째가 죽음이라는 허황된 친구에 사로잡혀왔다는 것을 통렬히 깨달을 때, 나는 세상살이의 그 무엇보다도 견디기 힘든 고통을 느낄지 모른다.  하지만 그런 악마같은 친구의 배신도 괜찮을정도로, 세상에서 친구삼을 것이 없다고 느낄 때가 가까워오고 있다는 불안가운데.... 울고 나서 끝나는 그 어떤 감정이기를 간절히 바래보지만, 울어도 사라지지 않는 것이 그 어느 순간부터 잔여물로 남아 쌓여지면서 나는 나쁜 친구를 의지하여, 아예 각오를 단단히 하려는 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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