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 이야기

단절감과 외로움이 드는 회사생활 가운데서

misfortune4 2013. 6. 13. 13:13



왜 오빠는 일기를 한번도 남기지 않으려는 것일까. 


오늘의 제목은 하이힐.


하이힐을 신는다는 건 예민함을 감수하는 일

울퉁불퉁 보도블럭 매 지점마다 설치된 시각장애인을 위한 오돌이?장치

각종 모양의 하수구 안전방지턱 부서진 아스팔트길 

끝이 마모되거나 망가진 계단 등 위험요소는 도로에 도사리고 있다.


사람들은 왜 불편하고 건강해치게 힐을 신냐고 하지

그럼 당신들은 매일 낮은 신발로 편하고 건강해서 그렇게 골골대나


자신이 편한 것을 지향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도 자신이 편해보이는대로 만들려는 심리는 무엇인지

나는 이 예민한 긴장감, 보도블럭의 구조까지 파악해야하는-살짝 얹어져있어 한쪽을 밟으면 분명이 굽이 낄 것이라는 예측이 가능할 정도-수고를 무릅쓰고 사는 정도인데, 남들이 보기에 쓸데 없는 일에 에너지를 쓰는, 그저 그 신발로는 고급 승용차, 백화점 대리석, 연예인을 위한 무대정도가 어울릴텐데하는 쓸데없는 걱정을 들어야만 하는 그런 게 피곤할 뿐. 내 미적 기준을 포기하고싶은 생각은 십년째 단 한번도 든적이 없다. 

내가 못신으니까 너도 신지마--딱 우리 엄마들같은 것이 사실은 많은 못난 여자들의 심리에 내장되어 있다--그래서 내가 결혼을 하기 싫었고 무엇보다 아줌마는 정말 되고 싶지 않았다. 그것이 아줌마나 결혼과 상관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런 신분의 사람들이 늘 말도 안되는 주장을 하기 때문에.

왜 내가 불편해 보이는 게 싫지? 나 알아? 설마 나 좋아해? 나 사랑해? 그런것도 아닌데 날 왜 걱정해? 내가 잘 되는게 왜 좋아? 내가 못되도 도와주지도 않을 꺼면서 혀나 차고 말거면서 왠 간섭이야? 

우리 오빠아니고서는 이해할 수 없다.

나를 알고 나를 좋아하는 것을 내가 인정해준 사람은 오빠뿐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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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일기




1. 

내가 못견디고 있는 것을 누군가 논문에 단 한줄정도로 요약해 놓고, 그가 다루고 있는 현상과 이론 중 극히 일부일 뿐임을 느낄 때, 아니 이미 이것은 많은 사람들이 문제의식화해서 이론과 논리로 거의 증명되어있음을 알 때. 나는 아 이래서 공부를 해야된다고 생각했었는데. 요즘같은때는 ㅈㄹㅇㅂㅎㄱㅇㄴ 정도로 반응한다. 완전히 막살기로 작정한건 아닌데, 그저 학문이라는 것에 컴플렉스가 있다면 있겠지만, 우스운 마음과 나를 자책하는 마음이 동시에 든다.



2. 

여자동료들은 나에 대해서 거의 궁금해하지 않는다. 오히려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할까 두려워하는 눈치다. 내가 입을 닫는 것은 초반에 살짝 맛을 본 후 나에 대해 거리감을 두는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지 않기 위해서이다. 나에 대해 궁금해하지 않는 이유는, 그렇게 결정하는 이유에는 각자의 개인적 관심사와, 각자의 취향에서 내가 멀리 있기 때문일 수도 있고, 대화 코드가 맞지 않아서일수도 있고, 자신이 두려워하고 있는 것을 가지고 있다고 느끼거나, 자신의 취약점을 건들일만한 위험요소가 내포되어 있다고 느끼거나.. 

나는 누군가가 궁금해서 말을 시키거나 누군가를 알고 싶어서 친한척을 하진 않는 편인데. 그냥 동료니까 잘 지내려고 하는 것인데. 내 관심사를 듣고 싶어하지 않아서 그들의 이야기를 주로 듣는데, 그것이 이야기랄것도 없이 그저 뚝뚝 끊기는 단발적 잡담 수준이라, 내가 화두를 던지는 일을 할 수 밖에 없다. 당시에는 신나서 이런 저런 얘기들을 꺼내놓지만 이내 나로부터 멀어진다. 뭔가 해서는 안될말을 한 사람들처럼... 여자들은 왜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 알려고 하질 않을까. 왜 꼴리는대로만 하려고 하면서도 그 구정물안에서 나름대로의 신선한 충격까지 받으면서 즐거워하려는 것일까. 왜 그런 안일한 행복을 추구하기위해 본능적인 것을 차단할까. 

미쳐가는 여자들도 본능과의 싸움에서 진 이후의 현상일 경우가 많다.



3.

10년의 시간이 지나도 통일된 사고가 존재하지 않는 곳에만 희망이 있을 것 같다. 10년 된 계약직 집단이 있는 그룹은 '계약직 수준의 사고'를 비웃고, 역으로 계약직들은 정규직들의 경직화된 사고를 비웃는다. 그렇다면 새로 들어온 계약직은 '넌 계약직 같은 사고를 갖지 않았다'고 한쪽에선 반기고 한쪽에선 이단화한다. 이쪽이든 저쪽이든 나은 곳은 없다. 둘다 똑같기 때문이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사람의 수만큼의 숨통이 있다. 하지만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소수들이 구석에서 썩은내를 풍기고 있는 것은 두배로 숨통을 조인다. 이상한 일같다. 조직에서 사는 일이란 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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