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 이야기

버틀러의 안티고네

misfortune4 2013. 8. 19. 14:20



"...상실한 대상이 실제 누구인지, 애도의 대상이 누구인지조차 확실하지 않을 때, 그리하여 애도에 실패할 경우, 우울증이 발생한다. 프로이트는 애도의 경우에는 주체가 상실한 대상을 의식하고 있지만, 우울증의 경우에는 그 주체가 상실한 대상을 의식적으로 인식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버틀러도 이 점에서 프로이트를 따르고 있다.... 안티고네는 자신의 오빠 폴뤼네이케스를 애도하고 있지만, 실은 그 애도속에서 말하지 않은 채 남아 있는 부분은 그녀의 아버지와 또 다른 오빠에 대한 애도다. 이렇든 애도의 대상이 불확실하다는 것은 애도의 작업이 완성되지 못한 것이며, 그 결과가 우울증으로 나타난다. 

버틀러에게 우울증은 좀더 급진적인 내용을 가진다. 그녀에게 그것은 동성애적 욕망이 억압당한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다. 동성애적인 욕망의 부인에서 연유된 것이 우울증이라면, 버틀러에게는 이러한 욕망을 부인하게 만드는 규범으로서 이성애 중심의 가족 구조 내지 친족 체계야 말로 문화적인 우울증을 생산해내는 장본인이 되는 것이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우울증 환자의 에고는 상실된 대상을 그 내부에 편입시켜 자신을 그것과 동일시한다. 우리가 살펴본대로 안티고네가 표상하는 모든 위치는 남성적이었으며, 따라서 그녀는 "여장을 한 남성"이다. 그녀는 자신을 결코 여동생 이스메네와 동일시하지 않는다. .. 

버틀러가 본 안티고네는 어머니의 위치를 차지하는 것도 거부한다. 이는 안티고네가 하이몬과의 결혼을 거부하고 하데스를 자신의 궁극적인 신랑으로 맞아들임으로써 아내와 어머니가 되는 것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데서 확인된다. 안티고네라는 이름은 '어머니를 대신하여'라는 의미를 갖지만  또한 어원적으로 '반대'를 뜻하는 '안티'와 친족과 혈통을 뜻하는 '게노스genos'의 파생어 '고네gone'로 이루어져 '혈통'을 반대한다는 뜻을 갖기도 한다. 즉 자식, 자손, 자궁, 출생을 거부한다는 것이 된다. 

이처럼 버틀러에게 안티고네는 어머니의 자리를 거부하고 여성이 되기를 거부하는 자로 부각되고 있다. 안티고네가 자신과 동일시하고 있는 것은 남성이다. "이 남성이란 누구인가. 유령같은 남성들이 여기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은 안티고네 자신이 차지해버린 남성들이기도 하고, 안티고네가 자리를 대신 차지한, 그리고 그렇게 대신 차지하다가 바꾸어버린 오빠들이기도 하다.' ...

안티고네가 크레온의 절대적인 명령을 거역하면서까지 공개적으로 폴뤼네이케스에 대한 애도를 주장하는 것에는 "애도될 수 없는 것의 영역"이 전제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 "애도될 수 없는 영역"이란 다름 아닌 동성애적인 욕망이며, 버틀러는 안티고네의 우울증을 이성애 중심의 규율 사회가 생산한 제도화된 우울증, 즉 사회적으로 제도화된 우울증의 전범으로 표상하고 있다. 버틀러는 이러한 안티고네의 우울증을 통해 이성애 중심의 전통 가족 구조가 내포한 규범의 불안정성을 보여주고 있다. 한편 그는 안티고네가 이성애 중심의 가부장제 사회를 고착시키고 이상화하는 전통적인 성의 개념이나 친족 개념에 도전하여 이를 해체하려는, 말하자면 모든 사회의 질서 가운데 가장 근본적인 질서인 근친상간금지를 의문시하는 '급진적인' 저항적 인물임을 부각시키고 있다. "

--'그리스비극: 인간과 역사에 바치는 애도의 노래' 임철규, 한길사, 2007  中

'그녀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일요일 아침  (0) 2013.09.15
향수이야기  (0) 2013.09.05
거리풍경, 재키아빠, 역할론  (0) 2013.08.02
우정  (0) 2013.07.31
의문점들...  (0) 2013.07.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