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 이야기

향수이야기

misfortune4 2013. 9. 5. 10:55



내가 향수를 쓰는 이유는 향으로부터 몸의 기운을 얻기 위해서다. 

그리고 내 존재를 냄새로 확인하는 과정을 즐기고 있는 내 자신을 본다. 

에르메스 향수는 처음 써본다. 운 자르뎅 메디테라니. 지중해의 향. 언뜻 디올의 듄과 비슷하지만, 그 복잡함과 시간의 변화에 따라 점점 바뀌는 향은 듄을 거의 기억하기 어려울정도이다. 

요즘 핫한 니치향수(천연원료만을 사용)를 쓰고자 딥디크, 조말론, 크리드... 등을 시향해 보았지만 사실 쓰고 싶은 건 메종 드 파팡의 도랑쥬 제품들이다. 그중에서도 담배향이 짙다는 자스멍 앤 시가렛. 시향도 안해보았지만 바이레도의 집시워터는 무조건 사고 싶었다. 조말론의 얼그레이 큐컴버가 꽤 독특한 조합이었지만, 여리여리한 향은 내 기운을 북돋워주지 않는다. 내가 주로 쓴 향수는 시기별로 페리 엘레스 360도 우먼, 디올 자도르. 샤넬 No.5, 샤넬 코코 퍼퓸, 구찌 바이 구찌, 디올 듄, 디올 퓨어 쁘아종, 딥디크 탐다오이다. 가장 만만했던 것은 저렴하고 향의 변화가 거의 없는 듄이었다. 퓨어 쁘아종과 코코 퍼퓸이 가장 좋아하는 향수였다. 하지만 내 몸에 가장 잘 맞았던 건 딥딕 탐다오다. 그게 몸에 붙기 시작하자 내 몸에 알 수 없는 활력이 생기기 시작했었다. 


내게 지중해는 생애 가장 가고 싶은 바닷가였다. 지중해라는 영화덕분이기도 하지만, 그 푸른 물에 내 몸을 담궈보고 싶었다. 정말 그곳에서는 이러한 향기가 날까. 오빠가 1000일 기념으로 사준 이 향수는 아주 럭셔리하지도, 캐주얼하지도 않고, 내가 좋아하는 약간의 집시풍을 풍긴다. 분명한 건 기분과 날씨와 몸상태와 입은 옷에 따라 이 향이 천차만별로 다르게 느껴질 것이란 사실이다. 향수는 몸에 길들이는 시간이 필요하다. 처음 써보고 알 수 있는 건 거의 없다고 봐도 좋다. 하다못해, 가로수길 편집샵에서 국내 조향사들이 런칭한 저렴한 향수 30ml 한병은 거의 밑바닥이 보일 쯔음에야 내 몸에 붙기 시작했었다. 정말 알 수 없는 향으로 그렇게 끝나버린 향수들도 꽤 있다. 

이 향수는 내 몸에 착 붙을 것이란 예감을 준다. 그리고 거부감이 드는 고비도 올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향수와 함께 갈 것을 처음 시향한 순간 이미 알았다. 나에겐 가벼운 향기가, 특히 프루티계열이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우디향을 좋아하지만 내겐 붙지 않는다. 나에겐 짙은 꽃향이나 향신료향이 믹스된 것이 어울린다. 

참. 향수를 연하게 느끼는 한가지 스킬을 배웠다. 허공에 뿌려놓고 지나가는 것이다. 도서관 사람들의 예민하다지만 내겐 나약한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개성과 취향 자체가 그저 싫어하는 것을 배제한 그 어떤 것일수도 있는, 무결정의 까다로움에 나는 그들이 입지 않는 스타일의 옷에 향수에 음식을 먹는다.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만 매일 생각해야 직성이 풀리는 여자들의 이기적 욕망을 취향이라고 존중해줘야하는지 가끔 의문이든다. 자신은 무얼해도 용서받을 수 있지만, 남자의 찌질함은 용서가 안되는 토크쇼의 여성패널들이 걸친 명품이 참 헛스럽게 느껴졌다. 

그러고보면 경우에 따라 생각을 바꾸는 유동적 여자들에 비해 남자들의 생각이 잘 바뀌지 않는 이유는, 그들은 생각이 바뀐대로 행동하기 때문이다. 말의 표현은 더 느릴 지언정 여자보다 행동력이 더 빠르고 직접적이기 때문이다. 여자는 수없이 다른 말을 해도, 실제 행동하는 것은 느리다. 

아무래도 내겐 남성의 성향이 더 괜찮게 느껴진다. 나는 남성이 원래 가진 그런 것들이 좋다. 꼰대짓만 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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