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 이야기

거리풍경, 재키아빠, 역할론

misfortune4 2013. 8. 2. 13:15



머리가 쥐어짜듯하고 가슴이 내려앉을듯한 시간이 지나고 나면 

세상의 풍경이 표면으로 펼쳐진다. 

현재까지였을 의미가 사라지고 과거 이미 찍혀진 사진같은 풍경이 된다. 


눈앞의 아지랑이. 유아기부터 보아오던 내 투명한 실핏줄의 렌즈로 보는 세상.

비닐로 씌여진 틈을 뚫고 향기를 발산하는 라즈베리가 촘촘히 박힌 빵.

일생에 단 한번 있을법한 일-어머니가 쓰러지셨다는 말을 전화로 친구에게 전하는 듯한 한 남자가 

길거리에서 단 한번 마주칠법한 나에게 그 이야기를 동시에 알려주고는 걸음을 재촉하고,

붉은 머리에 올블랙의 옷, 마른 몸, 짙은 아이라인을 한 남자아이가 재빠르게 내 옆을 뛰어간다.

흰자가 거의 보이지 않는지 눈의 위치를 알 수 없는, 그럼에도 강한 인상을 전달하는 한 흑인 할아버지와

1990년대 캠퍼스에서 사상운동을 했을 법한 모습을 닮아있는 한 여학생의 등장은 시공을 어지럽힌다.


*


주변을 정리하고 싶을 때마다 핸드폰속 열댓명 밖에 되지 않는 사람 이름을 이리저리 바꿔본다. 

단어로 표현하는 나의 그들에 대한 생각.

이번에 오빠는 '재키 아빠'로 그 이름이 지어졌다. 

나는 '재키 아빠'의 전화를 받는다.

그러면 좀 더 책임감이 생길 것이다. 

그리고 성실함도. 

어디선가 읽었는데, 연인끼리 부부놀이, 가족놀이같은 역할놀이를 하는 것이 건강한 관계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서로 함부로 대하지 않기 위해 그런 놀이 안에서 훈련하는 것이다.

내가 아무 의미도 없이 뒹굴대는 인형들을 우리의 아이로 설정한 것은

오빠의 명명과 관련이 있다. 

오빠가 어느날,  술을 마시고 전화를 해서는 재키는 양양이는 뭐하냐고, 잘 있냐고 물어봤는데

거기서 마치 멀리 출장간 아빠가 애들을 챙기는 전화를 건 듯한 짠함을 느낀 것이다.

그러니까 오빠는 그런 사람이 되어주고 싶은 것이었다.

나만의 연인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아빠가 될 수도, 연인이 되어줄 수도 있는,

누군가에게 어떤 '역할'로서의 당신을 설정한 듯한 것이다. 

어디서나 역할이 확실한 사람은 필요로하는 사람이 많을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없을 때 그 빈자리가 크고, 또 잊혀지기도 쉽지 않다...는 걸 그도 본능적으로 알아챈 것일까.

그는 그런것까지 생각한적 없다고 말할 것이다. 


*


그러고보면, 오빠를 만나고 나서, 어떤 역할에 대해 처음으로 생각했다.

오빠가 나에게 어떤 역할을 해주고, 내가 오빠에게 어떤 역할을 해주길 기대하는 것에서

나는 처음에 조금 거부감이 들었던 게 사실이다. 

나는 그런 역할에 얽힌 관계를 제대로 맺어본 적이 없을 뿐더러 그런 것에 익숙하지도, 그런 제도나 틀을 본딴듯한 것에

긍정적이지도 않았다.

긍정적이지 않다는 얘기는, 시도와 실패의 누적된 기억도 포함되어 있을 것 같다. 그렇다면 나는 잘못 역할을 설정한 것일까. 

혹은 내가 그들에게 주는 역할보다 타인에게 더 과도한 역할 이상의 것을 원하고 있었던 것일까. 


내 옆에 둘러 앉은 계약직 4명 사이에서 어깨도 주물러주고 간식으로 빵도 나누어주는 도우미가 되고 싶었으나

그들은 내 역할의 자리에 서서히 다른 것-예를들면 내가 먹지 않는 패스트푸드부터 길거리간식까지를 열심히 팀으로 먹으러다니며 무한도전과 1박2일같은 체험예능프로그램에 대해 얘기하고, 연예인의 호불호를 여러 기준으로 혹은 아무기준없이 본능적으로 가르며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들을 넣기 시작했다. 그런 행동에서 내가 즐거워지 않으며 동조하기를 즐기지 않는다는걸 눈치챈 후 그들은 더욱 열심인듯, 혹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듯 보였다. 점점 그들은 내가 더 주물러주거나 빵을 주는 역할이 필요없는 집단으로 되어갔다-한의원에 가서 물리치료를 받거나 그들이 매점을 다니며 간식을 사먹었다. 그러한 역할의 실패가 어디서 기인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들이 왜 정모씨, 장모씨, 유모씨, 손모씨가 되지 않고 내게 '그들'로 불리는지는 그들이 함께 지내며 축적한 시간에 끼어들 수 없는 나와의 상대적으로 얄팍한 시간에도 원인이 있을 듯하다. 그렇다고 내가 그들의 축적된 시간을 무시하며 다가갔는가하면 그건 결코 아니었다. 늘 그 시간에 대해 신경쓰고, 조심했던 것이 사실이다. 나는 분란을 원하는 사람이 아닌데, 무언가 분란을 일으킬것같다는 예상치를 그들에게 주었던 것은 사실인 듯 하다. 왜 나에겐 그런 이미지가 있는 것일까? 그건 내가 설정한 역할하고 무슨 관련이 있는 것일까.  그러고보니 집단에서 역할을 설정하기를 실패한 나는 정, 장, 유, 손을 개인 공략한 적이 있다. 나의 강점이 있다면 개인의 취향과 성격에 대응하는 각각의 전략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에는 좋아하더니, 왠지 통하는 것 같더니 점점 이상한 기류를 내비치다 결국엔 보다 멀리, 공고히 배척되었다. 지금은 불쌍한 깍두기 쓰다듬어주는 식으로 1주일에 한번꼴로 여전히 허공에 대고 하는 내 인사나 말을 받아준다. 그것도 단답형으로. '어'  라고. 그것도 동시는 아니고 각자 일주일 간격으로. 


역할론에 대해선 좋지 않은 전적이 충분한데, 그것이 더 두터워질 태세이다. 아니 이미 일어나고 있다. 오빠에 대한 역할에 충실하지 못했고 도를 넘어 행동했고, 결국은 그에게 필요하지 않은 사람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을 접하였다. 선을 한번넘기가 어렵지 한번 넘고나면 자꾸 넘어섰던 이미지가 내 눈앞에서 되풀이된다. 그것은 원치않게 나를 이끌어가기도 한다. 


그는 나에 대한 역할을 정했으나 나의 넘나들기로 인해 그도 성가심을 명확히 드러낸 꼴이다.


성실하게 인간에게 역할로 임했는데, 그게 본능적으로 나와 안맞었던 것인지 몰라도 나를 방어하지 못했다. 생각해보면 나는 역할에 충실한 사람이었다. 교회 대학부에서 7년간 있으면서 성경모임을 이끌고, 부원들을 리드하는 일을 게을리해본적이 별로 없었던 듯하다. 좋지 않은 이야기를 남긴 채 교회를 떠나왔지만 아직도 결혼한다고 연락이 오는 후배가 몇 있다. 하지만 그 역할을 그만두는 일이 그 후배들의 상황과는 상관이 없는, 내 존재의 역사(7년)자체를 부정하려는 동기집단에서부터 비롯되었다는 것이 늘 견디기 힘든 짐처럼 남아있다. 실패는 실패하는 대상에 의해서가 아니라 뭔가 다른 대상으로부터 전이되는 현상처럼 생각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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